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 13 → 15 → 18%…"전주 가면 망한다"던 국민연금의 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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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금 고갈까지 늦춘 국민연금 '신의 한수'

국민연금은 어떻게 글로벌 정상 연기금이 됐나

황금 포트폴리오 앞세워 마이너스서 세계 1위 직행
올해 국장 수익률 90% 넘어…치밀한 자산배분의 힘
국민연금공단이 글로벌 주요 연기금 가운데 최정상급 운용 성과를 이어가고 있다. 전북 전주 이전 이후 인력 이탈과 운용 경쟁력 약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지만 해외 주식과 국내 주식, 대체투자가 시차를 두고 성과를 내 세계 대형 연기금 중 가장 돋보이는 수익률을 기록 중이다.



28일 국민연금에 따르면 이 기관의 지난해 수익률은 18.82%다. 세계 3대 연기금으로 함께 거론되는 일본 공적연금(GPIF·12.29%)과 노르웨이 국부펀드(GPFG·15.11%)를 넘어선 성과다. 2022년 글로벌 주식·채권 동반 하락으로 8.22% 손실을 냈지만 이후 2023년 13.59%, 2024년 15%, 2025년 18%대 수익률로 빠르게 반등했다. 올해 성과는 지난해를 웃돌 가능성이 크다. 국민연금의 올해 누적 수익률은 이달 중순 기준 20%대에 올라선 것으로 파악됐다. 같은 기간 국내 주식 수익률은 반도체주 급등에 힘입어 95% 안팎으로 치솟은 것으로 추정된다.
국민연금 고갈 논쟁도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연평균 수익률 4.5%를 전제로 정부가 추산한 국민연금 고갈 시점은 2057년이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수익률을 연평균 6.5%까지 끌어올리면 고갈 시점을 2090년으로 33년 늦출 수 있다는 전망을 최근 내놨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의 전주 이전은 2013년 7월 국민연금법 개정으로 확정됐고, 2017년 2월 서울 논현동 사무소 인력이 전북혁신도시로 완전히 옮기며 마무리됐다. 당시 금융투자업계 안팎에서는 핵심 운용역 이탈 및 서울 금융시장과의 단절 등을 이유로 “운용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았다.



국민연금이 빠르게 경쟁력을 높인 배경엔 중장기 자산 배분 전략이 있다. 국내 주식과 해외 주식, 채권, 대체투자 등으로 포트폴리오를 나누고 자산군별 목표 비중과 허용 범위 안에서 위험을 관리한다. 국민연금이 이날 국내 주식 비중 허용 범위를 넓히는 방향으로 중기 자산배분안을 손보기로 가닥을 잡은 것도 최근 성과를 운용 체계에 반영하기 위해서다.

美 주식·대체투자 확대, 세계 1위 수익률 '숨은 공신'
반도체 랠리 전부터 운용 성과…부동산 자산이 효자 노릇 '톡톡'

국민연금공단이 거둔 깜짝 성과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랠리로만 설명하는 건 불완전한 분석이다. 2024년에는 미국 빅테크와 인공지능(AI) 관련주 투자가 국민연금의 주력이었다. 여기에 원·달러 환율 상승이 겹쳐 해외 자산 평가액이 크게 불었다. 장기간 해외 주식 및 대체투자 비중을 높여온 전략이 미국 증시 랠리와 강달러 국면에서 먼저 성과를 낸 것이다.

◇ 대체투자 시장에서도 성과 차별화



반도체 대형주가 코스피지수 상승을 이끌며 국내 주식이 수익률의 주력 엔진으로 떠오른 건 지난해 하반기부터다. 해외 연기금은 한국 증시 노출이 제한적인 만큼 국내 반도체주 랠리 수혜를 온전히 누리기 어려웠다. 국민연금은 국내 증시의 최대 장기 투자자로, 한국 자산 재평가 국면에서 국내 주식 상승분을 가장 크게 흡수했다. 과거 국내 주식은 국민연금 장기 포트폴리오에서 점진적으로 줄여야 할 자산으로 여겨졌지만 최근에는 전체 수익률을 좌우하는 핵심 자산군으로 부상했다.

대체투자도 경쟁 연기금과의 차이를 벌린 요인으로 꼽힌다. 글로벌 주요 연기금은 고금리, 공실률 상승, 거래 위축으로 대체투자 중 부동산 부문에서 마이너스 수익률을 낸 곳이 적지 않다.



최근 5년간 오피스 가격이 급락한 미국 샌프란시스코(연평균 -11.4%), 워싱턴DC(-9.9%), 영국 런던(-7.9%) 등 북미·유럽 지역에 집중적으로 투자한 연기금이 대규모 손실을 냈다. 국민연금은 지속해서 대체투자에서 플러스 수익률을 기록했다. 대체투자 부문 수익률은 2024년 17.09%, 지난해 8.03%다.



대형 오피스를 비롯한 국내 부동산 자산이 효자 노릇을 톡톡히 했다. 서울 오피스 시장은 탄탄한 임차 수요에 힘입어 낮은 공실률과 임대료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최근 5년 연평균 오피스 가격 상승률도 7.2%에 달한다. 국민연금이 투자한 서울 광화문 그랑서울과 테헤란로 센터필드 등이 견조한 임대 수요를 바탕으로 안정적인 수익을 내는 배경이다.

‘열 개의 아픈 손가락’으로 불리던 해외 부동산 투자처도 순차적으로 정상화되고 있다. 캐나다 토론토 CIBC스퀘어 타워2는 완공 전 임대율 100%를 달성하며 국민연금의 첫 해외 오피스 개발 프로젝트 가운데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꼽힌다. 홍콩 코즈웨이베이 타워535도 임대율이 96%까지 회복했다. 두 자산은 코로나19 팬데믹과 글로벌 오피스 침체로 원금 손실 가능성이 점쳐졌다.

◇ 기금 운용 시스템 정비해야

자본시장에서는 국민연금 수익률이 고공 행진하는 지금이 조직 선진화와 효율화의 적기라는 분석이 나온다. 가장 시급한 과제로 최고투자책임자(CIO) 인사 체계가 거론된다.



국민연금을 비롯한 국내 공적 연기금 CIO 임기는 2~3년이다. 장기 전략을 설계하고 실행하기엔 턱없이 짧은 기간이다. 능력을 입증하면 10년 이상 CIO를 교체하지 않는 해외 연기금과 대조적이다. 외부에서 단기 임기 인사를 데려오는 방식보다 내부에서 해외 주식, 대체투자, 리스크 관리 경험을 쌓은 전문가를 육성하고, 검증된 CIO에게는 장기 재임을 보장하는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국민연금을 공공기관이라는 틀에 묶지 말아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전북 전주로 이전한 뒤 국민연금은 낮은 보수와 민간 운용업계와의 인재 경쟁이라는 구조적 한계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자본시장 관계자는 “국민연금이 전주로 옮긴 뒤에도 세계 최고 수준의 성과를 낸 것은 장기 자산 배분 원칙을 일관되게 지켜온 결과”라며 “시장 변화에 맞춘 전술적 조정은 필요하지만 장기 운용 책임을 질 수 있는 CIO 체계에서 자산 배분 원칙에 따라 기금을 운용해야 한다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민경진 기자 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