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필 깎고 책상 정리하고 뭣하면 방 청소도 한다. 누구랄 것 없이 다 해본 일이다. 시험을 앞두고 공부를 하긴 해야겠는데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얼마나 들여다봐야 효과가 있을지도 모르겠고 그렇다고 아무 것도 안하고 있자니 불안하고 초조하기 짝이 없는 탓이다.

아이들만 그러하랴.어른도 해야 할 일이 많고 부담스러울수록 대들어 처리하기보다 도망치고 싶어한다. 나중에야 어떻게 되든 일단 피하려 드는 셈이다. 골치 아픈 일을 생각해봐야 머리만 지끈거리니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림으로써 잊고자 애쓴다. 다 큰 어른이 게임에 빠져드는 것도 이런 심정 탓일지 모른다.

스마트폰 사용자가 늘어나면서 청소년은 물론 성인들 사이에서도 '앵그리 버드(Angry Birds)'란 게임이 유행이다. 앵그리 버드는 핀란드 벤처기업 로비오사가 개발한 모바일 게임이다. 2009년 청년 몇이 모여 10만달러로 만들었는데 지금까지 전 세계에서 3억건 이상 다운로드됐다니 대박도 이런 대박이 없다.

우리나라에서만 해도 아이폰과 안드로이드가 각각 세계 8위와 3위 이용률을 기록하고 있다는 마당이다. 내용은 극히 단순하다. 잔뜩 화난 새가 나무와 돌 벽돌 틈에 숨은 돼지를 공격해 잡는 것이다. 새는 기능에 따라 빨강 · 노랑 · 파랑 등 다른 색깔을 띠고,돼지는 크기와 모양만 다를 뿐 색은 죄다 연두색이다.

게임이란 게 묘해서 일단 시작하면 끝내기 어렵다. 목표에 집중하느라 가슴을 짓누르는 근심 걱정을 잊게 되는데다 현실에선 맛보기 힘든 성취감 내지 승리감을 얻게 되는 까닭이다. 게다가 쉽고 어려운 단계가 섞여 있어 '이번 단계까지만'이란 유혹에 사로잡히기 십상이다.

'잠깐 머리나 식히자'며 시작했던 게임에 끌려들어가 헤어나오지 못하는 이유다. 실제 성인(19~39세) 게임 중독자만 86만6000명에 달한다는 마당이다(한국정보화진흥원).취업이나 실업 가정불화에 따른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손댔다 그만 중독까지 간다는 얘기다.

어른의 경우 제어해줄 사람이 없다 보니 돌이키기 힘든 지경까지 가는 수가 많다고 한다. 성인 게임중독의 결과는 심할 경우 이혼과 살인에 이를 만큼 끔찍하다. 뭐든 '한번쯤'에서 비롯된다. 두렵고 부담스러울수록 정면으로 부딪쳐 보는 용기와 배짱이 필요하다. 도피의 끝은 나락이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