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미국 중간선거를 기점으로 ‘어포더빌리티’(affordability·비용 부담 여력)가 경제학은 물론 각국 정치권에서도 주요 화두로 떠올랐다. 국내총생산(GDP) 증가율, 고용률 등 일반적인 경제지표와 개인 생활 수준이 따로 노는 현상이 심해지고 있어서다. 이에 대한 유권자의 주목도가 높아지자 정치권도 핵심 관리 지표로 삼기 시작했다.

◇역대급 호황에도 ‘트럼프 심판’

7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중간선거 때 연소득 3만달러 미만 저소득층에서 가장 큰 폭의 민심 이반이 나타났다. 공화당에서 민주당 지지로 돌아서며 ‘블루쓰나미’를 이끌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전통적으로 민주당이 고소득·고학력층에서 더 많이 지지받은 것과 대비된다.

선거 초반부터 어포더빌리티를 핵심 슬로건으로 내건 민주당의 전략이 주효했다. 이번 선거에서 전체 유권자 5분의 2가 경제를 가장 중요한 문제로 꼽았으며 이 중 51%가 민주당에 투표했다.
나라는 '돈벼락' 맞는데…"난 왜 돈 없나" 분노 폭발한 까닭
이는 인공지능(AI) 붐에 힘입어 역대급 호황을 누리고 있는 미국 경제의 현 상황과 대조된다. 지난달 발표된 미국의 올해 3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전 분기보다 3.4% 증가했다. 고용지표도 좋다. 지난 6일 미국 노동부 발표에 따르면 지난달 비농업 고용은 전월 대비 16만5000명 늘었다. 실업률은 4.1%로 떨어졌다. 실업률은 지난달까지 62개월 연속 5% 미만을 유지해 ‘자본주의 황금기’로 불린 1965년~1970년 세운 최장 기록에 근접했다.

문제는 이 같은 지표가 체감과 동떨어져 있다는 점이다. 구직을 포기한 사람까지 포함한 넓은 의미의 실업률은 9월 7.6%에서 지난달 7.9%로 높아졌다. AI가 초급 일자리를 대체해 청년층은 노동시장 진입부터 막혀서다.

일자리가 있어도 생활 수준이 악화하기는 마찬가지다. 지난 9월 미국의 시간당 임금의 전년 동월 대비 상승률은 3.0%였다. 하지만 소비자물가는 3.7% 올라 구매력은 줄었다.

◇“내 지갑엔 돈이 없다”

다른 나라도 사정은 비슷하다. 유럽인 실질임금은 지난 7년간 누적 1.4% 상승하는 데 그쳤다. 지난 10년간 유럽연합(EU) 누적 물가 상승률이 30%를 훌쩍 넘는 것과 대비된다.

이처럼 국가 경제 성장과 개인 생활 수준 간 괴리가 커지자 국민 불만이 쌓였다. 이에 각국 정치권은 어포더빌리티를 핵심 관리 대상으로 삼고 있다. 이날 치러진 뉴질랜드 총선에선 생활비 부담 속에 “슈퍼마켓 과점을 해체하라”는 요구가 최대 쟁점으로 떠올랐다. 정당이 너 나 할 것 없이 슈퍼마켓 분할·매각을 공약으로 내걸었을 정도다.

일반 국민이 호황을 체감하지 못하는 것은 경제 성장을 이끄는 산업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최근 경제 성장을 주도한 건 AI와 반도체다. 이들 분야는 돈이 주로 서버, 전력 설비 등에 들어가는 자본집약적 구조여서 인력이 상대적으로 덜 필요하다. 대형 기술기업 이익은 빠르게 증가하지만 고용과 임금이 그만큼 늘지 않는 이유다.

코로나19 충격이 아직까지 이어진 영향도 있다. 코로나19 이후 물가 급등은 누적되는데 임금은 그 수준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어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7월 발표한 고용 전망에 따르면 조사 대상 37개국 가운데 13곳의 지난해 실질임금은 2021년 1분기 수준을 회복하지 못했다.

계층 간 격차도 커졌다. 기술주에 투자한 계층은 주가 상승으로 자산을 불렸지만 투자 여력이 없는 서민은 성장 혜택 없이 고물가 부담만 떠안고 있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일자리 질 개선과 중소기업의 금융·기술 접근 지원을 통해 AI로 얻은 생산성 향상이 노동자 소득 증대로 이어지도록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김미리 기자/뉴욕=황정수 특파원 mirimi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