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도 불평등 논쟁…"해법은 성장의 사다리 놓아야"
“내가 지금 포천이 주최한 포럼에 온 것 맞죠? 국제 노동당 행사에 잘못 들어온 것 아니죠?”(마크 앤더리슨 호로위츠 대표)

‘불평등’만큼 강력한 폭발력이 있는 토론 주제도 흔치 않을 것이다. 불평등이 확대됐느냐 축소됐느냐를 측정하는 방법론도 논란이 되지만, 불평등을 어떻게 해결하는 것이 좋으냐는 문제에 이르면 논쟁이 가장 뜨거워진다.

‘성공의 잭팟’을 터뜨리려는 이들이 몰려드는 실리콘밸리에서도 불평등 논쟁이 뜨겁다. 지난 3일 미국 경제잡지 포천이 주최한 ‘포천 글로벌 포럼’에서는 실리콘밸리의 거대한 정보기술(IT) 기업들이 (시장 독점으로)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있느냐, 아니면 (기술 개발로) 평등한 기회를 부여하는 데 일조하고 있느냐를 두고 논쟁이 벌어졌다.

앨런 머레이 포천 편집자가 “소수의 성공한 기술 기업들이 부를 독점하기 때문에 불평등이 더 커지고 있는 것 아니냐”며 도발하자 벤처캐피털회사인 앤더리슨호로위츠를 이끄는 앤더리슨 대표는 “노동당 행사에 온 것 같다”며 불편한 심기를 비쳤다. 그는 “결과의 평등이 아니라 기회의 평등을 논해야 한다”며 “개별 국가가 아닌 전 세계를 아울러 본다면 세계는 과거에 비해 훨씬 평등해졌다”고 주장했다. 반면 셰릴 샌드버그 페이스북 최고운영책임자(COO)는 “아직 세계적으로 교육 등 기회의 평등이 충분히 제공되지 않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앤더리슨 대표와 샌드버그 COO 둘 다 기술의 발전이 불평등을 줄이는 데 쓰일 수 있다는 것에는 동의했다. 모두가 동시에 성공할 수는 없다. 그래서 일부 기업이 시장을 과점하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 해도 그 결과물인 기술을 통해 “성장의 사다리를 아직 오르지 못한 사람들이 시장에 접근하고 기회를 얻도록 도울 수 있다”(샌드버그 COO)는 게 토론의 결론이었다.

월스트리트저널이 지난 4일 게재한 그레그 입 경제전문기자의 칼럼은 불평등 논란이 흔히 제시하는 ‘1% 대 99%’라는 도식이 현실과 다르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일부 최고경영자(CEO)가 천문학적인 연봉을 받아서 불평등이 확산된다는 세간의 인식이 잘못됐다는 최근 연구 결과들을 전했다.

그는 CEO의 과도한 연봉보다는 IT나 제약업계에서 ‘성공한 회사’와 ‘그렇지 못한 회사’의 자본이익률이 크게 벌어졌고, 이 과정에서 성공한 회사에 종사하는 이들과 그렇지 않은 이들의 임금 격차가 커지고 있는 게 진짜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애플이 자사 셔틀버스 운전기사 월급을 25% 올리고, 마이크로소프트가 협력업체 직원들에게 유급 휴가비를 지원한 사례, 페이스북이 건물 경비원 시급을 15달러로 올려준 사례 등을 소개했다. 개인의 능력보다는 대기업에 들어가느냐 중소기업에 들어가느냐에 따라 급여수준과 삶의 질이 결정되는 경향이 있는 한국과 비슷한 점이 있다.

이런 논란들은 막연하게 ‘1% 부자에게 돈을 걷으면 불평등이 해소된다’는 생각이 현실과 맞지 않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앤더리슨 대표는 포럼이 끝난 뒤 “(결과의) 불평등에 집중하는 것은 비효율적인 정책을 가져오게 마련”이라고 했다.

샌드버그 COO는 “우리가 지금 집중해야 하는 것은 바닥에 있는 사람들이 기술을 통해 더 성장하고, 건강해지고, 깨끗한 물을 마실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라고 했다. 가난한 사람들이 온라인의 데이터를 이용해 시장 정보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예로 들었다. 장기적으로 불평등을 해소하는 제일 좋은 해법은 그들의 성장을 이끌어내는 것이라는 취지였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