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명(碑銘)을 찾아서'로 1987년 문단에 등단한 소설가겸 경제평론가 복거일씨와 '10년후 한국'을 펴내 화제를 모으고 있는 공병호 공병호경영연구소장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주창해온 인물들이다.


대담 약속시간보다 10분 먼저 도착한 복 작가는 회의 테이블에 앉자마자 검정색 손가방에서 찰스 다윈이 지은 "종(種)의 기원"을 꺼내들었다.


"종의 기원은 공동체의 진화를 다룬 것이 아니라 개체들의 발전과정을 다룬 것으로 자유주의를 존중하는 사상의 한 뿌리"라며 "나의 사상을 좀더 가다듬기 위해 예전에 읽었던 책을 정독하고 있다"고 말했다.


교통이 막혀 조금 늦게 도착한 공 소장은 자리에 앉자마자 "시간을 아껴야 하니까 핵심적인 문제로 바로 들어가서 압축적으로 얘기하자"고 제안했다.



◆ '죽은 자들을 위한 변호' 저자 복거일


<>1945년생

<>대전상고

<>서울대 경제학과

<>중소기업은행

<>한국알미늄공업

<>한국과학연구원 선박연구소 연구개발실장

<>소설가 겸 경제평론가(현)


◆ 화제작 '10년후 한국' 저자 공병호


<>1960년생

<>혜광고

<>고려대 경제학과

<>미국 라이스대학원

<>국토개발연구원 건설경제연구실 책임연구원

<>한국경제연구원 산업연구실장

<>자유기업원장

<>공병호경영연구소장(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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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거일 작가=우리 사회는 기본적으로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유지해 왔으나 근래 들어 이질적인 이념과 체제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이질적인 것이 섞이면 자연히 혼란과 분열이 나타납니다.


지금은 그런 진통의 한복판에 있는 셈이지요.


○공병호 소장=혼란이나 혼돈이 발전적이고 건설적인 방향이라면 환영합니다.


그러나 한국은 20세기에 세계가 치른 막대한 손실,이미 위쪽에 있는 한반도 반쪽의 사람들이 치른 것들로부터 교훈을 얻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런 것이 알려지지 않은 상황에서라면 덜 억울할텐데.각 나라마다 과거 실험을 기초로 좀더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는데 한국은 후퇴하고 있습니다.


어떤 공동체든 시대를 지배하는 정신이 건강하고 의타심(依他心)을 배격하는 자립자존의 문화를 뿌리 내려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예외 없이 빈곤 속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요즘 이익단체들이 내세우는 어떤 종류의 구호도 들여다보면 의타심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정부가 세금을 더 거둬서 이익을 배분하라는 목소리죠.


○복=이념과 체제 문제를 명확하게 하는 게 중요합니다.


경제 문제가 어려우니까 성장 대 분배가 중요한 이슈로 부각돼 있는데,문제의 핵심은 자유 대 평등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장과 분배 문제로 논의되면 이념의 쟁점이 뚜렷해지지 않고,전선이 잘못 형성됩니다.


지금의 문제는 평등을 위해 개인의 자유를 정부가 침해해도 된다는 사회주의 사상이 팽배해 있다는 점입니다.


그런데도 재산권과 인권이 침해되는 상황에서 논점이 계속 성장과 분배로 모아지다 보니까 경제정책 문제로만 좁혀집니다.


○공=현 정부의 노선은 좀더 평등한 사회를 만들어내기 위해 보다 정치적이고 덜 시장적인 정책을 펴자는 것입니다.


관(官)의 개입을 강화하고 세금을 더 거둬 평등한 사회를 만들겠다는 것이지요.


명확하게 문제를 정의하면 선명하게 옳고 그름이 드러나고 대안을 충분히 찾아낼 수 있습니다.


○복=성장의 필요성에는 좌(左)든 우(右)든 다 공감합니다.


경제성장은 20세기 전반에 공산주의 사회가 더 빠르게 성취한 것 아닙니까.


평등을 추구한다고 해서 성장을 아예 배제하는 것도 아니고 좌파도 분배를 통해서 성장을 이루자고 말합니다.


강조해야 할 것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유지하고 재산권과 법의 지배를 확립하면 궁극적으로 가장 빠르게 성장이 이뤄진다는 겁니다.


○공=정책을 만들고 집행하는 분들은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갖고 고민하고 두려워하는지,돈을 왜 안 쓰는지에 대해 고민해야 합니다.


정부가 연기금을 동원해서 돈을 쓰겠다는 생각을 하는 걸 보면 여전히 민(民)에 군림하는 것 같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20대와 30대 젊은이들과 얘기를 나누다보면 지금의 정책노선을 추구할 때 가장 큰 피해자가 자신들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겁니다.


노조가 강성하면 신규시장에 진입하는 바로 자신들이 일자리를 구할 수 없다는 문제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어요.


○복=최근의 뉴라이트 운동은 참 묘해요.


공감하는 부분도 있고 이해할 수도 있는데,근본적으로 사람에 초점을 맞췄어요.


정치적으로 새로운 사람,전력에서 흠집이 없는 사람들이 정치를 맡아야 한다는 얘기는 이념적인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인 문제입니다.


정치적으로 의미가 있겠지만 이념적으로 볼 때 큰 운동량을 가졌다고 보기가 어렵습니다.


새로운 것을 내놓은 게 없고 이념적으로 자유주의와 다를 것도 없습니다.


○공=뉴라이트 운동은 나라 전체가 왼쪽으로 가는 것에 대한 반작용으로 등장한 운동입니다.


사상도 이념도 팔아야 하는데 보수라는 용어가 워낙 부정적이고 덧칠을 많이 당했죠.그동안 보수세력에도 문제가 있었고.그런 면에서 뉴라이트의 순기능이 있다고 봅니다.


자유주의를 신봉하는 철학자나 사회과학자 입장에서는 그런 게 필요하지 않겠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운동이 돼야 세상을 바꿀 수 있지 않겠습니까.


○복=이념과 체제에서 갈등이 나오면 어떤 식으로든 해소해야 합니다.


먼저 이념적 진영을 뚜렷이 만들어 전선이 어떻게 형성돼 있는가를 드러내야 합니다.


이념은 나름대로 논리적인 역사와 일관성을 가져야 하기 때문에 다른 것과 절충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런데 이념 문제만 나오면 중도세력이 나서서 화해시키기 위해 제3의 길 같은 것을 내놓습니다.


좌와 우를 적당히 섞어 논의의 물만 흐려놓고 있어요.


그것을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중도세력이라는 사람들에 대해 사회가 중간허리 역할을 한다고 하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이 사람들 때문에 논의가 안 되고 해로운 이념이 잠복합니다.


제3의 길이나 온건하다고 내세우는 것들이란 이념에서 있을 수 없습니다.


○공=자유주의 사상에 기반을 두고 이념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행동가들이 나와야 합니다.


국민을 상대로 적극적으로 설득하고 세일즈할?있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약점이 있어요.


자유주의 진영에서는 돈 버는 능력 있는 사람들이 사업을 포기해야 하는 기회비용 때문에 행동가들이 잘 나타나지 않습니다.


경제학자들과 지식인들이 선명한 의견을 내놓고 저술물을 발간해야 합니다.


정치권에서는 마거릿 대처(영국 전 총리)나 로널드 레이건(미국 전 대통령) 같은 정치적인 미션(mission)을 받은 사람이 나와야 합니다.


수세에 몰리더라도 국민을 설득할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복=지금 문제는 '개혁' 구호 아래 경제적인 자유가 침해되고,법의 지배와 재산권 보호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 같은 문제의 본질이 제대로 드러나 있지 않은 탓에 어떤 문제가 불거져나와도 적당히 얼버무리다 끝납니다.


대통령이 아무리 기업을 살려야 한다고 강조한들,현 집권세력이 평등이라는 이상을 포기하지 않는 한 상황은 나아지지 않을 것입니다.


○공=평등 지향적인 사회로 가려면 비용을 지출해야 합니다.


평등사회 치고 비용을 치르지 않은 사회가 없습니다.


평준화 교육으로 인해 학생들은 반 이상 교실에서 잠을 자는데도 누가 나서서 근본적으로 수술하겠다는 사람이 없습니다.


형편이 되는 사람들이 해외로 나가려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복=사람은 누구나 정부를 통해 지대(地代)를 추구하려는 의타심(依他心)을 갖고 있습니다.


정부를 통해 지대를 추구하다 보면 점점 사회주의적인 것이 됩니다.


하이에크는 1944년 펴낸 '예종의 길(The Road to Serfdom)'에서 당시 영국 사회가 사회주의병에 걸려 점점 암담해지고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그때 시작된 영국병을 치유하는 데 30년 넘게 걸렸습니다.


한국은 남미가 아니라 1940년대부터 70년대까지의 영국을 닮아가고 있습니다.


간단한 예로 정부기구는 점점 늘어나고 노동조합은 신성시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중독이 돼서 노무현 대통령이 "위원회를 만들어 일 잘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말하는데도 한마디 반론도 나오지 않습니다.


위원회 만들고 정부가 늘어나면 그 자체로 일이 잘 안된다는 것이 이미 증명됐는데도 말입니다.


○공=세금을 더 강화해서 유치원에 보조금을 더 지급하고 공공의료 서비스를 확대하면 관(官)의 지배가 늘어나게 됩니다.


사회주의란 딴게 아닙니다.


대처가 '국가경영'이라는 책에서 좌파가 뭔지를 얘기했는데 "돈 끌어다가 내가 대신 써 줄게"하는 것입니다.


1997년 외환위기 때는 기업들의 위기가 발생했고 그 다음이 가계부채 위기였는데,앞으로는 정부지출 증가로 인해 틀림없이 재정위기가 올 것입니다.


가는 길이 보여요.


○복=우리가 체제를 지키면서 발전해 나가기 위해 필요한 가치는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입니다.


한마디로 '재산권'으로 집약되지요.


재산권이 있으면 경제적인 자유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자유가 보장되지만,재산권이 없으면 궁극적으로 공산주의 사회처럼 가난과 억압,획일화만 남게 됩니다.


우리 사회에서 재산권을 지키려면 그 전제로 법이 있어야 합니다.


재산권 자체가 법적인 개념이죠.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법의 지배가 허물어지고 있습니다.


단적인 예가 헌법재판소의 판결에 대통령 이하 집권세력이 깨끗이 승복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법의 지배가 안되니까 재산권이 위협받고,체제가 흔들리고,그 부수적인 결과로 경제 위축이 나오는 겁니다.


정리=현승윤 기자 hyuns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