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 한나라당 국회의원 ohsehoon@lycos.co.kr >

50여년의 긴 이별,4일의 짧은 만남.

세월의 흐름 속에 이제는 늙고 주름진 얼굴로 다시 만난 그들에게 그동안 남북을 갈라놓았던 체제도 이념도 보이지 않았다.

북한 계관시인인 오영재씨의 말처럼 "체제는 달라도 체온이 같음"을 확인했던 이번 만남은 통일이 우리 앞에 금방이라도 올 것 같은 기대감을 갖게 해주었다.

그러나 이번 만남은 반세기의 단절이 가져 온 이질감을 확인해 주는 자리이기도 했다.

남북이 헤어짐의 한(恨)을 씻어내면서 흘린 눈물은 똑같았지만,북쪽의 정치적 발언들은 남북간에 넘어야 할 벽이 여전함을 실감케 했다.

이에 대해 북측기자들은 "50년 사회주의체제 아래서 교육받았고 살았기 때문일 것"이라며 "시켜도 저렇게는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심리적 단절감이 하루 아침에 해소될 수 없다는 것은 독일 통일의 예에서도 잘 알 수 있다.

통일이 된 지 10여년이 지난 지금 독일인들 사이에는 베시(Wessi)와 오시(Ossi)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베시는 ''나은 서독인'',오시는 ''비참한 동독인''이라는 뜻이다.

이는 많은 분야에서 주도권을 쥐고 있는 서독 출신들의 우월한 사회적 지위와 자본주의적 가치관에 익숙하지 못한 동독출신들이 처한 열등한 사회적 지위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통일 이후 겪게 된 동·서독 출신간의 사회적 괴리감의 표현이며,통일이 새로운 사회계층을 만드는 계기이자 새로운 심리적 분열의 시작임을 보여주는 실례다.

여기에 양독 주민이 ''공동의 정체성''을 회복하는데 한 세대가 걸릴 지도 모른다는 전망도 있다.

우리 역시 남한 출신,북한 출신이라는 사회적 차별성을 부각시키는 단어 속에 독일의 경우보다 훨씬 심각한 새로운 갈등의 시작을 보게 될 지도 모른다.

따라서 이번 만남이 눈물을 있는 대로 뽑아버리고 목놓아 우는 ''카타르시스의 장''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통일에 대한 현실적인 접근의 계기가 되어야 한다.

감상적인 태도로 통일을 이야기할 수는 없다.

통일은 냉정한 현실이며 감상주의에 빠지면 현실을 볼 수 없다.

마치 모든 것을 빨아들여 버리는 블랙홀처럼 감상주의는 냉철함을 마비시키기 때문이다.

영토적 통합인 ''정치적 통일''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어갈 지도 모를 ''사회적 통합''에 대한 현실적인 준비가 있어야 한다.

이번 만남을 보는 우리 전후세대의 인식을 보아도 그렇다.

"이산가족이나 통일이 일상생활에서 접할 수 있는 주제가 아니어서 별다른 관심이 없다.

텔레비전을 볼 때 눈물이 나긴 했지만 그때 뿐이었다"는 한 대학생의 인터뷰는 이러한 준비의 시급함을 일깨워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