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러리卿, 산에서 내려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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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레스트 첫 등정 산악인 인류에 용기 심어주고 타계
"모험 없이는 아무 것도 얻을 수 없다(Nothing Venture,Nothing Win)."
1953년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를 최초로 정복한 뉴질랜드의 등반가이자 탐험가 에드먼드 힐러리 경이 11일 오전 9시 오클랜드병원에서 타계했다.향년 88세.
헬렌 클라크 뉴질랜드 총리는 이날 힐러리 경의 타계 소식을 공식 발표하면서 "힐러리 경은 스스로를 '평범한 능력을 가진 보통사람'이라고 말했지만 그는 에베레스트를 정복했을 뿐 아니라 결단력 있고 겸손하며 관대한 삶을 산 영웅"이라고 칭송했다.
1919년 뉴질랜드 오클랜드 남부 투아카우섬에서 태어난 힐러리 경은 16세 때 학교 여행으로 루아페후산에 다녀온 후 등반에 관심을 갖게 됐다.그는 후에 "그때 내가 남보다 고통을 더 잘 참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회고했다.
1939년부터 본격적으로 탐험가의 길로 들어선 그는 1953년 5월29일 영국 원정대에 속해 네팔인 셰르파(히말라야 등산안내인) 텐징 노르가이와 함께 에베레스트 정상을 밟았다.에베레스트 정복 소식에 영국은 환희와 감격에 휩싸였고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그에게 기사 작위를 수여했다.그는 영국인이 아닌 비정치인으로서 영국 여왕에게 기사작위를 받은 유일한 사람이다.뉴질랜드에서 최초로 생전에 지폐에 얼굴이 실린 인물이기도 하다. 힐러리 경의 도전은 에베레스트 등정 후에도 계속됐다.1956~65년 히말라야의 봉우리 10개를 등정했고 1957년에는 남극 원정에 나서 과학연구센터인 '스콧기지'를 설립했다.
힐러리 경은 영웅적인 탐험가로서만 아니라 겸손하고 박애적인 삶으로도 세상에 많은 교훈을 남겼다.1975년에 자서전 '모험 없이는 아무 것도 얻을 수 없다'를 쓴 뒤 가진 인터뷰에서는 "모험은 나처럼 평범한 능력을 가진 평범한 사람에게도 가능하다"고 겸손해했다.그는 또 자신만 주목받는 것이 싫어서 셰르파 텐징과 자신 중에 누가 먼저 에베레스트 정상을 밟았는지에 대해 수십 년간 함구하다가 텐징이 사망한 뒤 한참이 지나서야 입을 열었다.1999년 출간된 자서전 '정상에서(View form the Summit)'에 따르면 두 사람이 거의 동시에 움직였고 힐러리 경이 약간 먼저 정상에 발을 디딘 것으로 묘사돼 있다.
힐러리 경은 특히 1962년 히밀라야 기금을 만든 것을 비롯해 네팔 오지에 학교와 병원을 설립하는 등 셰르파들을 돕는 데 일생을 바쳤다.그 와중에 1975년 네팔 카트만두에서 발생한 비행기 추락 사고로 첫 번째 아내 루이스와 딸 벨린다를 잃는 아픔도 겪었다.
힐러리 경은 지난해 1월 스콧기지 건설 50주년을 기념해 남극을 방문했고,석 달 뒤에는 카트만두를 찾았다.그것이 생애 120차례가 넘었던 네팔 방문의 마지막이었다.
박성완 기자 psw@hankyung.com
"모험 없이는 아무 것도 얻을 수 없다(Nothing Venture,Nothing Win)."
1953년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를 최초로 정복한 뉴질랜드의 등반가이자 탐험가 에드먼드 힐러리 경이 11일 오전 9시 오클랜드병원에서 타계했다.향년 88세.
헬렌 클라크 뉴질랜드 총리는 이날 힐러리 경의 타계 소식을 공식 발표하면서 "힐러리 경은 스스로를 '평범한 능력을 가진 보통사람'이라고 말했지만 그는 에베레스트를 정복했을 뿐 아니라 결단력 있고 겸손하며 관대한 삶을 산 영웅"이라고 칭송했다.
1919년 뉴질랜드 오클랜드 남부 투아카우섬에서 태어난 힐러리 경은 16세 때 학교 여행으로 루아페후산에 다녀온 후 등반에 관심을 갖게 됐다.그는 후에 "그때 내가 남보다 고통을 더 잘 참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회고했다.
1939년부터 본격적으로 탐험가의 길로 들어선 그는 1953년 5월29일 영국 원정대에 속해 네팔인 셰르파(히말라야 등산안내인) 텐징 노르가이와 함께 에베레스트 정상을 밟았다.에베레스트 정복 소식에 영국은 환희와 감격에 휩싸였고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그에게 기사 작위를 수여했다.그는 영국인이 아닌 비정치인으로서 영국 여왕에게 기사작위를 받은 유일한 사람이다.뉴질랜드에서 최초로 생전에 지폐에 얼굴이 실린 인물이기도 하다. 힐러리 경의 도전은 에베레스트 등정 후에도 계속됐다.1956~65년 히말라야의 봉우리 10개를 등정했고 1957년에는 남극 원정에 나서 과학연구센터인 '스콧기지'를 설립했다.
힐러리 경은 영웅적인 탐험가로서만 아니라 겸손하고 박애적인 삶으로도 세상에 많은 교훈을 남겼다.1975년에 자서전 '모험 없이는 아무 것도 얻을 수 없다'를 쓴 뒤 가진 인터뷰에서는 "모험은 나처럼 평범한 능력을 가진 평범한 사람에게도 가능하다"고 겸손해했다.그는 또 자신만 주목받는 것이 싫어서 셰르파 텐징과 자신 중에 누가 먼저 에베레스트 정상을 밟았는지에 대해 수십 년간 함구하다가 텐징이 사망한 뒤 한참이 지나서야 입을 열었다.1999년 출간된 자서전 '정상에서(View form the Summit)'에 따르면 두 사람이 거의 동시에 움직였고 힐러리 경이 약간 먼저 정상에 발을 디딘 것으로 묘사돼 있다.
힐러리 경은 특히 1962년 히밀라야 기금을 만든 것을 비롯해 네팔 오지에 학교와 병원을 설립하는 등 셰르파들을 돕는 데 일생을 바쳤다.그 와중에 1975년 네팔 카트만두에서 발생한 비행기 추락 사고로 첫 번째 아내 루이스와 딸 벨린다를 잃는 아픔도 겪었다.
힐러리 경은 지난해 1월 스콧기지 건설 50주년을 기념해 남극을 방문했고,석 달 뒤에는 카트만두를 찾았다.그것이 생애 120차례가 넘었던 네팔 방문의 마지막이었다.
박성완 기자 ps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