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선거 유세장 된 병원 착공식
지난 26일 서울 상암동 상암월드컵파크 10단지 인근 부지에서 열린 푸르메어린이재활병원 착공식 현장. 오전 10시로 예정된 착공식 시작 한 시간 전부터 현장엔 붉은색과 푸른색 점퍼를 입은 채 어깨에 흰 띠를 두른 수십 명의 사람들로 붐볐다. 6·4 지방선거에 구청장과 구의회 출마를 준비 중인 새누리당과 민주당 예비후보들이었다.

이들은 착공식 현장 곳곳을 돌아다니며 시민들에게 명함을 건네고 악수를 청하는 등 자신의 이름을 알리느라 분주했다. 이날 행사엔 박홍섭 마포구청장, 김영종 종로구청장과 마포구의회 및 해당 지역구의 서울시의회 현직 의원들도 총출동했다. 서울시장 출마를 선언한 정몽준 새누리당 의원을 대신해 부인인 김영명 여사도 참석했다.

각 당 후보들이 사실상 선거 유세를 하느라 행사장이 혼잡해지면서 착공식은 당초 예정된 오전 10시를 10분가량 넘겨서야 시작됐다. 보다 못한 행사 사회자가 “착공식을 빨리 시작해야 하니 인사는 나중에 해 달라”고 수차례 부탁했을 정도였다. 착공식의 마지막 순서로 열린 시삽식에선 참석한 현직 지방의회 의원들이 앞다퉈 시삽을 하면서 사진 촬영을 하느라 바빴다. 이 때문에 시삽식은 세 번에 걸쳐 진행됐다. 시삽식을 하려는 사람들이 몰리다 보니 푸르메어린이재활병원 건립에 힘을 보탠 기부자들이 차례에서 밀릴 정도였다. 행사가 끝난 후 새누리당 후보들은 김 여사와 사진을 찍기 위해 줄을 서기도 했다. 이런 광경을 지켜본 시민들은 “오늘 행사가 병원 착공식인지 선거 유세장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라며 혀를 찼다.

지방선거 출마자들이 이름을 알리기 위해 각종 행사장에 참석하는 것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후보들이 현장에서 시민들을 적극 만나 의견을 듣는 것은 권장할 일이다. 그러나 후보들의 선거 유세 때문에 본래 행사의 취지가 가려지는 것은 곤란하다. 푸르메어린이재활병원은 정부 예산이 아닌 국내 최초로 시민 6000여명의 기부로 만들어지는 병원이다. 그럼에도 병원 착공식의 주인공이 시민들이 아니라 지방선거 출마 후보자들이 된 것 같아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강경민 지식사회부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