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대 공격 받은 파리 루이비통 매장. /사진=REUTERS
시위대 공격 받은 파리 루이비통 매장. /사진=REUTERS
“부자들을 집어삼켜라” “자본주의는 살인이다”.

지난 17일 프랑스 파리의 대표 명품 거리인 방돔 광장에 자리한 루이비통 매장 외벽에 쓰인 낙서다. 인근 고야드 매장에서는 복면을 쓴 청년들이 가방과 여행 캐리어, 카드지갑 등을 쓸어 담았다. 가까운 겔랑 매장에서도 시위대가 립스틱이 든 종이 상자를 한 아름 안고 나왔다. 명품 쇼핑 명소가 순식간에 약탈 현장으로 변했다.

프랑스 경제의 핵심 산업이자 자부심인 루이비통, 디올, 에르메스 등 명품 브랜드가 불평등의 상징이 되며 시위대 표적이 되고 있다. 고가 이미지가 중요한 산업 특성상 명품업계는 매장 문을 닫는 것 외에 분노를 잠재울 뾰족한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공격받는 명품 매장들

시위대 공격 받은 파리 루이비통 매장.
시위대 공격 받은 파리 루이비통 매장.
23일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이번 시위로 프랑스 전역에서 상점과 사업체 등 3000곳 이상이 피해를 봤다. 일반 소매점부터 고급 부티크까지 업종을 가리지 않고 피해가 확산한 가운데 명품 매장도 영향을 받고 있다.

시위대가 약탈을 벌인 뒤 도난당한 명품이 온라인 중고거래 시장에 쏟아지고 있다. 포브스에 따르면 도난당한 것으로 의심되는 명품이 빈티드와 이베이 등 온라인 플랫폼에 등장했다. 프랑스 정부는 판매 게시물 삭제와 판매자 신원 확인을 요구하고 있고 중고거래 업체는 의심 거래 감시를 강화하고 있다.

프랑스에서 명품 매장이 시위대의 공격 대상이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9년 노란 조끼 시위와 2023년 연금개혁 반대 시위 당시에도 공격받았다. 2023년에는 시위대가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 본사에 난입해 베르나르 아르노 LVMH 회장 인형을 불태우기도 했다.

프랑스 명품 브랜드는 세계 시장의 약 25%를 장악하고 있다. 세계 명품 브랜드 270개 가운데 130개가 프랑스에 기반을 뒀다. 2018년 기준 국내총생산(GDP) 기여도는 3.1%, 직간접 고용 규모는 100만 명에 달했다. 프랑스 경제를 떠받치는 핵심 산업이자 국가적 자부심의 상징인 셈이다.

◇문 닫고 경비 늘리는 명품업계

이 같은 위상이 오히려 시위대 분노를 키우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세르주 카레이라 파리정치대 겸임교수는 “프랑스 국민은 명품산업을 자랑스러워하면서도 불평등한 본질을 비판하는 애증 관계를 유지해왔다”고 설명했다.

업계 마케팅 전략이 사회적 반감을 키웠다는 지적도 있다. 유명인 광고와 SNS를 통해 누구나 명품을 동경하도록 만들면서도 가격을 지속적으로 인상해 구매할 수 있는 소비자 범위를 좁혔다는 것이다. 카레이라 교수는 “젊은 세대 대부분이 명품 세계에서 배제됐다고 느낀다”며 “더 이상 꿈은 없고 질투와 분노만 남았다”고 말했다.

명품업계는 매장 보안을 강화하고 영업을 중단하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루이비통은 특수 유리창으로 시위대 침입을 막았고 디올은 보안 셔터와 민간 경비원을 동원했다. 에르메스도 보안을 강화했다. 파리 갤러리라파예트 백화점은 출입구를 줄이고 쇼윈도를 가리는 등 피해 예방에 나섰다.

브랜드 홍보 활동에도 제동이 걸렸다. 패션 전문지 보그는 “명품 브랜드들이 예정된 행사와 마케팅 활동을 그대로 진행할지, 사회 분위기를 고려해 취소할지를 놓고 고민하고 있다”고 전했다. 자칫 화려한 행사가 불평등에 대한 분노를 더욱 자극할 수 있어서다.

그럼에도 시위에 따른 매출 감소는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당장 연말 성수기를 앞두고 외국 관광객 유입이 줄어들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혜인/강윤지 기자 he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