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케미칼(옛 호남석유화학)이 해외 자회사들의 실적 부진과 제품 가격 급락이라는 2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1조5200억원을 들여 사들인 말레이시아 법인은 인수 1년여 만에 적자로 돌아섰고 영국 중국 등 자회사도 줄줄이 손실을 내고 있다. 석유화학 업황 둔화에다 중국 경쟁사들의 물량 공세로 주요 제품 가격까지 크게 떨어져 총체적인 난국에 빠진 모양새다. 석유화학과 유통을 두 날개 삼아 글로벌 기업으로 비상하겠다는 신동빈 롯데 회장의 청사진에도 빨간불이 켜졌다는 관측이 나온다.

◆속 썩이는 자회사들

롯데케미칼은 6일 자회사를 포함한 연결 기준으로 지난해 매출 15조9028억원, 영업이익 3717억원, 순이익 3161억원 등의 실적을 확정했다. 직전 연도와 비교하면 매출은 1.3% 늘어 비슷했지만 영업이익은 74.6%, 순이익은 72.0% 각각 급감해 4분의 1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2011년 1조4689억원의 영업이익으로 그룹 내 최대인 롯데쇼핑(1조6948억원)에 육박했던 것과 대조적이다.

경기변동에 민감한 석유화학 업종의 특성을 감안하더라도 이 같은 실적 둔화는 기대에 크게 못 미치는 결과라는 게 업계의 평가다. 자회사들의 고전이 롯데케미칼의 발목을 잡았다. 2010년 지분 100%를 인수한 말레이시아의 타이탄케미칼은 이듬해 377억원 순익을 냈다가 작년엔 260억원 적자 전환했다. 타이탄케미칼 인수금액 1조5200억원은 최근 10년 새 롯데의 인수·합병(M&A) 중 가장 큰 규모여서 관심을 모았다.

폴리에틸렌(PE) 폴리프로필렌(PP) 등 범용상품에 치중하는 회사인 탓에 기술력에서 경쟁사들과 차별화하지 못했고 업황까지 악화하면서 손실을 냈다.

작년 말 흡수 합병한 케이피케미칼도 합성섬유 폴리에스테르 원료인 고순도 테레프탈산(PTA) 시장이 공급과잉에 빠진 영향으로 적자를 내 롯데케미칼의 어깨를 무겁게 했다.

영국법인도 131억원 적자로 돌아섰고, 호남EP 중국법인은 2년 연속 손실을 냈다. 2011년 536억원 순익을 기록해 힘을 보탰던 파키스탄PTA 법인은 지난해엔 순익 1000만원으로 가까스로 적자를 면했다.

◆폴리에스테르 원료 가격 급락

롯데케미칼은 폴리에스테르 공정에 사용되는 모노에틸렌글리콜(MEG) 시장 국내 1위 업체다. 석유화학협회에 따르면 작년 국내 생산량 117만 중 86%인 101만을 이 회사가 책임졌다.

하지만 2월 말부터 MEG 가격이 폭락하면서 새로운 근심거리가 생겼다. 지난 4일 주간 평균가격은 당 1045달러로 전주에 비해 7.9% 급락했다. 작년 6월11일(-9.5%) 이후 약 9개월 만에 최대 하락률이다.

유화업계 관계자는 “중국 춘제(설) 이후 폴리에스테르 수요가 늘어날 것에 대비해 중국 기업들이 MEG 재고를 크게 늘렸다”며 “그런데 수요가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나자 MEG 가격이 급락세로 돌아섰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평균 73만 수준이었던 중국의 MEG 재고는 2월 말 90만까지 늘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2분기 이후부터는 경영환경이 점차 개선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봤다. 박영훈 LIG투자증권 연구원은 “중국의 재고 급증으로 MEG 가격이 조정을 받고 있지만 단기에 그칠 전망”이라며 “작년 4분기 적자를 낸 롯데케미칼의 PTA 사업도 점차 마진이 개선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해영 기자 bon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