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차비스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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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는 포퓰리즘(대중인기 영합주의)으로 나라를 망쳤다는 평가를 받는 인물이다. 1999년 대통령에 취임해 2013년 사망할 때까지 집권한 그는 ‘차비스모’(차베스주의)로 불리는 좌파 포퓰리즘 정치를 펼쳤다. 매장량 세계 1위인 석유는 포퓰리즘의 돈줄이었다.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던 시절 석유 수출로 번 돈을 무상 교육·의료, 저가 주택 공급 등 복지 정책에 쏟아부었다. 식품, 의약품 등 생필품 가격은 낮게 통제했다. 빈곤율은 크게 하락했고, 차베스는 영웅으로 불렸다. 하지만 산업 다각화는 뒷전이었다. 원유 수출 외엔 내세울 산업이 없던 베네수엘라는 유가가 하락하자 살인적인 인플레이션과 재정적자 늪에 빠졌고, 경제는 급속도로 악화했다.



버스 운전사 출신 노동운동가인 니콜라스 마두로가 차비스모를 계승한 뒤 비극은 심화됐다. 과도한 포퓰리즘 복지 정책과 무분별한 화폐 발행으로 2018년 100만%가 넘는 초인플레이션을 겪었다. 2022년 국내총생산(GDP)은 집권 초기보다 80%나 급감했다. 10년 동안 인구의 30%에 달하는 770만 명이 경제난을 견디다 못해 해외로 떠났다. 경제 기초체력은 고갈됐고 국가 시스템은 붕괴됐다.

최근 베네수엘라를 강타한 연쇄 강진으로 사망자가 1700명을 넘고 실종자가 8만 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구조의 골든타임으로 불리는 72시간이 지났지만 재난 구조 시스템은 여전히 마비 상태다. 매몰자를 구하기 위해 맨손으로 콘크리트 잔해를 파헤칠 정도다. 이번 지진으로 주저앉은 공공주택 상당수는 차베스 정권 때 지어졌는데, 부실시공에 안전 점검은 무시됐던 것으로 드러났다. 마두로는 정권 유지를 위해 군을 반정부 시위 진압에 동원했고, 소방장비보다 시위대 해산·진압용 물대포를 우선 구매했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이번 재난을차비스모의 유령이 초래한 인재(人災)라고 평가한다. 경제난과 국가 시스템 붕괴로 무력화된 의료·구조 체계가 피해를 키웠다는 것이다. 포퓰리즘은 달콤하지만 치명적인 결과를 낳는다. 그리고 그 피해는 주로 약자들에게 돌아온다는 사실을 베네수엘라 사태가 보여주고 있다.



양준영 논설위원 tetri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