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감 '정치적 중립' 원칙인데…'파랑·빨강' 꼼수 마케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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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철마다 교육감 '꼼수' 색깔 마케팅
선관위, 법 조항 모호해 규제 어려워
"교육감 직선제 문제 있어…논의 필요"
17일 서울 신촌 거리에 내걸린 서울시 교육감 예비후보자의 대형 선거 현수막을 본 대학생 박모 씨(24)의 반응이다. 시민 황모 씨(56) 역시 어느 정당 후보인 것 같냐는 질문에 현수막을 보며 "민주당 쪽 후보인가 보네요"라고 말했다.
이날 신촌 거리에는 파란색 바탕에 노란색 글씨로 꾸며진 현수막이 내걸려 있었다. 특정 정당의 상징색을 그대로 옮겨놓은 형태다. 이는 비단 특정 정당 후보자의 현수막에 국한되지 않는다. 현재 용산 등 서울의 주요 도심 일대에서는 여러 교육감 예비후보자들이 설치한 특정 정당을 암시하는 현수막을 손쉽게 찾아볼 수 있다.
교육감 선거철이 다가오면서 진보 성향 후보는 파란색, 보수 성향 후보는 빨간색으로 현수막과 점퍼로 거리를 도배하는 '컬러 마케팅' 꼼수가 반복되고 있다. 현행법에서는 교육 행정에 정당 정파적 이해관계가 개입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조항들을 두고 있는데 법 취지가 무색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 제46조는 후보자는 특정 정당을 지지·반대하거나 특정 정당으로부터 지지·추천받고 있음을 표방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박주형 경인교대 교육학과 교수는 "(그간) 정당 조직이 없는 교육감 후보들이 특정 정당 소속 시도지사 후보와 똑같은 색깔의 옷을 입는 등의 방식으로 유권자에게 (자신을) 각인시키며 선거를 치러왔다"며 "문제 의식은 있지만 법적인 테두리 내에서 그런 부분을 배제할 수 있는 수단이 아무것도 없다"고 현행 제도의 한계를 지적했다.
선거관리위원회도 규제 근거가 모호해 나서기 어렵다는 분위기다. 구체적으로 어떤 행위가 위반에 해당하는지 명시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선관위 관계자는 "판례상 유권자 입장에서 특정 정당으로부터 지지나 추천을 받고 있다고 받아들일 수 있으면 정당 표방 행위로 본다"면서도 "색깔을 사용한 것만으로는 정당 표방으로 볼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어 "색상과 표현 방식이 다 다르기 때문에 구체적인 사안마다 개별적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정치 중립' 현실성 없어…직선제 한계 타파 위해 사회적 논의 필요
그간 정치권·교육계 일각에서는 현실성 없는 '교육감 정치적 중립'을 고집하기보다, 시도지사 후보와 짝을 이뤄 출마하는 러닝메이트제가 대안으로 줄곧 제기돼 왔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2022년 12월 "시·도지사와 교육감이 러닝메이트로 출마하면 지방의 균형 발전에 훨씬 도움이 될 것"이라고 언급하면서 교육부가 정부 차원에서 러닝메이트제를 추진하기도 했다.그러나 진보 진영과 진보 성향 교육계는 러닝메이트 제도를 도입할 경우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과 교육자치를 훼손할 수 있다며 반발했고 관련 법안은 현재까지도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현행 교육감 직선제의 한계가 많다고 입을 모은다. 지난 2007년 도입된 교육감 직선제는 지역 주민의 참여를 늘려 교육 자치를 실현하자는 취지로 도입됐지만, 관심이 저조해 낮은 투표율이 줄곧 문제로 지적돼 왔다. 후보들이 정치적 중립 의무에도 불구하고 색깔 마케팅을 벌이는 것도 어찌 보면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진단도 나온다.
양정호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는 "서울시장이 누군지에는 관심이 많은데 교육감이 누군지 어떤 정책을 생각하는지에 대해서는 사람들의 관심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며 "직선제의 취지가 많이 무뎌지거나 없어졌다"고 진단했다.
이어 ""교육 행정과 일반 행정이 유기적으로 연대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시도지사와 함께 뛰는 러닝메이트제나 시장 도지사가 교육감을 임명하는 형태가 가장 바람직하다"고 제안했다.
이소영 대구대 사회학과 교수는 "현재의 교육감 선거는 정치 없는 척하는 정치 선거"라며 "막대한 자금과 조직 동원력이 있어야 하는 선거에서 사실상 유명 인사가 아니면 당선되기 힘든 구조"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정치적 라벨을 공개화해 유권자가 실질적으로 선택하고 통제할 수 있게 하면서 동시에 교육의 정치적 중립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사회적 합의 과정을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정우 한경닷컴 기자 krse905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