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히스패닉
2009년 5월 소니아 소토마요르(Sonia Sotomayor)가 연방대법관에 지명됐을 때 온 미국이 떠들썩했다. 미국 헌법의 최종 보루인 종신직 대법관에 오른, 사상 세 번째 여성이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녀는 미국 역사상 최초의 히스패닉계 대법관이었다. 미국의 소수민족 그룹은 열광했다. 가난한 푸에르토리코 이민자의 딸이 프린스턴대와 예일대 로스쿨을 거쳐 사법부 최고위직을 맡은 것은 영화나 소설 같은 얘기였다.

히스패닉들은 아직도 썩 좋은 이미지로 표현되지는 않고 있다. 할리우드 영화나 ‘미드’에서 폭력과 마약, 빈곤과 범죄 현장에는 히스패닉이 필수 조연으로 등장한다. 히스패닉은 스페인어를 쓰는 중남미계 미국 이주민들을 통칭한다. 라티노(Latino)라고도 한다. 고대 로마가 이베리아반도에 식민지를 세우면서 부른 이스파니아(Hispania)에 어원을 두고 있다. 에스파냐(Espaa)의 어원이기도 하다.

히스패닉은 흑백 혼혈이 많다. 가톨릭 신자가 많은 것도 특징이다. 히스패닉계 미국 인구의 증가는 종교와도 무관치 않다. 가톨릭 교리에 따라 피임과 낙태를 지양하기 때문에 출산율이 높다는 것이다. 3억2000만명에 달하는 미국인 중 15%가 히스패닉이다. 전체 인구의 3분의 2인 백인을 빼면 소수인종 가운데는 최대 그룹이다. 인구로 보면 흑인(13%)보다 큰 커뮤니티를 형성한다. 문학 음악 등에서 히스패닉 고유의 문화도 형성돼 있다. 매년 9월을 ‘히스패닉 문화유산의 달’로 정할 정도로 미국사회에서 지분도 인정받는다.

저학력자와 이주자들이 많기 때문일까. 경제력에서나 사회적으로는 아직 취약한 편으로 분류된다. 하지만 정치에선 얘기가 다르다. 증가 추세인 히스패닉의 인구는 선거 때면 큰 힘을 발휘한다. 엊그제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가 2016년 대선 출마를 선언한 플로리다대 강당이 그랬다. 백인들로 가득찼던 여느 공화당 집회와 달리 히스패닉과 흑인 판이었다. 장애인 딸을 둔 콜롬비아 출신 여성이 스페인어로 부시의 경력을 낭독했다. 멕시코에서 아내를 만난 결혼 스토리도 스페인어로 소개됐다. 젭 부시는 유창한 스페인어 연설로 히스패닉 표심부터 잡으며 대선 레이스를 시작했다.

캘리포니아 다음으로 히스패닉 인구가 많은 곳이 텍사스와 플로리다다. 각각 부시가(家)의 본거지이고, 젭 부시 본인이 2007년까지 8년간 주지사를 지낸 곳이다. 어디서나 표 계산은 정치의 기본이다. 흑인에 이어 머잖아 히스패닉계 미국 대통령도 나올 것 같다.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