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도시들은 불편함을 참고 상당한 비용을 지불하면서 과거의 유산을 유지하는 일에 온 힘을 다한다. 오래된 건축물을 철거하는 데 신중하고, 규제와 법규를 통해 도시의 미관을 지키는 이들의 노력은 도시를 가꾸는 일의 모범답안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그래픽 디자이너이자 연구가인 박고은은 <사라진 근대건축>을 통해 서울의 도시 풍경이 어떤 논의와 생각을 거쳐 지금의 모습을 가지게 됐는지 살펴본다. 저자는 네덜란드 디자인 아카데미에서 졸업프로젝트를 기획하며 1995년 옛 총독부 청사 철거 영상을 교수와 학생들에 공유했다. 기능상 문제가 없는 오래된 근대 건축물을 철거하는 일에, 그들은 의아함과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지배국의 역사가 익숙한 네덜란드 사람들에게 피지배국의 시선을 좀처럼 이해하지 못할 감정이기 때문이다. 박고은은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1900년대 한국의 근대사를 살피며 부끄러운 시대의 기록을 삭제해 나간 도시의 역사를 들춰냈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부끄러운 시대, 그래서 우리가 사는 도시에서 사라져 줬으면 하고 바라는 것들, 마치 가위로 싹둑 오려내거나 그 위에 다른 겹으로 덧대어 숨기듯 우리 손으로 지워버린” 건축물을 탐구한다.
번영과 부흥의 흔적인 유럽의 근대 건축물과 달리 우리가 지워나간 건물들은 치부나 다름없었다. 일제 강점기와 군사정권, 발전국가 시대의 건축물이 그러했다. 도시의 유산을 지키는 일에 있어도 선택권은 우리에게 있지 않았다. 전쟁의 시기, 폭격을 앞둔 서울을 두고 맥아더 장군은 “원래 도시란 천재지변이나 전쟁을 겪고 나면 그전에 비해 몇 배 더 크고 좋은 새 도시로 부흥된다. 더욱이 미국이 재건을 도울 것이니 서울은 앞으로 이상적인 현대 도시로 탈바꿈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니 무엇이든 빠르게 새것으로 교체해 나가는 도시의 철학은 단순히 평가절하할 수 없는, 식민 지배와 개발도상국 시절을 겪은 국가들이 가지는 어쩔 수 없는 흔적과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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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른커피가 위치한 오금동의 주택가는 비약적인 고도성장을 기록하던 시기의 주택 확장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곳이다. 건축학자 박철수가 <한국 주택 유전자 2>에서 언급한 “서울 변두리 골목길의 다세대, 다가구, 다중주택”이다. 1980년대 초반 정부는 단독주택에 한 가구만 거주하도록 규제하는 것이 오히려 서민들의 주거 환경을 악화시킨다고 판단해 건축법을 개정해 다세대 주택의 도입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수백만 호에 이르는 주택 건설을 재정적 노력 없이 쉽게 달성할 방안으로, 반지하층 도입과 공지규정 개정 등을 통해 새로운 주거유형을 탄생시킨 것이다. 빨간 벽돌의 빌라촌을 둘러싸고 또 다른 서민주택의 표본인 오래된 아파트 단지가 솟아있다. 송파구는 올림픽을 전후로 해 대대적인 개발이 일어났는데, 지금은 재개발로 서서히 자취를 감추고 있는 오래된 번영의 상징이기도 하다.
불도저식 개발과 성장 속 무대포 정신으로 밀어붙여 만들어졌다는 비판이 있기도 하지만, 오래된 아파트와 빌라, 다가구 주택은 지금의 우리를 만들어낸 가족과 삶이 탄생한 공간이기도 하다. 재개발로 부동산 가치가 높아지고, 그것이 나와 타인을 가르는 경계가 되어 담벼락이 세워지는 시대라면 더더욱 이 건물들의 가치는 소중해진다. 포른커피가 위치한 오금동 일대의 주거지는 아직도 낮은 담장과 느슨한 경계가 다양한 가족을 품고 있다. 그만큼의 따뜻한 포른의 아궁이는 커피와 그래놀라도 굽고 도자기도 구워낸다. 그 부뚜막에 피어오르는 연기를 따라 오늘도 사람들의 발길은 끊이질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