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관리, 변호사에 맡기지 말고 CEO가 직접 나서라
당신은 거대한 글로벌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다. 새벽에 갑자기 전화가 울렸다. 제품에 하자가 발생해 사람이 죽었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글이 올라와서 온라인에 기사가 쏟아지는 중이라고 했다. 당신은 아무것도 모른다.

아침 회의에서 회사 법무팀장은 소송에 대비하려면 잘못을 시인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홍보팀장이 “그랬다간 여론이 더 악화될 것”이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법무팀장이 “소송에 져서 천문학적인 배상을 하게 되면 당신 월급으로 책임질 거냐”고 소리치자 홍보팀장은 꼬리를 내렸다. 기자들이 달라붙어 “어떻게 할 거냐”고 물었다. “아직 확인 중”이라고만 무뚝뚝하게 답하고 피했다.

가상의 사례다. 갑작스럽게 위기에 처하면 사람은 당황하게 마련이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위기가 갑자기 닥치면 ‘정보의 진공상태’가 생긴다. 경영진은 상황을 정확히 파악할 때까지 판단을 미루고 싶어한다. 책임이 분명치 않을 땐 회피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생각한다.

위기관리 전문가들은 위기상황에 처했을 때일수록 ‘본능을 거스르는 결정을 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분개하는 대중에게 대응하려면 하루이틀 지나서가 아니고 즉각 무슨 메시지든 내놔야 한다. 그것도 최고책임자가 내놓아야 효과가 있다.

위기관리, 변호사에 맡기지 말고 CEO가 직접 나서라
바비인형으로 유명한 미국의 장난감회사 마텔의 제품에 기준치 이상의 납 성분이 들어간 것이 2007년 적발됐다. 로버트 에커트 마텔 CEO는 “네 아이를 둔 아빠로서 안전한 장난감을 원하는 마음을 잘 알고 있다”며 세 차례 리콜을 단행했다. 한복 차림이라 신라호텔 뷔페식당 입장을 거부당한 디자이너 때문에 회사 여론이 나빠지자 이부진 신라호텔 사장이 곧바로 디자이너를 찾아가 직접 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한 것도 위기에 잘 대응한 사례다.

회사 게시판이나 SNS 채널을 닫는 것은 위기관리에 실패하는 지름길이다. 항의글로 도배된 온라인 게시판을 보기 싫겠지만, 대중에게는 감정의 배출 창구다. 소통하려는 의지를 갖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들의 분노와 실망을 누그러뜨리는 데 도움이 된다.

여론 재판을 법적 재판과 비슷하게 다루려는 것도 잘못이다. 위기관리 전문가들은 “법적으론 무죄추정의 원칙이 적용되지만 여론은 유죄추정의 원칙이 적용된다”고 말한다. 대중은 잘 모르는 일에 대해서도 그 나름대로 프레임을 씌워 판단하고, 때론 (억울하게도) 비난을 퍼붓는다. 대중을 비난해봤자 소용이 없다. 주가는 떨어지고, 매출은 감소하며, 거래처는 끊긴다. 위기는 회피하는 게 아니라 관리해야 하는 것이다. CEO가 나서서 최대한 빨리, 정확히 진상을 파악하려고 노력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야 한다.

미국 신발회사 팀버랜드 제프 스워츠 CEO는 2009년 6월1일 환경운동단체 그린피스 회원들이 보낸 6만5000여통의 항의편지를 받았다. 팀버랜드가 소가죽을 사오는 브라질에서 소를 사육하느라 대규모 벌목이 일어나고 노예 노동자가 늘어나고 있다는 비난이었다. 그는 당혹스러웠지만 ‘중요한 질문’이라고 생각했다. 조사를 거쳐 환경이 훼손되는 곳에선 가죽을 사지 않도록 했다. 그린피스는 7월29일 ‘스워츠의 노력에 경의를 표한다’고 발표했다.

‘디젤 스캔들’로 창립 77년 만에 최대 위기를 맞고 있는 폭스바겐은 지금까지의 대응만으론 위기관리에 크게 실패한 사례로 기록될 가능성이 크다. 지난해 미국 규제당국의 경고를 받고도 일부 리콜을 하는 데 그쳤고, 전 세계 1100만대에 배기가스량 조작 시스템을 설치했다는 사실을 1년 이상 감췄다.

마르틴 빈터코른 전 회장은 지난달 23일 사임을 발표하면서도 “나는 몰랐다”고 강조했다. 폭스바겐은 여전히 ‘왜, 누가’ 이런 일을 했는지에 대해 입을 다물고 있다. 모든 기업이 반면교사로 삼을 만하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