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는 통제자가 아니다"…도요타 회장 '직함'에 담긴 비밀

구글 검색 선호 출처로 추가

Google 검색에서 한국경제 기사를 더 자주 볼 수 있습니다.

한경 CHO Insight
휴넷과 함께하는 리더십 여행


2021년 2월, 눈 덮인 후지산 기슭에서 도요타는 삽을 들었다. 자동차 공장 부지에 '도시'를 짓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이름하여 '우븐시티(Woven City)'. 약 70만 제곱미터의 땅 위에 최종 2,000명 이상이 거주하며 미래 기술을 실험하는,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공동체다.

그리고 2025년 9월, 도요타는 우븐시티의 공식 개막을 알렸다. 초기에는 약 100여명의 거주자와 함께 시작해, 단계적으로 확장해 나갈 예정이다. 누적 투자 규모는 약 100억 달러, 우리 돈 14조 원대에 이른다. 프로젝트는 창업가 4대손인 도요다 다이스케가 직접 이끌고, 아버지 도요다 아키오 회장은 'Master Weaver'라는 상징적 직함으로 총괄한다.



자동차 회사가 도시를 짓는다. 이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이례적이지만, 경영자에게 더 중요한 것은 이 결정을 가능하게 만든 리더의 선택이다. 도요타의 리더는 무엇을 본 것인가. 그리고 그 관점에서 한국의 리더는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다음에 팔 것’을 먼저 정의한다

지난 10년간 자동차 산업의 본질은 바뀌었다. '잘 만든 기계'에서 '소프트웨어가 정의하는 제품'으로. 산업의 주도권은 '차를 잘 만드는 회사'에서 '차 위에서 돌아가는 플랫폼을 가진 회사'로 이동하는 중이다. 많은 완성차 기업이 이 변화에 대응해 전기차 라인업을 늘리거나 테크 기업과 제휴하는 방식을 택했다. 경쟁자를 따라가는 방식이다.



도요타는 반대로 갔다. 2018년 도요다 아키오 회장은 "자동차 회사에서 모빌리티 회사로 전환한다"라고 선언했다. 그 핵심은 ‘무엇을 팔 것인가’를 다시 정의한 데 있다. 자동차 한 대가 아니라, 사람·물건·정보·에너지의 이동 전체를 연결하는 체계를 팔겠다는 뜻이다.



스마트폰에 iOS가 있고 PC에 Windows가 있듯, 도요타는 자동차와 도시를 움직일 운영체제를 직접 만들기로 했다. 그 결과물이 도요타의 소프트웨어 자회사 Woven by Toyota가 개발한 'Arene(아린)'이며, 2025년부터 실제 양산 차량에 탑재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자동차 안의 소프트웨어만으로는 부족했다. 자율주행차, 물류 로봇, 스마트홈, 수소 에너지, 도시 인프라가 하나의 실제 환경에서 맞물릴 때 비로소 '연결된 모빌리티 체계'가 실현된다. 그 실현의 공간이 우븐시티다. 도요타는 이곳을 공식적으로 ‘사람·자동차·사회를 연결하는 방법을 실험하는 살아있는 실험실(Living Laboratory)’이라 부른다.



산업이 흔들릴 때 많은 리더는 ‘경쟁자가 무엇을 하는가’를 묻는다. 도요타는 ‘우리가 다음에 팔 것은 무엇인가’를 먼저 물었다. 그리고 그 답을 실제로 돌아가는 도시로 증명하기 시작했다.




#기술보다 원칙을 먼저 둔다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 과정에서 많은 조직이 기술을 먼저 들여오고, 그 기술에 조직을 맞추려 한다. 결과는 대개 비슷하다. 효율을 높이려던 시스템이 오히려 소통을 줄이고, 데이터는 늘었지만 의사결정은 더 느려지는 역설이 생긴다.



우븐시티는 이 오류에 대한 다른 해법을 보여준다. 도요타는 우븐시티의 도로를 세 종류로 나눴다. 자율주행 차량 전용 도로, 보행자와 전동킥보드·자전거 같은 1인용 이동 수단이 함께 사용하는 도로, 보행자 전용 도로. 물류와 인프라는 지하로 내려갔다. 효율만 따졌다면 모든 도로를 자율주행 차량에 개방하는 편이 기술 검증에는 유리했을 것이다. 도요타는 그 길을 선택하지 않았다. 기술의 속도보다 사람의 생활이 우선이라는 원칙을 도로 구조에 나타낸 것이다.



건물 역시 같은 논리로 설계되었다. 도요타는 이 도시를 ‘완성’하는 것이 아니라, 거주자의 생활 데이터와 기술 변화에 따라 단계적으로 진화하는 것을 기본값으로 삼았다. 특정 기능에 고정되지 않고, 용도나 기술 환경에 따라 공간 활용 방식과 서비스 구성을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는 일반적인 대형 프로젝트의 통념과는 반대되는 모습이다. 보통은 마스터플랜을 정밀하게 세우고, 그 계획에서 벗어나는 것을 실패로 본다. 도요타는 변화를 계획의 실패가 아니라 계획의 일부로 편입시켰다. 불확실한 환경에서 경쟁력은 계획의 완성도가 아니라 수정의 속도에 있다고 본 것이다.



리더가 기술을 도입할 때 가장 먼저 물어야 할 것은 성능이 아니라 원칙이다. 무엇을 우선할 것인가. 사람인가 효율인가. 완성인가 수정인가. 이 질문이 없을 때 기술은 조직을 끌고 다니기 시작한다. 원칙이 먼저 서 있지 않으면, 도입된 기술은 조직의 문화로 뿌리내리기 어렵다.




#혼자 만들지 않는다



우븐시티는 도요타 혼자 만드는 도시가 아니다. 에너지, 통신, 식음료 등 업의 경계를 넘어 다양한 분야의 기업이 참여해 함께 실험한다. 도요타는 이 운영 원리를 '카케잔(掛け算, 곱셈)'이라 부른다. 단독으로는 불가능한 가치를 서로 다른 주체의 결합으로 만들어 내겠다는 뜻이다.



도요타 회장의 직함은 이 철학을 반영한다. 우븐시티에서 도요다 아키오의 직함은 오너도 CEO도 아닌 'Master Weaver(마스터 직조자)'다. 지배보다 연결, 소유보다 조정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다. 연결이 깊어질수록 한 조직이 모든 것을 통제하려는 방식은 점점 한계를 드러낸다. 도요타의 선택은 자원을 움켜쥐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주체들이 맞물릴 수 있는 조건을 설계하는 쪽이었다.



이 대목에서 한국 경영자에게 주는 시사점이 있다. 여전히 통제를 리더십의 핵심으로 보고 있지는 않은가. 자원과 정보를 쥐고 관리하는 방식은, 연결이 촘촘해질수록 한계를 드러낸다. 리더의 역할은 자원을 소유하는 데서, 이질적 주체들이 맞물리도록 신뢰·규칙·개방성의 조건을 설계하는 데로 이동한다. 통제자에서 조정자로, 주인에서 직조자로 바뀌어야 한다.




#리더에게 남는 세 가지 질문



우븐시티의 성패는 아직 단정할 수 없다. 성과는 시간이 지나야 드러날 것이고, 실패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도요타의 선택은 한국의 리더에게 분명한 질문을 남긴다.



우리는 경쟁자를 따라가고 있는가, 아니면 다음에 팔 것을 스스로 정의하고 있는가. 기술을 먼저 들여오고 원칙을 나중에 붙이고 있지는 않은가. 중요한 미래를 혼자 만들려 하고 있지는 않은가.

리더십은 결국 선택의 문제다. 무엇을 팔 것인가. 어떤 원칙을 먼저 둘 것인가. 누구와 함께 미래를 만들 것인가.



남원진 휴넷리더십센터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