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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에세이] 꿈꾸는 앉은뱅이 책상

우리 집 거실 한쪽에는 내가 소중히 아끼는 골동품 1호가 놓여 있다. 낡은 앉은뱅이 책상이다. 초등학교에 입학할 당시 아버지는 장남인 필자에게 앉은뱅이 책상을 선물했다.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에는 변변한 가구 브랜드 하나 없던 시절이어서 초등학교에 다니던 누나들은 밥상을 물리고 나서 그 위에서 숙제를 했다.

아버지는 동네 목수 아저씨에게 부탁해서 작은 앉은뱅이 책상을 짜주셨다. "공부 열심히 하라"며 아버지가 그 책상을 집으로 가져와 선물하셨던 그날 기억이 마치 어제처럼 또렷하다. 아마도 아버지는 그 책상에 장남에 대한 당신의 기대와 꿈을 실어 선물했을 것이다. 어찌나 기쁘던지 그날부터 학교에서 돌아오면 책을 가지고 무조건 그 책상에 앉았다. 혹여 동생이 책상에 앉을까봐 "학교에 다니지 않는 어린아이는 책상에 앉으면 안 된다"고 윽박지르기도 했다. 잠시라도 책상을 떠나지 않으려고 동화책이며 소설책을 어찌나 많이 읽었던지 장서가 많지 않던 초등학교 도서실에서 빌려올 책이 거의 없을 정도였다. 책을 많이 읽다 보니 저절로 책 읽는 것이 좋아졌던 것 같다. '가장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 되겠다'는 당찬 꿈도 꾸었던 것 같다.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걸상 딸린 책상이 생겼고,그 앉은뱅이 책상이 몸에 맞지 않을 만큼 커버렸지만 어쩐지 그 책상을 버릴 수 없었다. 필자가 유학을 가고,미국에서 변호사 생활을 하는 동안 20년 넘게 늘 본가의 골방 한쪽 구석을 지키던 그 책상을 결혼해 분가하면서 챙겨 가지고 나왔다. 우리 집에서도 역시 골방에 처박혀 있던 그 책상을 아내가 어느 날 발견해 거실로 가지고 나와서 그 위에다 난 화분을 올려 놓았는데 제법 훌륭한 장식품 구실을 한다. 그 책상은 이를 테면 '첫사랑' 같은 것이었던 것 같다. 남녀 간의 사랑은 아니지만 생각만 해도 너무나 좋고 기쁘고 또 보고 싶은 대상,시간이 지나간 후에도 돌아보면 가슴이 따뜻해지고 힘을 주는 그런 존재였다. 광주에서 중학교를 마치고 서울의 명문이던 경기고등학교에 진학해 정말 기가 죽었다. 집안 좋고 잘사는 아이들 틈에서 촌놈이던 필자는 기가 죽어서 공부를 등한히 했다.

그러다 2학년 초 모의고사에서는 급기야 반에서 꼴찌를 맴도는 성적을 받았다. 아버지가 담임 선생님에게 호출돼 '이대로는 대학 못간다'는 선고를 들었을 때 하늘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그때 골방 한쪽에 있던 그 책상을 보고 힘을 냈다. '처음 그 마음으로,초심을 기억하라'고 격려하는 것만 같았다.

요즘도 가끔 그 책상을 보면 세상을 다 얻은 듯한 벅찬 맘으로 책을 읽던 코흘리개 어린 시절의 꿈과 희망이 떠오른다. 아버지의 기대와 희망,코흘리개 초등학생의 꿈이 버무려진 투박한 그 작은 책상은 앞으로도 계속 우리 집 한쪽 구석을 지키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세상사에 지치고 기가 죽어 어깨가 축 늘어져 돌아오는 어느 날에 또 한번 '꿈꾸는 특권'을 일깨워줄 것이다.

고승덕 < 국회의원 audfbs@unitel.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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