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수 새누리당 보수혁신특별위원장(오른쪽)이 19일 지하철 1호선 출근길에서 한 시민과 얘기하고 있다. 은정진 기자
김문수 새누리당 보수혁신특별위원장(오른쪽)이 19일 지하철 1호선 출근길에서 한 시민과 얘기하고 있다. 은정진 기자
19일 아침 지하철 출근길에서 만난 김문수 새누리당 보수혁신특별위원장은 평소보다 살이 빠진 모습이었다. 그는 “16일부터 18일까지 고향인 대구에서 ‘택시 운전’을 해 몸이 많이 피곤하다”고 했다. 그럼에도 표정은 자신감이 넘쳐 보였다. 지하철과 버스로 경기 부천 역곡역에서 서울 신길역을 거쳐 여의도역, 국회의사당역까지 출근하는 50여분 동안 김 위원장은 만나는 시민들에게 밝게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김 위원장은 그런 틈틈이 기자에게 정치 개혁에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세월호법·민생법안 분리해야”

그는 우선 공천제도 개선을 강력하게 추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김 위원장은 “(중앙당이 갖고 있는) 공천권은 최고의 기득권”이라며 “국회가 갖고 있는 체포동의안과는 비교가 안 된다”고 말했다.

이어 “그야말로 국회의원을 임명직처럼 쥐고 있는 게 공천권”이라며 “특히 경상도 전라도는 여야 모두 실질적으로 국회의원을 임명하는 것 아니냐. 어마어마한 권한이고 사유물”이라며 “소수의 보스가 당을 사당화하고 그걸 가지고 당을 좌지우지하는 최대의 ‘먹잇감’”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또 “이제 한국 정치도 변해야 한다. 국민참여경선을 통해 국민들이 공천하도록 여야 합의를 통해 법제화할 것”이라며 “그러면 선거 관리도 투명해진다”고 강조했다.

지난 대선과 총선 당시 여야가 폐지하겠다고 했다가 지켜지지 않은 국회의원 ‘불체포 특권(국회의원이 현행범이 아닌 한 회기 중 국회의 동의 없이 체포 또는 구금되지 않도록 하는 것)’에 대해선 형사소송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현재처럼 체포동의안을 가결한 뒤 법원이 구속적부심을 하는 방식에서 구속적부심을 통해 유죄에 대한 적합 판정을 내린 뒤 체포동의안을 제출하는 방식이다. 김 위원장은 “의원들의 비리나 부정을 숨기는 방패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현 무기명 비밀투표도 기명 공개투표로 바꿔야 한다”고 했다.

다수당이 일방적으로 법안 처리를 못하도록 한 국회 선진화법 개정에 대한 필요성을 묻자 “취지는 좋게 출발했지만 현실이 그 뜻대로 안 되고 있다. 법 제도를 선용해야 하는데 악용하기 시작해 부작용이 많아졌다”며 개정 필요성에 공감했다.

세월호 정국에 대한 견해도 털어놨다. 김 위원장은 “희생자 가족들 모두 평생 잊을 수 없는 정신적 외상을 입었기에 이들을 위로하는 것은 우리 모두가 떠안을 일이지만 세월호로 끝장을 보자 한다면 민생과 나라를 같이 침몰시켜 끝내자는 것과 같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이제 세월호 특별법과 민생법안을 분리해야 하는 시기가 된 것 같다”고 했다.

◆재·보선 출마, 명분 없었다

새누리당은 지난 7·30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십고초려를 해서라도 김 위원장이 서울 동작을에 출마하도록 설득하겠다’고 했지만 그는 끝내 거절했다. 답은 명료했다. 10년 동안 경기 부천 소사에서 3선 국회의원을 했고 재선 경기지사까지 지낸 사람이 갑자기 서울에 나타나는 건 명분이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는 “주변에서 ‘퇴임 후 공백이 생기면 안 좋다’, ‘여의도로 복귀하자’는 권유가 있어 지난 3월 지사직 사퇴 후 출마를 검토했지만 남은 석 달 임기를 잘 마무리하고 싶었다”며 거부했다.

그는 “정치를 바꾸고 새로운 나라를 만들어보는 데 내 남은 삶을 바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국회의원이 돼 거기서 어떻게 한다, 이건 두 번째였다”고 말해 대선 출마를 기정사실화했다.

인터뷰 중 김 위원장은 옷에서 삼색 볼펜을 하나 꺼냈다. 지난 6월 퇴임 때 경기도의 한 공무원이 “빨간색은 새누리당, 파란색은 새정치민주연합, 그리고 검은색은 김 지사님을 상징한다”며 “볼펜처럼 한 곳에서 하나로 화합하는 정치를 해달라”고 선물한 것이다. 대선에 대한 의지가 반영된 물건이냐는 질문에 그는 “특별한 의미라기보다는 도민들과 함께 있었고 그분들과 함께 썼던 펜이라는 의미에서 들고 다닌다”고 했다.

김문수 위원장은

노동운동하다 정치 입문…21년째 부천 아파트 거주…車 없어 대중교통 이용

경기지사를 지낸 김문수 새누리당 보수혁신위원장은 여권 정치인으로는 드물게 노동운동가 출신이다.

서울대 경영학과 재학 당시 교련 반대 시위와 민청학련 사건으로 두 번 제적당한 뒤 1975년 청계 피복공장 재단보조공으로 노동 현장에 투신했다. 1986년에는 5·3 직선 개헌 투쟁의 배후 조종자로 몰려 2년5개월 동안 옥살이를 하기도 했다.

김 위원장은 1990년 이재오 새누리당 의원과 민중당을 창당했지만 “호랑이 굴에 들어가 호랑이를 잡겠다”며 3당 합당으로 탄생한 민주자유당에 입당했다. 이후 신한국당, 한나라당(새누리당 전신)에서 15·16·17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그는 정계에 발을 들여놓을 때부터 대권 주자로 성장한 지금까지 21년 동안 경기 부천에 있는 한 아파트에 살고 있다. 지난 3월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가 공개한 김 위원장의 재산은 총 4억5177만원으로 17개 광역단체장 가운데 16위였다. 지난 6월 말 경기지사 퇴임 후에는 개인 자동차나 수행비서 없이 대중교통을 이용해 혼자 다닌다.

지사 시절부터 지금까지 바닥 민심을 들어보겠다는 이유로 여러 번 택시기사로 변신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