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호 < (주)코오롱 사장 jhjo@mail.kolon.co.kr >

필자는 30년전 미국 중서부에 있는 미시간대에서 공부할 기회가 있었다.

당시 자료 분석을 위한 프로그램용 펀치카드를 아직도 가지고 있다.

간혹 직원들과 대화때 이를 꺼내 놓으면 "이런 골동품을 왜 아직도 가지고
있느냐"고 묻는다.

그러나 이 골동품들이 당시에는 가히 혁명적 도구였었다.

그리고 골동품이 골동품으로 끝났다면 MS도 야후도 디지털시대 최강국
미국경제의 부흥도 장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최첨단 컴퓨터기술도, 직사각형의 구멍난 카드에서 시작해 끊임없이 이어진
연구와 기술축적의 결과물이라 생각한다.

최근 낙선운동이 정가 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에게 이슈가 되고 있다.

화끈한 우리 국민성은 최소한 그리고 단번에 몇십명의 정치인들을 정치판
에서 물러나게 해야만 직성이 풀릴 것이다.

이러한 경향이 사회운동 본연의 좋은 취지를 흐리게 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벤처 육성이 필요하다고 하며 수십배의 주가상승을 기적이 아닌 상식으로
만들어 버림으로써 벤처기업들의 순수한 프런티어 정신을 훼손시키고 있는
것은 아닐까.

벤처기업들의 성장에는 정신 기술 자금 등이 토양이 되어 하나씩 축적돼야
진정한 거목으로 자리잡을 수 있을텐데...

옆집에서 차를 사면 당장 빚을 내서라도 그보다 나은 차를 사야 하는 우리들
의 허장성세, 상대방에게 기어이 폭탄주를 먹여야 직성이 풀리는 한국의
직장인들..., 온 세상이 화끈한 잔치판이다.

개인이나, 기업이나, 정치나 한번 한다면 끝을 봐야만 하는 생활습관은
여러 곳에서 볼 수 있다.

새 천년 우리의 꿈은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가치 실현을 위한 진지한 노력, 끈기와 인내, 기초에서 출발해 하나씩
새로운 단계가 발견되고 완성될 때마다 축적되는 기술력, 그리고 이를 미래의
창조적 연구에 활용하는 일련의 과정 등이 꿈을 잘 이루기 위한 필수적 관문
이 아닐까.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2월 1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