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호 칼럼] 김영란 뒤에 숨은 226명 볼스테드들이여!
웨인 윌러(Wayne Wheeler)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는지. 미국 역사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 100년 전 사람이다. 그의 전기를 쓴 작가는 그를 이렇게 설명했다. “6개 의회를 주물렀고, 2명의 대통령을 조종했으며, 거의 모든 주의 입법을 진두지휘한 인물. 수많은 상·하원 의원과 관료들을 배출했다.” 한마디로 미국을 떡 주무르듯 한 사람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지금 그를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미국에서조차 말이다.

‘광란의 1920년대’라고 한다. 금주법으로 미국 사회가 혼란에 휩싸였던 시기 말이다. 그 광란의 법을 입안한 사람이 바로 직업 시민운동가 윌러다. 무슨 말을 하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들이 있겠다. 금주법을 ‘볼스테드법’으로 부르니 발의자는 당연히 하원의원이던 앤드루 볼스테드가 아니냐고 말이다. 그러나 볼스테드는 단지 청부 입법을 주도한 인물일 뿐이다. 수정헌법 18조와 실행법률 볼스테드법을 직접 작성하고, 의회 통과 과정을 주무른 인물은 시민운동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쌓은 윌러였다.

금주법의 부작용은 우리가 잘 아는 대로다. 도덕주의자들과 시민운동가, 인종차별주의자들이 미국을 살릴 법이라던 금주법은 자유와 다양성의 나라 미국을 14년간의 긴 암흑기로 내몰았다.

10선이던 볼스테드는 금주법이 발효되고 부작용이 속출하자 다음 선거에서 낙선했다. 그는 1933년 금주법이 수정헌법 21조에 의해 철폐되기 직전 주변 사람들에게 이런 얘기를 했다고 한다. “나를 볼스테드법(금주법)이 아닌 캐퍼-볼스테드법(협동조합법)의 입안자로 기억해주기 바라오.” 하지만 그의 소원은 이뤄지지 않았다. 미국 국민들은 윌러가 아닌 볼스테드를 미국을 20세기의 암흑기로 빠뜨린 주모자로 기억할 뿐이다.

우리도 그래야 한다. ‘한국판 금주법’이라는 소위 김영란법 얘기다.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이 제안한 법률이라 그런 이름이 붙었다지만 결국 법을 만든 사람은 국회의원들이다. 게다가 통과된 법은 김영란법이라고 할 수도 없다. 그만큼 훼손됐다. 그런데도 국회의원들은 자신들 손으로 통과시킨 김영란법을 비난하며 모든 책임을 김영란 개인에게 전가하고 있다.

김영란법을 ‘부정청탁 금지 및 공직자 이해충돌 방지법’에서 ‘부정청탁 금지 및 금품 등 수수 금지법’으로 바꾼 건 국회 정무위원회다. 이해충돌 방지 부분을 빼놓고 “미흡한 점을 이유로 더 이상 법안 처리를 미루는 건 국민에 대한 도리가 아니라고 봐서”라는 이유를 댔다. 웃기지도 않는 해명이다. 국회의원 본인이나, 가족과 친척들의 이해충돌을 방지하려면 골치 아픈 일들이 워낙 많아진다는 것쯤은 국민들도 다 안다. 대신 원안에 없던 언론인, 사립학교 교직원 등 보통 국민을 적용 대상에 포함시켜 주의를 분산시킨 머리 좋은 사람들이다. 그래 놓고 정우택 정무위원장은 “깨끗한 사회를 이뤄가는 첫걸음을 뗐다고 본다”며 설레발을 쳤다. 이쯤에서 김영란법은 정무위원장의 이름을 따 ‘정우택법’으로 바꿨어야 했다.

법사위원회라고 다르지 않다. 이상민 위원장은 위헌성이 있고 법치주의에 반하지만 ‘여론’ 때문에 통과시킬 수밖에 없다며 끌탕을 했다지만 여론이 뭔지도 모르는 국회의원을 빼줄 이유가 없다. 그의 이름도 법안에 들어가야 한다. 여야 원내대표들은 시행시기를 1년6개월 뒤로 늦춰 19대 국회의원들을 김영란법에서 완전히 구출해내는 개가를 거뒀다. 이들의 이름도 넣자. 길더라도 할 수 없다.

금주법만큼이나 위험한 극단적 도덕주의 법안이다. 그렇다고 김영란 한 사람만을 역사의 평가 대상으로 남겨둘 수 없다. 표가 무섭다며 나라와 국민의 이익을 등진 포퓰리스트들의 이름도 모두 남겨둬야 한다. 법도 아니라면서 찬성표를 던진 226명이다. 국민들은 무섭지 않지만 시민단체의 낙선운동 겁박에는 소스라치는 사람들이다. 여론이 무엇인지 모르면서도 여론이 무섭다며 다수의 틈에 숨은 인간들이다.

암울한 금주법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이제 알 카포네가 등장할 차례다. 윌러들에 휘둘린 한심한 226명의 볼스테드들이여, 당신들의 책임이다.

김정호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