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리오 에레라 벨루티니 /wikipedia
훌리오 에레라 벨루티니 /wikipedia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사면을 요청하던 베네수엘라 출신 억만장자 은행가의 가족이 트럼프 측근 변호사에게 5000만달러(약 700억원) 이상의 보수를 보장하는 계약을 제공한 뒤 해당 은행가가 사면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거액의 계약과 대통령 사면 결정 사이의 연관성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미국 행정부의 사면 절차와 고위 당국자의 이해충돌 가능성을 둘러싼 의혹이 제기됐다.

20일(현지시간) 미국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베네수엘라의 유력 가문 출신 억만장자 은행가 의 가족은 트럼프 대통령의 개인 변호사 출신인 앨리나 하바에게 4년간 보너스를 포함해 5000만달러가 넘는 보수를 보장하는 계약을 제안했다. 하바는 당시 미국 법무부에서 활동하던 트럼프 대통령의 측근 인사였다. NYT가 입수한 문서와 관계자 인터뷰에 따르면 계약 조건은 연간 기본 보수 1000만달러를 4년간 지급하고 각종 보너스를 추가하는 방식이었다.

계약 당사자는 에레라의 딸 이사벨라 에레라가 2025년 10월 말 플로리다주에 설립한 '콩코드 파트너스'라는 회사였다. 하바는 회사 설립 등록 며칠 뒤 계약을 확정했으며 당시 뉴저지주 연방검사장으로 재직하고 있었다. 콩코드 파트너스는 대외적으로 알려진 사업 활동이 거의 없고 에레라 가문의 사업에 관여하는 일부 관계자들조차 구체적인 사업 내용을 알지 못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하바는 올해 1월 1일부터 이 회사의 법률고문 업무를 공식적으로 시작했다.

이후 불과 몇 주 만에 트럼프 대통령은 에레라에게 전면적이고 조건 없는 사면을 부여했다. 당시 하바는 팸 본디 법무장관의 선임고문으로 연방 검사장들을 감독하는 업무를 맡고 있었다. 법무부 내 개인 사무실과 연방보안관실이 제공하는 경호 인력도 유지하고 있었다. 경호는 뉴저지주 연방검사장으로 근무하던 시절부터 이어진 것이었다.

NYT는 이러한 계약과 사면 결정의 시간적 연관성에 주목했다. 하바의 계약 내용을 알고 있는 관계자들은 "그녀가 에레라의 사면 추진을 돕기 위해 채용됐다고 믿고 있었으며, 특히 보수 규모가 이례적으로 크다는 점에 놀랐다"고 전했다. 다만 실제로 하바가 사면 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하바는 사면에 관여했다는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그는 자신의 고용 관계가 법무부의 검토를 거쳐 신고됐으며, 해당 계약이 사면을 얻어내는 일과 관련됐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다. 하바는 당시 연방정부에서 최대 130일간 근무하면서 외부 직업을 유지할 수 있는 특별정부직원 신분이었으며, 이해충돌 관련 규정의 적용을 받았다. 다만 콩코드 파트너스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았다.

에레라가 사면을 추진해 온 과정도 주목된다. 그는 2022년 8월 자신이 설립한 푸에르토리코 소재 은행을 조사하던 금융감독 당국자를 해임하도록 당시 푸에르토리코 주지사 완다 바스케스에게 뇌물을 제공하려 한 혐의로 기소됐다. 에레라와 바스케스, 에레라의 자문역으로 일했던 전직 연방수사국(FBI) 요원은 당시 중범죄 혐의를 모두 부인했다.

NYT는 "트럼프 대통령의 두 번째 임기 들어 부유층 범죄자들이 대통령과 가까운 변호사, 로비스트, 중개인들에게 거액을 지급하며 사면을 추진하는 이른바 '사면 산업'이 형성됐다"고 지적했다. 일부 사면 신청자들은 대통령과의 접촉이나 사면 절차에 대한 영향력을 약속하는 인물들을 고용하기 위해 수십만 달러에서 최대 100만달러를 지급했다는 것이다.

김동현 기자 3co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