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중국산 오리고기가 보조금을 기반으로 정상 가격보다 낮은 가격에 수출되고 있다는 의혹에 대해 공식 조사에 착수했다. 조사 대상은 신선육과 냉동육, 훈제 오리고기 등을 모두 포함하며, 덤핑이 확인될 경우 EU는 반덤핑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
집행위원회는 중국산 베이징덕 품종을 사육하는 농가들이 국가 보조금과 저리 대출, 저렴한 대두 사료 공급 등의 지원을 받고 있다고 보고 있다. 특히 중국의 5개년 계획에 따라 가금류 산업과 사료 생산이 정책적으로 지원되고 있으며, 산둥성 등에서는 대두 가공과 배합사료 공장에 대한 보조금도 지급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유럽 생산자들은 이러한 지원을 받은 저가 수입품이 판매량과 수익성을 크게 훼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유럽 가금류 산업을 대표하는 단체 아벡(Avec)은 공정한 경쟁 환경을 회복할 수 있는 수준의 반덤핑 관세가 가능한 한 신속하게 부과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집행위원회도 중국산 수입 증가가 EU 업체들의 판매 물량과 가격, 시장점유율을 모두 떨어뜨려 산업 전반의 실적에 상당한 악영향을 미쳤다고 판단했다. 이번 조사는 약 1년 정도 진행될 것으로 예상되며, 덤핑이 인정될 경우 회원국 다수의 승인을 거쳐 관세 부과 여부가 최종 결정된다.
이번 조사는 EU와 중국 간 통상 갈등이 최고조로 치닫는 가운데 이뤄졌다. EU는 하루 평균 10억유로에 달하는 대중 무역적자가 지속되는 현 상황을 더 이상 유지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의 마로시 셰프초비치 무역 담당 집행위원은 중국이 보조금과 위안화 저평가, 국가 지원을 활용해 수출을 확대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오는 10월까지 무역 불균형 개선이 없을 경우 추가 대응에 나설 수 있다고 경고했다.
반면 중국은 EU의 관세와 첨단기술 수출 통제를 문제 삼고 있다. 왕원타오 중국 상무부장은 셰프초비치 집행위원과의 회담에서 ASML의 첨단 반도체 장비를 비롯한 기술 수출 통제 등에 불만을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양측은 지난 6월 29일 회담 이후 통상 및 투자 대화를 새로 출범시키며 갈등 완화를 시도하고 있지만 핵심 쟁점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
EU의 대중 무역방어 조치는 최근 사상 최고 수준으로 늘어났다. 그동안 화학제품과 전기차 등 산업재가 주요 대상이었지만 이번에는 중국 농업 부문이 직접 조사 대상이 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다르다는 평가가 나온다. 중국 역시 EU산 돼지고기와 유제품, 코냑 등에 대한 관세를 부과 추진하며 유럽 농업계에 압박을 가해왔다.
EU의 전 농업 통상협상 책임자인 존 클라크는 조사 시점이 다소 이례적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EU가 베이징덕을 원산지 보호 식육 제품으로 인정해 중국 이외 생산자가 해당 명칭을 사용할 수 없도록 하는 절차를 앞둔 상황에서 대표적인 중국 식품을 반덤핑 대상으로 삼은 것은 중국 정부와 생산자들에게 매우 부정적으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또한 중국이 코냑에 대한 자국의 반덤핑 조치에 대한 보복으로 인식할 수 있으며, 프로세코 와인 등 다른 상징적인 유럽 제품으로 보복이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했다.
세계 오리고기 생산도 중국이 사실상 주도하고 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전 세계 연간 오리고기 생산량 약 500만톤 가운데 중국 생산량은 480만톤에 달한다. 2025년 기준 EU 오리고기 시장 규모는 약 8억유로로 추산되며, 이 가운데 중국산 수입액은 약 1억9천900만유로였다.
중국은 최근 캐비아와 푸아그라 등 고급 식품 생산도 빠르게 늘리며 해외 시장 진출을 확대하고 있다. 농업부 전문가들이 육성한 캐비아 브랜드 칼루가 퀸은 현재 세계 최대 캐비아 생산업체로 성장했다. 지난해 중국의 상품 무역흑자는 1조2천억달러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으며, 수출은 올해에도 빠른 증가세를 이어가지만 국내 경제 활동은 둔화하고 있다.
이번 반덤핑 조사가 실제 관세 부과로 이어질 경우 EU와 중국 간 통상 갈등은 산업재를 넘어 농축산 분야까지 확대되는 계기가 될 가능성이 있다. 양측이 대화를 통해 갈등을 완화할 수 있을지, 아니면 추가적인 보복 조치가 이어질지가 향후 통상 관계의 핵심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