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묵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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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해지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한다.
여러 사람을 만나 살갑게 군다.
친절과 배짱을 무기로 뛴 결과 '살아보려 애쓰는 사람'이라는 평과 함께 조력자를 얻는다.
매스컴을 이용해 이름을 알린다.
학력이나 이력을 정확히 밝히기보다 '어디 다녔다,누구를 안다'고 흘리거나 운만 뗀다.
주위에서 어림짐작한다.
적당히 포장된 이력에 대해 굳이 아니라고 말하지 않는다.
기정사실화된다.
내용을 아는 사람에겐 고개를 숙이고 겸손하게 군다.
이쯤 되면 대부분 그냥 넘어간다.
알면서 속아준다는 식이다.
알 만한 사람이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본인도 부인하지 않음으로써 부풀려진 이력은 그럴 듯한 간판이 된다.
신정아씨 사건이 터진 뒤 매듭 끈이 풀린 것처럼 학력위조 인사들의 명단이 이어진다.
문화예술 관련자들이 많고 여성도 적지 않다.
더러는 남이 끄집어내고 더러는 자신이 고백한다.
"괴로웠다.
차라리 속 시원하다"는 사람도 있고 "아니라고 했는데도 남들이 그렇게 만들었다"는 사람도 있다.
"전부터 그런 줄 알았다"는 네티즌도 나왔다.
어느 쪽이든 묵인(默認)의 결과다.
'묵인'의 뜻은 '말 없는 가운데 승인함''보고도 모르는 체하고 그대로 놓아줌'이다.
'힘들었다'는 쪽은 남이 만들어준(혹은 자신이 빌미를 준) 거짓 이력에 대해 스스로 눈감은 것이고,'알고 있었다'는 쪽은 문제인 줄 아는 남의 잘못에 대해 암묵적으로 동의한 셈이다.
어처구니없고 황당한 거짓,수많은 이들이 속으론 아니라고 도리질을 하는 잘못이나 조작에 대한 묵인이 도처에서 이뤄지는 이유는 간단하다.
'들춰봤자 딱히 내게 득이 되는 것도 아니다.''괜스레 밝혀 척지기 싫다.''남의 일에 간섭하면 성가시다.''물의를 일으키고 싶지 않다.''관행이다.'
진실은 사람을 불편하게 한다.
'안다고 다 발설했다간 일 난다'는 말도 있다.
그러나 드러난 거짓에 대해 '적극 해명하지 않았을 뿐'이라는 변명에 고개를 끄덕이거나 덮으면 안되는 일을 '귀찮으니 못본 체하자'며 외면하는 건 성실하고 정직한 이들에 대한 배신이자 가짜들의 행진에 동참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
여러 사람을 만나 살갑게 군다.
친절과 배짱을 무기로 뛴 결과 '살아보려 애쓰는 사람'이라는 평과 함께 조력자를 얻는다.
매스컴을 이용해 이름을 알린다.
학력이나 이력을 정확히 밝히기보다 '어디 다녔다,누구를 안다'고 흘리거나 운만 뗀다.
주위에서 어림짐작한다.
적당히 포장된 이력에 대해 굳이 아니라고 말하지 않는다.
기정사실화된다.
내용을 아는 사람에겐 고개를 숙이고 겸손하게 군다.
이쯤 되면 대부분 그냥 넘어간다.
알면서 속아준다는 식이다.
알 만한 사람이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본인도 부인하지 않음으로써 부풀려진 이력은 그럴 듯한 간판이 된다.
신정아씨 사건이 터진 뒤 매듭 끈이 풀린 것처럼 학력위조 인사들의 명단이 이어진다.
문화예술 관련자들이 많고 여성도 적지 않다.
더러는 남이 끄집어내고 더러는 자신이 고백한다.
"괴로웠다.
차라리 속 시원하다"는 사람도 있고 "아니라고 했는데도 남들이 그렇게 만들었다"는 사람도 있다.
"전부터 그런 줄 알았다"는 네티즌도 나왔다.
어느 쪽이든 묵인(默認)의 결과다.
'묵인'의 뜻은 '말 없는 가운데 승인함''보고도 모르는 체하고 그대로 놓아줌'이다.
'힘들었다'는 쪽은 남이 만들어준(혹은 자신이 빌미를 준) 거짓 이력에 대해 스스로 눈감은 것이고,'알고 있었다'는 쪽은 문제인 줄 아는 남의 잘못에 대해 암묵적으로 동의한 셈이다.
어처구니없고 황당한 거짓,수많은 이들이 속으론 아니라고 도리질을 하는 잘못이나 조작에 대한 묵인이 도처에서 이뤄지는 이유는 간단하다.
'들춰봤자 딱히 내게 득이 되는 것도 아니다.''괜스레 밝혀 척지기 싫다.''남의 일에 간섭하면 성가시다.''물의를 일으키고 싶지 않다.''관행이다.'
진실은 사람을 불편하게 한다.
'안다고 다 발설했다간 일 난다'는 말도 있다.
그러나 드러난 거짓에 대해 '적극 해명하지 않았을 뿐'이라는 변명에 고개를 끄덕이거나 덮으면 안되는 일을 '귀찮으니 못본 체하자'며 외면하는 건 성실하고 정직한 이들에 대한 배신이자 가짜들의 행진에 동참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