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인간 이긴 로봇 마라토너

“스티븐 바이얼리는 입을 굳게 다문 채 주먹을 빼내서는 그 남자의 턱을 찰싹 때렸다.” 1946년 출간된 아이작 아시모프의 공상과학(SF) 소설 <증거>에선 로봇이 선거에 출마해 인간과 경쟁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소설 속 로봇은 “넌 인간이 아니어서 나를 때릴 수 없다”고 도발하는 인간에게 ‘손찌검’을 마다하지 않는다. 인간과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사람에게 해를 가할 수 없다’는 로봇의 준수 원칙도 내팽개친다.



로봇은 강하다. ‘무쇠 팔’과 ‘무쇠 다리’를 지닌 로봇은 지치지도, 겁먹지도 않는다. 유독가스가 가득하고 불꽃이 난무하는 위험한 작업장에서도 24시간 오차 없이 임무를 수행한다. 이런 로봇의 능력은 인간에게 위협으로 비친다. 로봇이 인간을 대체하거나 지배할지 모른다는 ‘프랑켄슈타인 콤플렉스’는 인간 본성에 뿌리 깊게 박혀 있다. 영화 ‘스페이스 오디세이’ 속 HAL9000부터 ‘터미네이터’의 T-800까지 로봇이 인간에게 적대적인 경쟁 상대로 그려진 이유다.

로봇이 마라톤 대회에 참가한 지 1년 만에 인간을 넘어섰다. 그제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하프 마라톤 대회에서 ‘산뎬’(번개)이라는 이름의 로봇 마라토너가 인간 프로선수를 제치고 우승했다. 중국 인공지능(AI) 기업 아너가 만든 산뎬은 약 21㎞ 구간을 50분26초 만에 주파했다. 인간이 세운 세계기록(57분20초)을 가뿐히 넘었다. 기계 관절이 줄곧 힘을 미세하게 조절하며 도약과 착지, 방향 전환을 했다.



몸뿐만 아니라 머리도 좋았다. 참가 로봇의 약 40%가 원격 제어나 외부 유도 신호에 의존하지 않는 자율주행 방식을 택했다. 카메라와 라이다, 센서에 의지해 AI가 길을 판별하고 속도와 방향을 조절했다. 지난해만 해도 경로를 이탈하거나 넘어지는 로봇이 수두룩했지만, 올해는 참가 로봇의 45%가 완주했다.



로봇 마라토너의 질주처럼 피지컬 AI의 발전은 눈부시다. 힘과 스피드로 로봇에 맞서서는 승산이 없다. 하지만 로봇은 로봇일 뿐이다. 인간이 굳이 경쟁할 이유가 없다.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유용한 도구로 바라봐야 한다.



김동욱 논설위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