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지금, 공정위가 할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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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기택 < 중앙대 교수·경제학 >
하이닉스반도체 간부 4명이 D램 가격을 담합했다는 이유로 미국에서 각각 5~8개월의 징역살이를 하게 됐다.
이 중엔 미국에 한번도 안 가본 사람도 있다고 한다.
범죄행위가 어디서 이뤄졌든 간에,불공정 담합행위로 가격을 올려 미국 기업과 소비자에게 피해를 주었으므로 엄벌에 처하겠다는 것이다. 담합행위 재발방지를 위해선 하이닉스가 이미 납부한 1억5000만달러의 벌금만으로는 불충분하다는 게 미 법무부의 판단이다. 동일한 사건으로 삼성전자도 지난해 3억달러의 벌금을 내기로 한 적이 있다. 이번 하이닉스 사례로 볼 때,삼성전자의 관련 직원들도 비슷한 처벌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그렇지 않아도 금년 들어 원화가치 상승으로 영업수익 감소를 겪고 있는 우리 반도체 업계로서는 설상가상이다.
우리 공정거래위원회도 반도체 가격담합으로 인한 국내 소비자의 피해 여부를 조사하겠다고 뒷북을 치고 있다. 공정거래법에 저촉되는 불공정한 담합행위에 대해선 소비자보호 차원뿐만 아니라 시장구조 왜곡으로 인한 경제효율성 저하를 방지하기 위해서도 엄격한 제재를 가해야 한다. 관련업계의 반발 등으로 인해 우리 공정거래위원회는 미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반경쟁행위에 대한 공정거래법 집행에 소극적이었다. 그러나 이번 사태에서 보듯이 경쟁제한 행위에 대해 적당히 넘어가는 것은 기업들을 위해서도 결코 이로운 일이 아니다.
한ㆍ미 자유무역협정(FTA)이 타결되면,우리 기업들의 미국 반독점법 위반여부에 대한 미국 법무부의 감시는 더욱 심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FTA로 인해 상당수 산업이 미국시장과 통합되고 따라서 우리 기업의 영업활동이 미국의 국내 산업에 영향을 미치는 정도가 더욱 커지기 때문이다.
앞으로 유사한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기업은 임직원을 대상으로 미국 등 선진국의 경쟁법에 대한 사전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또한 국내외를 막론하고 모든 중요한 거래에 대해서는 기업 스스로 일일이 전문변호사의 법률적 자문을 구하도록 의무화해야 한다.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공정거래위원회의 기본적인 의무는 공정한 경쟁질서를 확립하는 데 있다.
그러나 과거 몇 년간 우리 공정거래위원회는 경쟁질서 확립보다는 경제력 집중을 방지하는 데 더 많은 노력을 경주했고,특히 기업의 지배구조개선에 많은 관심을 보여왔다.
현 정부 들어 처음으로 한 일도 재벌 금융사의 의결권 행사를 제한한 것이다.
공정거래법 11조를 개정해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에 속하는 금융사들이 보유한 계열회사주식의 의결권 행사를 예외적인 경우에 한해,특수관계인을 포함해 30%에서 15%로 하향 조정했다.
이 조항이 바로 지난해 6월 삼성이 "헌법이 보장한 재산권을 침해하고 평등원칙에 반하다"고 헌법소원을 제기했다가 올 2월 여론악화 등의 이유로 취하한 대상이다.
현재 국회 재경위를 통과한 금융산업구조개선법 개정안에 대해서도 어떤 식으로 결말이 나든 간에 삼성은 헌법소원을 제기하지 않기로 했다.
공정거래법 11조나 금산법 24조의 합헌 여부에 대한 판단이 유보된 것은 아쉽다.
헌법이 허용하고 있는 "우리의 시장경제체제는 어디까지인가"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박탈당했기 때문이다.
법치국가에서 당사자가 법률의 위헌여부에 대해 헌법소원을 제기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다.
이러한 권리가 국민정서와 부합되지 않는다는 모호한 이유와 정부의 무언의 압력에 의해 행사될 수 없다면 매우 불행한 일이다.
헌법은 경제체제의 정체성을 정의하는 테두리이다.
이러한 헌법이 있기 때문에 개인은 경제행위에 따르는 불확실성을 그나마 줄일 수 있다.
그런데 위헌적 요소가 가미된 법률이 개혁이라는 명분하에 아무런 제지 없이 양산된다면 경제의 불확실성은 증대되고 모든 경제활동은 그만큼 위축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