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옥은 시녀들에게 간단한 주안상을 차려 오도록 하여 가운과 대작을
하였다.

보옥은 몸이 회복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술을 몇 잔만 마셨으나 가운은
소홍에 대한 연정을 마시듯 꽤 술을 들이켰다.

가운은 술을 마시면서도 소홍이 혹시 보옥의 방을 출입하지 않나
기다렸으나 결습시녀라서 그런지 그 모습을 나타내보이지 않았다.

술기운이 좀 오르자 두 사람 사이의 대화 내용은 천방지축으로
뻗어나갔다.

어느 집 잔치에 갔더니 음식 맛이 형편 없더라는 등, 어느 집 시녀가
바람이 나서 달아났다는 등, 어느 집 골동품은 알고 보니 거의 다
가짜더라는 등, 이것저것 주워섬기다가 보옥이 병에서 회복될 때
경험한 기이한 일들로 이야기가 이어졌다.

"서른 세 밤이 되었을 때, 그러니까 중들이 이야기한 마지막 밤이
되었을 때 말이지, 한밤중에 내가 보니 문 들보에 달아놓은 통령보옥에서
환한 빛이 비쳐나오는 거야.

그 빛이 내 머리를 어루만지듯이 비추고 또 형수님의 머리도 비추는
거야.

물론 그 전에도 몸이 나아가고 있었지만 그 빛이 머리에 닿는 순간,
이제는 정말 완전히 나았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거야.

형수님도 같은 말을 하더군.

그 중인지 도사인지 하는 사람들의 도력이 대단한 모양이야.

그런데 또 이렇게 술을 마시기 시작하니 통령보옥의 영험에 때가
묻겠지. 허허"

그렇게 비씩 웃으면서 보옥이 다시 목에 차게 된 통령보옥을 가운에게
보여주었다.

얼마 더 술을 마시다가 가운이 보옥의 안색을 보니 정말 보옥의
말대로 통령보옥에 때가 묻기 시작했는지 피곤한 기색이 비쳤다.

보옥에게 다시 병이 도지면 안 된다 싶어 가운이 곧 일어나 나왔다.

보옥은 아까처럼 추아더러 가운을 바래다주도록 하였다.

가운이 이홍원을 나와 사람들이 없는 한적한 곳에 이르자 일부러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척하며 추아의 어깨 위에 손을 얹어 보기도 하였다.

마음은 온통 소홍에게로 쏠려 있지만 육신은 그 정욕을 따라 가까이
있는 대상에게로도 향하는 모양이었다.

가운의 손이 추아의 어깨에서 내려와 젖가슴을 건드리자 추아가 몸을
움츠리며 가운과 거리를 두려 하였다.

가운은 약간 혀가 꼬부라진 소리로 이것저것 묻다가 결국 소홍에
관해서 묻기 시작했다.

"아까 봉요교 입구에서 만난 시녀 있잖아.

그 시녀가 너랑 이야기할 때 자기 손수건을 못 봤느냐고 묻는것
같던데 손수건이라면 내가 주운 것이 하나 있어서 말이야"

"그래요. 소홍 언니가 아끼는 손수건을 잃어버린 모양이에요.

그래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묻고 다니는 거죠"

(한국경제신문 1996년 3월 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