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연등 거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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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
한국 선불교를 중흥한 경허(鏡虛)선사가 제자 만공(滿空)과 함께 시주를 받아 절로 돌아가고 있었다. 피곤한 만공이 “다리도 아프고 자루가 무거워 더 이상 못 가겠습니다”고 투덜댔다. 경허는 느닷없이 밭에서 남편과 일하던 아낙네를 끌어안았다. 남편이 소리를 지르며 쫓아오자 둘은 줄행랑쳤다. 한숨 돌린 만공이 이유를 묻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놀라 도망치는 바람에 힘든 줄 모르고 여기까지 오지 않았느냐.”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一切唯心造)’는 가르침이다.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켰던 선승 혜월(慧月)의 재물에 대한 생각도 재미 있다. 황무지를 다섯 마지기의 옥답으로 개간해 절 살림에 보태 쓸 때의 일이다. 주민들이 틈만 나면 논을 팔라고 졸라대는 통에 어느날 헐값에 넘겨버렸다. 그리고 고용한 일꾼들과 함께 산비탈을 개간하기 시작했다. 논 판 돈이 다 품삯으로 들어갔으나 완공된 건 다랑논 세 마지기뿐이었다.
그런데도 혜월이 싱글벙글하자 제자들이 따졌다. “옥답 다섯 마지기 판 돈을 모두 품삯으로 들인 데다 뼈빠지게 일하고도 남은 건 달랑 다랑논 세 마지기뿐이니 손해가 막심합니다.” 혜월은 빙긋이 웃으며 이렇게 대꾸했다. “무슨 셈법이 그 모양이냐. 옥답 다섯 마지기는 그 자리에 있지. 논 판 돈은 동네 사람들이 품삯으로 받아 생활에 보태썼지. 게다가 논 세 마지기가 새로 생겼다. 이득을 봐도 크게 본 것인데 왜 즐겁지 않겠느냐.”
이런 셈법이라면 다툼이 생길 리 없다. 사는 것도 깃털처럼 가벼워질 것이다. 법력 높은 선승들은 죽음 앞에서도 거리낌이 없다. 임종을 앞둔 서암(西庵)에게 제자들이 열반송을 청했다. “나는 그런 거 없다.” “그래도 누가 물으면 뭐라고 답해야 할까요.” “그 노장, 그냥 그렇게 살다가 그렇게 갔다고 해라.”
오늘은 부처님 오신 지 2556년 되는 날이다. 전국 사찰에 일제히 연등(燃燈)이 내걸렸다. 연등을 거는 건 헛된 집착 버리고 마음을 환하게 밝히기 위해서일 게다. 하지만 세상의 혼탁함은 여전하다. 하루가 멀다하고 터지는 거짓과 비리 의혹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불가에서조차 권세와 재물을 둘러싼 반목 질시가 난무한다.
중생의 본래 마음은 빛이었으나 그 빛이 가려져 욕심과 분노, 어리석음이 됐다던가. 마음이 어두우면 나쁜 업을 짓고, 밝으면 좋은 업을 짓는다고 했다. 연등 거는 마음으로 조금씩 아집과 욕심을 덜어내다 보면 언젠가는 빛이 들게 될까.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一切唯心造)’는 가르침이다.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켰던 선승 혜월(慧月)의 재물에 대한 생각도 재미 있다. 황무지를 다섯 마지기의 옥답으로 개간해 절 살림에 보태 쓸 때의 일이다. 주민들이 틈만 나면 논을 팔라고 졸라대는 통에 어느날 헐값에 넘겨버렸다. 그리고 고용한 일꾼들과 함께 산비탈을 개간하기 시작했다. 논 판 돈이 다 품삯으로 들어갔으나 완공된 건 다랑논 세 마지기뿐이었다.
그런데도 혜월이 싱글벙글하자 제자들이 따졌다. “옥답 다섯 마지기 판 돈을 모두 품삯으로 들인 데다 뼈빠지게 일하고도 남은 건 달랑 다랑논 세 마지기뿐이니 손해가 막심합니다.” 혜월은 빙긋이 웃으며 이렇게 대꾸했다. “무슨 셈법이 그 모양이냐. 옥답 다섯 마지기는 그 자리에 있지. 논 판 돈은 동네 사람들이 품삯으로 받아 생활에 보태썼지. 게다가 논 세 마지기가 새로 생겼다. 이득을 봐도 크게 본 것인데 왜 즐겁지 않겠느냐.”
이런 셈법이라면 다툼이 생길 리 없다. 사는 것도 깃털처럼 가벼워질 것이다. 법력 높은 선승들은 죽음 앞에서도 거리낌이 없다. 임종을 앞둔 서암(西庵)에게 제자들이 열반송을 청했다. “나는 그런 거 없다.” “그래도 누가 물으면 뭐라고 답해야 할까요.” “그 노장, 그냥 그렇게 살다가 그렇게 갔다고 해라.”
오늘은 부처님 오신 지 2556년 되는 날이다. 전국 사찰에 일제히 연등(燃燈)이 내걸렸다. 연등을 거는 건 헛된 집착 버리고 마음을 환하게 밝히기 위해서일 게다. 하지만 세상의 혼탁함은 여전하다. 하루가 멀다하고 터지는 거짓과 비리 의혹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불가에서조차 권세와 재물을 둘러싼 반목 질시가 난무한다.
중생의 본래 마음은 빛이었으나 그 빛이 가려져 욕심과 분노, 어리석음이 됐다던가. 마음이 어두우면 나쁜 업을 짓고, 밝으면 좋은 업을 짓는다고 했다. 연등 거는 마음으로 조금씩 아집과 욕심을 덜어내다 보면 언젠가는 빛이 들게 될까.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