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교육을 둘러싼 논쟁의 구도는 지난 30~40년 동안 거의 바뀌지 않았다. 보수 진영은 정치적 행동주의가 진지한 학문 연구를 밀어내고 있다고 비판했다. 진보 진영은 이런 비판에 정치적 의도가 깔려 있다며 일축했고, 학생들이 마르크스주의 교수들의 생각을 꿰뚫어 보고 비웃기 때문에 이들이 끼치는 해악은 크지 않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최근 사회주의자들이 잇달아 선거에서 승리하면서 보수 진영이 가장 우려했던 일이 현실로 확인됐다. 별 영향력이 없다던 그 마르크스주의 교수들이 대학 교육을 받은 유권자들을 너무나 근본적으로 바꿔놓은 나머지, 이전에는 당선될 수 없었던 사회주의자들이 이제는 전국 곳곳에서 승리할 수 있게 된 것으로 보인다.

진보 진영은 안일함의 대가를 치르고 있다. 급진주의자들은 우파 못지않게 중도좌파를 거세게 공격하기 시작했고, 과거 양대 정당의 공통 기반이었던 서구 문명의 유산을 짓밟고 있다. 이들이 서구를 비난할 때 내세우는 민주주의·평등·인권이라는 가치야말로 바로 그 전통의 일부다. 이들은 일각에서 주장하던 것처럼 선의를 가진 젊은 이상주의자들이 아니다. 자본주의와 사유재산의 폐지를 요구하는 데서 더 나아가 스탈린과 마오쩌둥조차 미친 짓이라고 여겼을 법한 조치들을 주장하는 강경 혁명주의자들이다. 경찰과 교도소를 없애고, 군대를 해체하고, 국경을 개방하자는 것이다. 무법적인 군중 지배에 대비하라.

그러나 학계가 유권자들의 수준을 떨어뜨린 문제를 생각하면서, 학계가 초래하는 그 밖의 광범위한 피해도 잊어서는 안 된다. 학교 교사들에게 유해한 이념을 주입하는 교육학과들은 아이들의 읽기·수학 시험 성적을 역사적 최저 수준으로 떨어뜨렸다. 언론·법학·의학 교육기관들은 유능한 전문인 양성보다 ‘워크(woke)’ 이념 주입을 앞세우고 있다.

사실상 우리의 교육 체계 전체가 파괴적인 정치적 급진주의자들에게 장악됐다. 선진 사회가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알면서도 이를 막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제정신이 아니다. 이런 어리석음이 저절로 지나갈 것이라고 생각하는 낙관론자들은 틀렸다. 우리는 지금 마르크스주의가 지배하는 대학에서 이념을 주입받은 한 세대가 미치는 영향을 보고 있다. 두 번째 세대도 뒤따르고 있다. 진정한 대학 교육을 받은 마지막 세대가 사라지기 시작하면, 우리의 헌정 질서도 함께 사라질 것이다.

존 스튜어트 밀은 다음과 같이 지적했는데, 옳은 말이었다. “질서나 안정을 추구하는 정당과 진보나 개혁을 추구하는 정당은 모두 건전한 정치 생활에 필요한 요소다. … 각자가 이성과 분별의 한계를 벗어나지 않도록 붙들어두는 것은 상당 부분 상대방의 반대다.” 지적 반대 세력의 부재는 중도좌파 성향의 대학들이 비이성의 나락으로 떨어지도록 만들었다. 이제 좌파 이념이 강의실에 스며드는 것을 환영했던 진보주의자들은 스스로 만들어낸 끔찍한 문제에 직면했다. 바로 미국민주사회주의자들(DSA)이다.

대학 내 급진주의자들의 지배는 끝나야 한다. 이들이 국가에 끼치는 끔찍한 피해를 막으려면 고등교육과 전문인 교육에 대한 이들의 철저한 장악력을 깨뜨려야 한다. 다양성·형평성·포용성(DEI)을 금지하거나, 현재 소홀히 다뤄지는 일부 과목을 필수로 지정하거나, 급진주의자들의 영향에서 벗어난 학과를 여기저기 추가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이런 조치들은 가치 있는 첫걸음이지만, 인사가 곧 정책이다. 대학 지도부가 교수진을 검증하지 않으면 정치 활동가들은 강의실에 남아 파괴적인 행태를 이어갈 것이다.

대학 운영진이 학문의 자유나 종신재직권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급진 성향 교수들을 해임할 수 있는 근거는 적어도 세 가지다.

첫째는 모든 고용관계에 적용되는 원칙이다. 특정 업무를 수행하도록 채용됐는데, 이 경우에는 대학생들의 지식과 분석적 사고를 증진하는 일이 해당한다. 그런데 그 대신 전혀 다른 일, 즉 정치적 신념을 전파하는 일을 한다면 이는 계약 위반이다. 두 업무는 너무나 동떨어져 있어 한쪽에서의 성공은 다른 쪽에서의 실패를 뜻한다. 전자는 독립적인 사고를 촉진하지만, 후자는 획일적인 동조를 조장하기 때문이다.

둘째, 업무 성과가 지속적으로 형편없다면 고용주는 당신을 해고할 권리가 있다. 정치 활동가들이 제공하는 고등교육은 이 기준에 차고 넘치게 해당한다. 여러 연구는 최근 대학 졸업생 대부분이 미국의 역사나 미국의 번영을 이끈 경제·정치 이론에 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다는 점을 보여줬다. 대학은 현명한 시민을 길러내야 했지만, 오히려 이들을 어리석게 만들고 있다. 지식을 증진하기 위해 설립된 기관들이 무지를 조장하고 있다.

셋째, 대부분의 대학은 교수가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정파적 이익을 추구하는 것을 금지한다. 내가 거의 30년 동안 그 규정 아래에서 가르쳤던 캘리포니아대의 정책을 보자. “대학 평의회는 … 대학이 정치와 거리를 유지하고, 정파적 이익을 증진하는 도구로 결코 기능하지 않도록 할 책임이 있다. 예를 들어 강의실이 정치적 이념 주입에 사용되도록 허용하는 등의 강의실 오용은 … 대학이라는 기관을 오용하는 행위에 해당한다.” 종신재직권도 학문의 자유도 소속 기관의 규정을 상습적으로 위반하는 교수들을 보호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학계에 무엇이 잘못됐는지 정확히 알고 있다. 그 피해가 얼마나 큰지 알고 있으며, 어떤 집단이 피해를 일으키는지도 알고 있다. 이들을 해임하는 데 법적 장애물은 없다. 진보 성향 학자들 역시 공격 대상이 되면서 이들의 반대도 약해지고 있다. 어떤 문제들은 너무 복잡해 쉽게 이해하거나 해결하기 어렵지만, 이 문제는 그렇지 않다. 이제 대학 지도부는 학문보다 정치적 행동주의에 더 큰 관심을 두는 교수들을 퇴출해야 한다.

*필자 존 엘리스는 캘리포니아대 샌타크루즈 독문학 명예교수이며, 『고등교육의 붕괴: 어떻게 일어났고, 어떤 피해를 주며, 무엇을 할 수 있는가』의 저자다.

정리=김동현 기자 3co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