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종일 내리던 비가 아침나절에 그쳤다.

그러나 북한산 자락은 안개비로 희뿌옇다.

안개 덮인 골짜기와 숲에 대한 유혹을 이기지 못해 우비를 입고 산으로
올라갔다.

바짝 말라 불안해 보이던 골짜기마다 크고 작은 개울이 생겨 물 흐르는
소리가 산을 들썩였다.

메마른 산으로 오를 때보다 훨씬 정겨웠다.

하루 이틀 사이에 여러 가지 색깔들의 버섯이 돋았고 충분히 젖은 나무며
풀, 흙이며 바위가 다시금 청결을 자랑했다.

산에 와서 살아 있는 생명들의 순결과 교합의 정을 느껴본 사람은 알리라.

사람이 생물과도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을.

어렸을 땐 사람만 눈에 들어왔고 사람에 대해서만 마음이 열렸다.

그런데 지금 산과 사랑할 수 있는 것은, 물론 나이가 준 선물이다.

오늘도 비에 흠뻑 젖은 좁은 산길을 오르는데 머리 속으로 생각들이 지지고
볶으며 마구 떠올랐다.

어떤 것은 흘려보내고 어떤 것은 잠시 붙잡았다.

그렇게 붙잡은 생각 중에 하나가 이것이다.

사람들은 왜 천국이나 극락으로 가려는 희망을 가질까.

나는 한 번도 천국에 가고싶다는 생각을 해 보지 못했다.

그런데 오늘 "천국"이 등산길의 내 화두였다.

어쩌면 이런 게 아닐까.

이 세상이 지옥이라서, 사는 일이 지옥처럼 괴로워서, 이 세상과 다른
곳에서의 삶을 꿈꾸는 것.그런 꿈이 만들어 놓은 세상이 천국이 아닐는지.

지금은 고통스럽고 불행해도 이와 정반대인 삶을 살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는 것, 어쨌든 아름다운 기대다.

나는 아직 천국을 꿈꾸며 살지 못한다.

그러나 내가 사는 이곳이 지옥이 아닌가 하는 의심은 자주 한다.

한 때 매력적이던 사업가가 엄청난 빚더미를 남겼다.

나로서는 1백억달러라는 빚돈의 크기를 느낄 수도 없다.

나라에서 무슨 방책을 세우는 모양이지만 그 돈이 다 우리들 세금 아닌가.

얼마나 많은 아버지와 남편들이 "실업자"가 될 것인가.

당사자의 절망은 물론 가족이 안아야 하는 참혹한 현실은 누가 책임지나.

집안 살림을 알뜰히 경영하지 못한 주부도 멸시받는다.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고 해서 내 옹졸함을 깨우쳐주던 그가 내게
남긴 것은 좌절과 분노뿐이다.

이런 결과가 그의 의도는 아니었겠지만 혹시 그가 오만과 탐욕에 치우쳐
있지 않았을까 의심이 간다.

오만과 탐욕이 대접받는 사회야말로 지옥이니까.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7월 3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