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 시대 마스터플랜] '준비된 노후'는 축복
평균수명 100세는 과거에는 꿈조차 꿀 수 없었다. 환갑 때 장수를 축하하는 의미로 큰 잔치를 열던 전통은 그래서 나왔다. 오죽하면 70세까지 사는 사람이 드물다는 시(당나라 시인 두보의 곡강시 · '人生七十古來稀')까지 쓰였겠는가.

평균수명이 크게 늘어난 것은 최근의 일이다. 환경 개선과 의료 기술의 발달 덕분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09년 기준 우리나라 인구의 평균수명은 80.5세를 기록했다. 지난해 세계보건통계를 봐도 비슷하다. 남성의 기대수명이 76세,여성의 기대수명이 83세다. 100세 이상인 고령자들도 점점 늘고 있는 추세다.

하지만 '장수=축복'이라는 데 동의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경제적인 안정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여생이 즐겁기만 하지는 않은 탓이다. 심지어 일부 은퇴 전문가들은 '노후 준비 없는 장수는 재앙'이라고까지 말한다.

◆100세 시대,축복인가 재앙인가

우리나라 사람들은 '100세 인생'에 대해 상반된 의견을 보였다. 질문을 던진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 답변이 극명하게 엇갈렸다.

기획재정부가 지난달 '인생 100세 사회 슬로건' 공모에 참여한 8세부터 86세까지의 참가자 26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80.6%가 100세 인생을 긍정적으로 본다고 답했다. "일단 오래 사는 것은 나쁘지 않다"는 반응이다.

100세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는 건강(55.4%)을 첫손에 꼽았다. 이어 가족이 11.7%였고 △일자리(10.7%) △자산(10.4%) △문화 및 여가(7.8%) △재능 기부 등 나눔(4.0%) 순이었다. 전체 응답자의 67%는 100세 인생을 준비하고 있었지만 그렇지 않다는 대답도 33.0%에 달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자신의 미래'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계해야 할 사람들을 대상으로 비슷한 질문을 던지자 다른 답이 나왔다. 지난 6월 전국 30~69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인생 100세 시대 대응 국민인식 조사'에서는 응답자의 43.3%가 100세 이상까지 사는 것은 '축복이 아니다'고 답했다. 축복이란 답변은 28.7%에 그쳤고 28%는 '그저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 이유에 대해 38.3%는 '노년기가 너무 길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크고 현재의 노인층에 대한 이미지가 썩 좋지 않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중장년층은 자신의 노후를 직접 준비해야 하는 동시에 자녀 사교육비 지출도 가장 많이 해야 하는 세대"라며 "일자리 없이 은퇴 후 30~40년을 생활할 계획을 미리 짜야 하는데 생각만큼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노후 준비는 빠를수록 유리

[100세 시대 마스터플랜] '준비된 노후'는 축복
우리나라 사람들은 선진국에 비해 노후 준비를 충분히 하지 못한다. 국민소득 대비 물가가 높은 편인 데다 자녀 사교육비 지출이 많은 탓이다. 그런데도 노인에 대한 사회보장 수준은 낙후했다는 평가다.

한 글로벌 금융회사가 세계 17개국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더니 영국 프랑스 등 해외에서는 은퇴를 생각할 때 '행복' '자유' 등을 연상했다. 반면 한국인은 '경제적 어려움' '두려움' 등 비관적인 단어를 주로 떠올렸다. 은퇴를 두려워하는 가장 큰 이유로는 "저축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답변했다.

앞으로는 자녀의 부양도 기대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2000년만 해도 통계청 사회조사에서 자녀가 부모의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응답이 70.7%에 달했지만 작년에는 이 수치가 30.6%로 낮아졌다. 전문가들은 이 비중이 10~20년 내 선진국 수준인 1~2% 선까지 떨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은퇴를 했다고 해서 생활비가 크게 줄어들 것으로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나이가 많아지는 만큼 의료비나 간병비 지출이 늘어날 수 있어서다. 따라서 당장 눈앞으로 다가온 '100세 시대'를 위해서는 젊을 때부터 차근차근 대비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조언이다. 국민연금 퇴직연금 개인연금 등 연금상품은 빨리 가입할수록 노후에 더 큰 효과를 볼 수 있는 대표적인 대비책이다. 미국 일본 등에서는 은퇴 후 연금에 의존하는 비중이 60~70%에 달한다.

다만 연금상품에 가입할 때는 은퇴 초기에 너무 많이 받아서 나중에 생활비가 부족해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또 너무 아끼려다 막상 연금을 다 못받고 생을 마감할 수도 있기 때문에 연금 지급 시기를 세심하게 조절할 필요가 있다. 언제 어떤 일이 발생할지 알 수 없는 만큼 미리 다양한 '보험 포트폴리오'를 짜놓는 것도 중요하다. 요즘엔 10~30년간 매달 몇 만원 정도 납부하면 평생 병원비를 보장받을 수 있는 실손보험이 인기다.

◆은퇴 시기엔 자산관리 균형 맞춰야

은퇴 시기가 다가올수록 자산관리의 '균형'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한다. 한국 가정의 자산구조는 정상적이지 않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평균 80% 이상이 부동산에 묶여 있어서다.

나이가 들수록 부동산 비중을 낮추고 금융자산 비중을 높일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퇴직 시점까지 부동산과 금융자산의 비율을 50 대 50 정도로 맞추는 게 바람직하다.

노후 설계를 할 때는 퇴직 이후 최장 40년 동안 어떻게 살 것인가를 구체적으로 그려봐야 한다. 재취업을 할 것인지,어떤 취미를 가질 것인지,봉사활동을 할 것인지 등이다.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