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천 찾은 美 국장 노출…발표 11시간 前 "체결 임박" 보도로 비상
“통과됐습니다. 5분 뒤 발표합니다. 300억달러입니다.”

2008년 10월30일 새벽 4시25분께(한국시간) 미국 뉴욕총영사관의 윤여권 재경관은 전화로 서울의 신제윤 기획재정부 국제업무관리관(차관보)에게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가 한국과의 통화스와프 계약 체결 안건을 상정해 처리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FOMC의 최종 결정을 뜬눈으로 기다리고 있던 청와대 경제수석실과 재정부 국제금융국에선 환호성이 터졌다.

미국과의 통화스와프 협정 체결이 발표된 30일 금융시장은 사상 유례 없는 호조를 보였다. 코스피지수는 장이 열리자마자 100포인트 넘게 뛰더니 하루 만에 115.75포인트(11.95%) 상승, 1084.72를 기록했다. 이날 상승폭과 상승률은 증시 개장 이래 최대였다. 원화가치도 달러당 177원이나 오르며(환율 하락) 1250원에 마감했다. 하루 상승폭으로는 사상 두 번째였다. 금융위기를 일시에 잠재운 한·미 통화스와프는 그러나 체결 직전 아슬아슬한 위기도 있었다.

◆한은 “재정부가 언론플레이”

과천 찾은 美 국장 노출…발표 11시간 前 "체결 임박" 보도로 비상
한·미 통화스와프 체결이 미 중앙은행(Fed)을 통해 공식 발표되기 하루 전인 10월29일 오전 정부 과천청사 1동 재정부의 신 차관보 사무실에 미 재무부 국장 일행이 은밀히 방문했다. 다음날 발표될 한·미 통화스와프에 대한 한국 정부의 환영 성명을 조율하기 위해서였다. 미 재무부는 통화스와프 대상에 한국 외에 싱가포르 브라질 멕시코까지 포함시키고, 각국이 공동 환영성명을 내도록 물밑 작업 중이었다.

문제는 성명 문안을 논의하기 위해 신 차관보 방에 들른 미 재무부 국장 일행이 재정부 출입기자들에게 노출되면서 생겼다. 한·미 통화스와프와 관련된 방문이란 걸 눈치 챈 기자들이 집요한 확인에 들어갔다. 급기야 한 인터넷매체가 오후 5시41분 ‘한·미 통화스와프 계약 체결 임박’이란 보도를 내보냈다. 돈 냄새에 민감한 외환시장에도 한·미 통화스와프 체결 소문이 쫙 퍼졌다. 전날 25원30전이나 오르면서 달러당 1500원대로 상승했던 원·달러 환율은 이날 하루에만 40원80전 급락(원화가치 상승)하면서 달러당 1427원으로 떨어졌다.

신 차관보는 이날 저녁 언론의 빗발치는 확인 요청에 엠바고(정해진 시간까지 보도 금지)를 거는 조건으로 한·미 통화스와프 협정 체결을 몇몇 언론사에 확인해줬다. 신제윤의 회고. “다음날 금융시장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한·미 통화스와프의 홍보를 극대화하는 것도 중요했다. 그래서 일부 신문기자들에게 엠바고를 걸고 확인해줬다.” 이렇게 해서 한국시간으로 30일 새벽 4시30분에 발표된 한·미 통화스와프 협정 체결이 같은 날 새벽에 배달된 조간신문 1면을 장식할 수 있었다.

이 소식이 전해진 한국은행엔 비상이 걸렸다. 한·미 통화스와프 체결 사실을 발표 전까지 극비로 해줄 것을 Fed로부터 신신당부 받은 상태였다. 한은은 신 차관보가 언론에 먼저 흘려 한·미 통화스와프 체결의 공(功)을 가로채려 한다고 봤다. 격노한 이성태 한은 총재는 재정부와 약속했던 공동 발표시간인 30일 오전 8시30분보다 기자회견을 두 시간 앞당기라고 지시했다.

같은 시간 뉴욕에서 Fed와의 협의를 끝낸 이광주 한은 부총재보는 대한항공 비행기를 타고 태평양을 건너고 있었다. 극도의 피로감이 몰려왔지만 한숨도 잠을 잘 수 없었다. JFK공항에서 비행기 탑승 직전 ‘한국 언론 인터넷 사이트에 한·미 통화스와프 체결이 보도됐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순간 ‘딜(deal)은 끝났구나’라는 생각이 스쳤다.

“어떻게 됐어?” 30일 새벽 5시 인천공항에 내린 이 부총재보는 마중나온 한은 직원에게 다급하게 물었다. “발표는 됐습니다. 일단 한은으로 바로 오시랍니다.” 이 부총재보는 이날 아침 6시30분에 열린 한은 기자회견에서 “통화스와프 계약의 주체는 미 대통령도, 재무부 장관도 아닌 Fed”라는 말로 시작했다. “재정부가 노력한 측면이 있지만 Fed와의 계약 당사자는 분명히 한은”이라고 못을 박았다.

◆재정부 “한은이 신사협정 깨”

재정부도 불쾌해 했다. 한은이 기자회견을 당초 약속보다 두 시간 앞당겨 통화스와프 체결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신 차관보는 “한은은 실무적인 협의를 맡았을 뿐 통화스와프 체결은 강만수 장관이 강력히 주장하고 밀어붙여 성사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물론 한은은 동의하지 않았다. 이성태의 증언. “재정부가 미 재무부 인맥을 동원해 우회적으로 애를 쓴 건 안다. 하지만 최종 의사결정권은 벤 버냉키 Fed 의장과 그 밑의 수석부의장으로 있는 돈 콘이 갖고 있었다. 한은은 처음부터 이 창구로 추진했다.”

급기야 한은이 신 차관보 경질과 재정부의 사과를 요구하면서 양측은 심각하게 대립했다. 두 기관의 대립은 강 장관이 이 총재에게 전화를 걸어 유감을 표시하면서 일단락됐다. 하지만 환율과 금리정책으로 가뜩이나 불협화음이 심했던 강 장관과 이 총재 관계는 통화스와프 갈등으로 더 벌어졌다.

당시 양측의 협상과정을 잘 알고 있는 정부 고위관계자의 증언. “돌이켜보면 재정부는 미 재무부 인맥을 통해 공중전을, 한은은 Fed를 상대로 지상전을 한 것이다. 한·미 통화스와프는 두 기관의 합작품이다. 어느 한쪽만의 노력으로 된 건 아니다. 또 일이 잘 풀린 데는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 간의 개인적 친분도 보이지 않게 작용했다.”

keyword 통화스와프(Currency swaps)

나라끼리 서로의 통화(화폐)를 바꾸는 것. 외환이 급할 때 자기 나라 돈을 맡기고 상대국의 화폐(외환)를 빌려 오는 것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한국은 은행들의 외화 차입이 끊겨 달러 부족 사태가 우려됐다. 때문에 환율이 폭등(원화가치 폭락)하고 금융시장이 불안했다. 이를 진정시키기 위해선 언제든지 달러를 충분히 구할 수 있다는 보장이 필요했다. 그 수단이 미국과의 통화스와프였다.

세계 기축통화인 달러 발행국 미국과 통화스와프 계약을 맺으면 한국은 마이너스 통장처럼 필요할 때 원화를 맡기고 달러를 조달할 수 있다. 1997년 말 외환위기 때처럼 국제통화기금(IMF)에서 달러를 빌려오면 구조조정 등 엄격한 정책조건이 요구되지만 나라 간 통화스와프에는 그런 조건이 없어 유리하다. 정부와 한국은행이 한·미 통화스와프에 전력투구한 이유였다. 어쨌든 한국은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한·미 통화스와프 계약을 맺어 달러 조달 숨통이 트이면서 위기 극복의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었다.

특별취재팀 차병석 정치부 차장(팀장), 이심기 경제부 차장, 서욱진 산업부 차장, 류시훈 금융부 기자 mbnomic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