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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재난망조차 없는 IT강국

기술방식 등 검토에 10년 표류
'사업용'은 유사시 불통 가능성
전용망 구축 시급히 서둘러야

김응배 <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책임연구원 >
2003년 130여 명의 아까운 생명을 앗아간 대구지하철 참사가 터졌다. 정부는 이를 계기로 국가재난안전통신망(재난망) 구축에 나섰으나 10년 가까이 지난 오늘까지 이렇다 할 성과없이 표류하고 있다. ‘재난망’이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지금까지 각 기관이 개별적으로 구축해 사용하던 통신망을 하나의 표준화된 통신방식으로 통합하는 것이다. 평시에는 각자 사용하다가 재난 발생시 소방, 경찰, 응급의료기관 등이 통합지휘통신망으로 구축하게 된다.

재난은 초기대응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소방 경찰 응급의료기관과 전기 가스안전관리기관 등이 제일 먼저 출동해 인명구조와 진압활동을 신속하게 전개해야 한다. 이미 영국, 네덜란드, 핀란드 등 유럽 대부분의 국가와 호주, 중국, 싱가포르 등 아시아 국가까지 이런 재난망을 갖췄다. 우리나라는 행정안전부가 전담반을 구성해 검토한 지 수년이 지났지만 기술조차 결정하지 못한 채 허송세월만 보내고 있다. 이는 무선통신장비업자들의 밥그릇 싸움과 정책 결정권자의 보신주의, 재난망에 부적합한 사업용 통신망을 돈 내고 사용하라는 통신사업자의 주장이 반영된 것이다.

최근에는 통신사업자들이 연합해 “재난망을 굳이 자가통신망으로 할 것이 아니라 초기투자비용이 적은 사업용통신망을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실 행정안전부는 이미 전문기관 두 곳에 의뢰해 “사업용통신망을 이용하는 것은 부적합하고, 재난관련 기관만 이용할 수 있는 자가통신망으로 구축해야 한다”는 결론을 얻은 바 있다. 그런데도 통신사업자의 주장에 밀려 재난망의 방향타조차 놓고 있다.

사업용통신망이 재난망으로 부적합한 까닭은 분명하다. 1986년 2월 중국의 진보충 대위가 조종한 미그 21기가 우리나라에 불시착했을 때 수도권에 경보 사이렌이 14분간 울렸다. 불안감을 느낀 시민들의 통화량이 일시에 폭주해 유동인구가 많은 중앙, 을지, 혜화, 영동 관내의 전화가 무려 20여 분이나 불통됐다. 광화문 교환기는 아예 다운돼 일대에 밀집한 정부기관 업무가 하루종일 마비됐다. 이를 계기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만 사용할 수 있는 행정전화망이 지체 없이 구축됐고, 전자정부망으로 발전하는 전기가 됐다.

만약 초기투자비용이 적게 들어간다는 이유만으로 국가통신망을 인터넷이나 일반가입자들이 보편적으로 이용하는 사업용통신망으로 구축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디도스(DDos) 공격과 같은 해킹이나 대형재난이 발생할 경우 정부 업무가 마비되거나 정작 필요할 때에 인명구조 활동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질 것은 너무도 자명하다.

또한 불특정다수가 이용하는 공중 통신망은 유사시에 특정인의 통신망 접속을 우선적으로 허용하기 위해 일반가입자의 이용을 제한하는 새로운 서비스를 개발해야 하는데, 이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통신량 폭증에 무방비로 노출되는 것이다.

아직 검증이나 구현된 사례도 없고 시장성은 물론 실현성조차 없는 제안을 받아들여 재난망에 적용할 경우 이에 따른 경제적, 사회적 위험 부담은 누가 책임질 것인가?

벌써 국가 재난망 구축 논의를 시작한 지도 1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그 세월의 절반을 기술방식과 통신망 구성방식 검토 등에 소비했다. 그런데 정부는 그동안 국민 세금으로 전문기관에 의뢰해 얻은 연구용역 결과를 무시하고 통신사업자들이 주로 후원하는 한국전자파학회에 다시 재검토를 의뢰했다.

얼마나 더 많은 재난을 겪고, 얼마나 더 많은 인명과 재산이 희생돼야 하나? 정보기술(IT)과 이동통신 강국이라면서 재난망조차 없는 대한민국이 과연 복지국가라고 할 수 있을까. 국가재난망의 조속한 구축이 정답이다.

김응배 <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책임연구원 ebkim@etri.re.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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