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양귀비와 청보리의 물결, 낙화의 불꽃이 머문 선비의 흔적, 유네스코 세계유산 아라가야의 별자리까지. 지루할 틈 없이 펼쳐지는 함안으로의 초여름 감성 여정
강나루생태공원에서 보는 낙동강 풍경(사진=이효태)낙동강과 남강의 물길이 교차하는 함안은 초여름이 되면 화사한 생기들로 가득 찬다. 칠서면 낙동강 변의 함안강나루생태공원은 42만㎡에 달하는 광활한 대지에 청보리 물결이 바람에 흩날리며 초록의 바다를 이룬다.
바람에 일렁이는 청보리 물결(사진=이효태)청보리 물결 너머 진분홍빛 작약꽃 단지는 강나루생태공원에 화려함을 더한다. 공원 내 대여소에서 자전거를 빌려 타면 끝없는 꽃길을 가장 온전히 만끽할 수 있다. 여기에 137면의 오토캠핑장도 갖추고 있으니 낙동강 물소리와 함께 낭만적인 하룻밤도 보낼 수 있다.
함안강나루생태공원의 작약꽃단지(사진=이효태)대자연이 그린 거대한 캔버스, 함안 생태공원 로드 강나루생태공원에서 차로 15분 거리의 악양생태공원. 남강 제방을 따라 푸른 수레국화와 붉은 꽃양귀비가 선명한 대비를 이루며 이국적인 풍차와 어우러진다. 꽃 대궐을 지나 강변 데크 로드를 따라가면 남강 절벽 끝에 고고하게 선 악양루에 닿는다. 조선 철종 8년(1857)에 세워진 악양루 아래로는 전장으로 떠난 오빠를 대신해 노를 젓던 누이의 사연이 깃든 ‘처녀뱃사공노을길’이 흘러 선조들의 풍류와 평범한 민초들의 삶을 동시에 돌아보게 만든다.
악양둑방에 피어난 붉은 양귀비 꽃, 계절마다 색색의 꽃이 군락을 이룬다(사진=이효태)시간이 멈춘 고려동 유적지부터 무진정의 밤 산인면 모곡리의 고려동유적지는 조선 건국에 반대하며 고려의 유민으로 살고자 했던 이오 선생이 담장을 쌓아 은거한 터다. 600년이 넘는 세월 후손들이 8대를 이어 마을을 지키고 있어 시간이 멈춘 듯한 마을에 또다른 생기를 불어넣는다.
옛 충신의 이야기가 깃든 고려동유적지(사진=이효태)고려동유적지 입구에는 이오 선생과 퇴계 이황도 그 아름다움을 칭송한 배롱나무꽃(자미화)이 여행자를 반기고, 마을 안쪽 종택에는 한겨울 산골에서 전복을 구해 시어머니를 봉양했다는 전설이 깃든 우물 ‘복정’도 자리해 마을 고유의 심성을 읽게 한다.
가야로 가는 길목이란 뜻의 괴항마을에 무진정이 자리한다(사진=이효태)가야읍 괴항마을로 향하면 생육신 조려 선생의 손자인 조삼 선생이 후학을 양성하던 무진정이 나타난다. 연못 위 돌다리를 건너 정자에 오르면 욕심을 내려놓은 선비의 고결한 지조가 전해진다. 매년 사월초파일 연못 위로 참나무 숯가루 불꽃이 쏟아지는 ‘함안 낙화놀이’의 무대로도 유명하며, 지난해에는 사전예약제가 순식간에 매진될 만큼 뜨거운 관심을 모았다.
함안낙화놀이가 열리는 무진정 연못(사진=이효태)천 년의 별빛 가야, 말이산 고분군이 품은 사후 세계와 장엄한 역사 정원 함안 여행의 종착지는 아라가야 왕들의 안식처이자 가야 최대 규모의 유적인 ‘함안 말이산 고분군’이다. 해발 40~70m 능선을 따라 약 1,000기의 고분이 분포한 이곳은 최근 곡간부를 흐르던 옛 물길과 지형 복원 정비사업을 완료하며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서의 풍격을 한층 더 높였다.
소나무 숲 뒤로 함안 말이산 고분군 13호분(사진=이효태)수많은 무덤 중 13호분은 아라가야의 정교한 천문 수준을 보여주는 핵심 유적이다. 천장 덮개돌에서 여름철 전갈자리와 은하수를 표현한 190여 개의 별자리 구멍이 발견되어 사후 세계에 대한 가야인들의 깊은 사유를 드러낸다.
함안말이산박물관에서 만나는 아라가야의 유물(사진=이효태)고분군 초입의 함안박물관과 말이산고분전시관에서 가야로의 여정은 한층 넓어진다. 다음 세상에서의 안식을 기원하며 묻은 새·배 모양의 상형토기와 뛰어난 제철 기술을 보여주는 아라가야인의 말갑옷 등에서 개마무사의 위용을 짐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