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아우베스의 멋진 '바나나킥'
바나나의 열량은 생과일 중 가장 높다. 그런데도 영양 흡수가 빠르다. 먹기 편하고 칼륨과 섬유질까지 많아 다이어트용으로도 인기다. 손가락만한 몽키바나나는 ‘원숭이 바나나’ ‘베이비 바나나’ ‘세뇨리타(아가씨)’로 불린다. 맛이 더 좋지만 물량이 많지 않아 값은 비싸다.

그러나 서구에서 바나나와 원숭이는 유색인종을 비하하는 모독의 의미로도 쓰인다. 바나나의 어두운 역사 때문이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마르케스의 소설 ‘백년 동안의 고독’에는 바나나 학살 장면이 등장한다. 1928년 콜롬비아 바나나 농장의 노동자 학살 사건을 다뤘는데, 이른바 ‘바나나 공화국’의 비극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바나나 공화국’은 1차산품을 수출하는 저개발 국가들을 일컫는다. 부패한 독재국가를 경멸적으로 부르는 말이기도 하다.

이런 이미지 때문일까. 유럽 축구장에서는 백인이 아닌 선수에게 바나나를 던지거나 원숭이 울음소리를 내는 악성 팬들이 많다. 그저께 스페인 프로축구에서도 그랬다. 코너킥하려는 브라질 출신의 아우베스에게 바나나가 날아왔다. 그러나 그는 태연하게 이를 주워서 천천히 까먹고 킥을 날렸다. 이 의연한 대응으로 그는 영웅이 됐고 바나나는 인종차별 반대의 아이콘이 됐다.

경기 후 그는 “스페인에서 뛴 지 11년이 됐지만 상황은 바뀌지 않았다”며 “팀 동료와 함께 인종차별에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려고 바나나가 날아오길 기다리고 있었다”고 말했다. 부상 때문에 경기장에 오지 못한 동료는 집에서 TV를 보고 바나나 인형을 든 아들과 찍은 사진을 트위터에 올렸다. ‘우리는 모두 원숭이’라는 글도 남겼다. 그러자 ‘바나나 인증샷’을 SNS에 올리는 축구 스타와 연예인 등의 참여가 봇물처럼 터졌다. 브라질 톱모델은 바나나 비키니까지 선보였다.

과일농장을 운영하는 아우베스의 아버지는 뜻밖의 행운까지 얻었다. 바나나 사건이 알려지면서 브라질 전역에서 주문이 폭주한 것이다. 아들의 봉변이 가문의 영광으로 바뀐 셈이다. 아우베스에게 바나나를 던진 악성 팬은 홈경기장 평생 출입금지 처분을 당했다.

공교롭게도 비슷한 때에 미국 NBA의 LA클리퍼스 구단주가 여자친구에게 “경기에 흑인과 함께 오지 말라”고 했다가 영구제명을 당할 처지에 놓였다. 인종차별이라는 고질적인 악습을 멋진 ‘바나나킥’으로 날려버린 아우베스에게 박수를 보낸다. 그동안 갖가지 수모를 견뎌온 우리 선수들의 응어리진 마음도 함께 풀렸으면 좋겠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