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검사 생활 못해 먹겠네"
"그럼 조서를 경찰이 마음대로 썼고 여기 있는 건 사실이 아니라고? 참 X같네. 휴.이러니까 검사생활 안 하려고 하지…."

지난 22일 서울중앙지법 510호 법정.우리은행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사고 관련자의 공판에서 증인을 신문하던 도중 검사가 내뱉은 말이다. 사건의 전모가 완벽하게 드러나지 않은 상황에서 증인이 진술을 번복하자 그만 평정심을 잃은 것이다. 놀랍게도 다음 날 만난 해당 재판부 관계자는 "검찰의 부적절한 언행을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해당 사건의 증인들이 줄줄이 수사받을 때 한 진술을 뒤집어 검사의 스트레스가 컸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며칠 전 한명숙 전 총리의 정치자금법 위반사건에서도 핵심 증인인 한만호씨가 영화의 한 장면처럼 진술을 번복했다. 수사팀의 한 관계자는 "이제 과거에 뇌물받았던 사건은 입증하지 못할 것 같다. 미국처럼 함정수사를 하는 방법밖에는 없겠다"며 잇따른 증언 번복에 대해 충격을 감추지 않았다.

최근 법정에 나온 피고인이나 증인이 진술을 180도 뒤집는 일이 잦아졌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용훈 대법원장이 취임 초기 '검찰 수사기록을 던져버려라'며 공판중심주의를 강조한 것과 무관하지 않은 현상"으로 분석한다. 공판중심주의는 법관이 검사의 수사기록에 기대지 않고 편견 없이 법정에서 드러난 자료를 중심으로 판단,'억울한 죄인'을 최소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하지만 법관에게 수사기관을 신뢰하지 않게 하고,피고와 증인들도 수사받을 때의 진술을 부인해 법관의 판단을 흐리게 하는 형태로 악용된다는 시각도 있다. 현장 수사기관들은 이런 경향 때문에 범행진술을 받아놓고도 유죄 입증에 애를 먹고 있다고 하소연한다.

그렇다고 해서 검찰이 잇따른 진술 번복에 스트레스만 받을 일은 아니다.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서는 진술에만 의존하지 말고 증거를 최대한 모아야 한다. 그래야 무죄 판결과 진술 번복으로 겪는 '트라우마'를 치료할 수 있다. 이날 법정에서 검사가 한 발언은 수사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독백일 수도 있다. 검사는 "의심의 여지없이 증명해야 한다"는 원칙에 충실할 때 트라우마에 무너지지 않는 법이다.

이현일 사회부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