[다산 칼럼] 南北 경제교류, 분쟁해결제도 정비부터
올 상반기에 이뤄진 남북한 정상회담과 미·북 정상회담은 한반도 평화 정착에 대한 기대를 높여 놨다. 전 세계가 비상한 관심을 갖고 북한 비핵화 논의의 진전을 지켜보고 있다. 우리 정부도 비핵화가 진전돼 유엔 대북 제재가 해제되는 경우에 대비해 다양한 남북 간 경제협력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남북 모두에 도움이 되는 경제교류가 활성화돼야 하고, 이런 교류를 안정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가 단단하게 마련돼야 한다.

북한의 상대적으로 저렴한 인건비 및 천연자원과 우리의 선진 기술 및 자금, 세계 시장 개척 경험과 네트워크가 결합할 경우 양측 모두에 커다란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하지만 투자자 관점에서는 사회 체제와 법제도, 행정 및 거래 관행 등의 차이에 따른 북한 당국 또는 현지 당사자들과의 갈등 또는 분쟁이 발생할 가능성이 투자를 위축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런 투자자의 위험을 해소하기 위해 세계 주요 국가들은 본격적인 경제교류에 들어가기 전에 투자 및 거래를 활성화하고 보호할 수 있는 각종 장치를 양국 간 협정을 통해 마련하고 있다.

북한도 싱가포르를 포함한 24개국과 양자 간 투자보장협정을 체결했고, 이들 협정에서 분쟁 해결 방식으로 투자자와 국가 간 중재, 이른바 ISD를 수용하고 있다. 만약 이 같은 분쟁 해결 장치가 없다면 당사자 간에 해결할 수 있는 상사(商事) 분쟁이 당국 간 외교 분쟁으로 비화해 문제 해결이 더 어렵게 될 수 있다.

남북 간에도 투자 및 상사 분쟁을 해결하는 시스템에 대한 기본 골격은 이미 합의돼 있다. 2000년 12월 체결된 ‘남북 사이의 투자보장에 관한 합의서’는 투자로 인한 분쟁 발생 시 투자자는 남과 북 합의에 의해 구성되는 ‘남북상사중재위원회’를 통해 해결하도록 규정했다. 이 합의서와 동시에 채택한 ‘남북 사이의 상사 분쟁 해결 절차에 관한 합의서’는 쌍방 간 협의의 방법으로 해결되지 않는 분쟁은 중재(仲裁)의 방법으로 해결하는 것을 원칙으로 정했다. 경제교류로 인해 발생한 상사 분쟁을 남한 또는 북한 법원에서 해결하는 것은 상대방이 수용하기 어렵기 때문에 국제 거래에서 널리 활용하는 중립적인 분쟁 해결 절차인 중재 방식을 채택한 것이다.

이후 남북은 2003년 ‘남북상사중재위원회 구성 및 운영에 관한 합의서’를 채택했으나, 후속 조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2013년 남북은 ‘개성공단에서의 남북상사중재위원회 구성·운영에 관한 합의서 이행을 위한 부속합의서’를 채택해 중재위원회 명단을 교환하고 개성공단 상사중재위원회 제1차 회의를 여는 등 일부 진전을 이뤘으나, 이후 남북 관계 경색에 따라 현재는 유명무실한 상태다.

그간의 남북 간 경제협력은 금강산 관광 및 개성공단 사업 등을 통해 주목할 만한 성과가 있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경제 시스템과 상관습 등의 차이로 인해 크고 작은 분쟁이 발생했는데, 효과적인 분쟁 해결 시스템이 작동하지 못했다. 결국 우리 기업들이 손해를 적기에 제대로 보상받지 못하거나 민간 상사 분쟁에 정부가 나서야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 사례를 교훈 삼아 본격적인 남북 경제교류가 재개되기 이전에 분쟁을 효율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절차를 실행 가능할 뿐 아니라, 정부 관여 없이 비정치적으로 타결할 수 있도록 보다 정밀하게 정비할 필요가 있다. 우선 과거에 체결한 각종 합의서 및 부속 합의서 내용이 현재 어느 정도 유효한지, 중단된 부분이 있다면 어떤 방식으로 재개할 수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 다음으로는 기존 합의서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바탕으로 남북 모두 수용 가능한 분쟁 해결 시스템을 구체화해야 한다. 공정하고 신속하게 중재 절차를 진행할 규칙을 마련하고, 국제 무역·투자 관련 법률 및 실무에 정통하면서 중립적인 중재인을 양성하고 확보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2007년 남측 중재 사무처리기관으로 지정된 대한상사중재원을 중심으로 축적된 우리의 국제중재 사건 처리 경험·노하우가 북한 중재기관과의 교류 및 국제중재 전문가 양성 지원을 통해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남북 간 분쟁 해결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