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오빠' 변천사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 예전 초등학교 졸업식장에선 재학생들이 손위 선배를 형이나 오빠, 누나 구분 없이 모두 ‘언니’로 호칭했다. 원래 언니는 손아래 여자가 손위 여자를 부르는 것뿐만 아니라 어린 남자가 손위 남성을 가리킬 때도 쓰는 말이었다. 일본어에서 형(兄)을 ‘아니(あに)’라고 부르는 데서도 이 단어의 원류를 유추해 볼 수 있다.



한국어 낱말 중에는 윗사람과 아랫사람, 성별에 따라 달리 쓰는 게 적지 않다. 대표적인 것이 오빠, 누나 같은 친족 호칭이다. 영어에선 브러더(brother)나 시스터(sister)로 뭉뚱그려 칭할 개념을 두고 동성이 부를 때와 이성이 부를 때가 다르고, 연상이냐 연하냐에 따라 쓰는 말이 따로 있다. 한국어처럼 친족 호칭이 복잡한 언어는 거란어와 같은 일부 퉁구스제어 정도를 꼽는다.



친족 호칭 중에서 ‘오빠’의 어원으로는 ‘올아바’가 거론된다. 조선 후기 어원 연구서인 <화음방언자의해(華音方言字義解)>에 나오는 이 단어는 ‘올’과 ‘아바’의 합성어로 추정된다. ‘올벼’와 같은 용례처럼 ‘올’은 ‘이른’ ‘미숙한’이란 뜻이고 ‘아바’는 ‘아버지(아빠)’라는 의미다. ‘아버지보다 어리고 미숙한 남자’란 뜻으로 남성 형제를 총칭하던 올아바는 ‘오라비’를 거쳐 19세기 말 ‘옵바’ ‘업바’ ‘오빠’로 표기가 바뀌었다.



가치중립적 지칭어이던 오빠는 시대에 따라 뉘앙스가 변했다. 1980년대 운동권 여대생들은 가부장제에서 벗어나겠다며 의식적으로 이성 선배를 ‘형’이라고 불렀다. 민주화 이후엔 오빠가 나이 어린 여자가 손위 남자를 ‘정답게’ 이르는 말에서 연인을 지칭하는 용도로 빠르게 확대됐다. “나는요 오빠가 좋은 걸 어떡해”라는 아이유의 노랫말처럼 오빠 소리를 듣는 것은 젊은 남성의 로망이 됐다. “오빤 강남 스타일”이라며 치근덕대는 아저씨도 늘었다.

최근 여당 대표가 여자 초등학생에게 50대 여당 국회의원 후보를 향해 ‘오빠라고 해보라’고 강요해 논란이 일고 있다. 부적절한 발언 탓에 오빠가 지배관계, 성적 욕망을 연상시키는 무서운 말로 변했다. 오빠라는 단어가 괜한 고생을 하는 것만 같아 안쓰럽다.



김동욱 논설위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