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요시 모리스케의 방문을 받았다.
꼭 한번 댁을 방문하고 싶다는, 비서실을 통한 그의 간청에 오쿠보는
그럼 14일 식전에 잠깐 만나줄테니 집으로 찾아오라고 했던 것이다.
상경한 길에 뇌물을 바치려고 오쿠보의 저택 방문을 간청했던 야마요시는
하녀의 안내를 받아 응접실에 들어서자 바로 눈에 잘 띄는 바닥에 가지고온
보따리를 놓았다.
그 속에는 후쿠시마의 특산물과 함께 종이로 싼 돈뭉치가 들어있었다.
잠시 후, 응접실 문을 열고 들어선 오쿠보는 바닥에 놓인 그 보자기가
대뜸 눈에 들어왔으나,얼른 못본체하고 의자로 가서 앉았다.
굳이 집에 찾아오려고 하는 사람은 지방에서 왔건 도쿄에 살건 관원이건
일반인이건 으레 뇌물을 바치려고 그런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는 터이라
심상한 얼굴이었다.
마주앉아 하녀가 날라온 차를 마시며 오쿠보는 야마요시로부터 후쿠시마
현의 행정에 관한 보고 비슷한 얘기를 들었다.
얘기가 끝나자 오쿠보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곳 주민들도 이제 정부의 방침에 순응해서 잘 해나간다니 좋은
일이오. 어느덧 "고잇신"(어일신:메이지유신)을 한지도 십년이 넘었으니
의당 그래야지요" 후쿠시마현은 무진전쟁때 끝까지 완강히 저항했던
나가오카번과 아이즈번, 그리고 그 주변 일대를 포함해서 새로 구획된
행정구역이었다.
중립노선을 내세우기도 했고,소년병인 백호대와 부녀자들이 처절한
자결까지 감행했던 그 지독한 고장의 사람들도 이제 시대의 흐름을 좇아
수굿한 백성이 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오쿠보는 말을 이었다.
"고잇신의 목표를 달성하려면 적어도 30년은 걸린다고 나는 생각하고
있소. 이제 10년이 지나갔는데,지난 10년은 말하자면 창업의 시대였소.
새로운 나라의 터전을 닦고,주춧돌을 놓아 큰 기둥은 이제 세웠다고
할까요.
다음 10년은 대들보를 얹고, 지붕을 씌우고, 제대로 집을 짓는 성업의
시대라고 할수 있소. 가장 중요한 시기지요.
그리고 마지막 10년은 그 집을 꾸미고 가꾸어 완성을 기하는 시기요.
나는 앞으로 10년, 그러니까 성업의 시대까지만 국사를 담당할 생각이오.
그 다음은 후진에게 넘길까 하오"
"그 다음 10년도 각하께서 담당하셔야지요. 그래야 그 집이 제대로
완성될 것입니다" 야마요시는 알랑방귀를 뀌었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2월 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