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추천 뉴스
바니 프랭크: ‘워크(Woke)’를 탄핵하라 [이번주 WSJ]
아, 담배 연기로 자욱했던 밀실 정치의 시절이 그립다. 과거에는 정당의 원로들이 주지사나 군 장성 가운데 대통령 후보를 결정했다. 그들은 수십 년 동안 공직을 수행하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었던 인물들이었다.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 하원의원이 뉴욕타임스(NYT)에 한 말을 들어보라. 역사는 당신이 준비됐는지 따위에는 관심이 없으며, 당신을 붙잡아 어떤 일을 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음, 그 어떤 일이란 사실 당신이 원래부터 하고 싶었던 일이다. 예컨대 전 국민 건강보험인 ‘메디케어 포 올(Medicare for All)’이나 대폭 확대된 전국 단위 최저임금제 같은 것들이다. 부채가 넘쳐나고 국제적 위험이 고조되는 시대에 이런 정책들이 과연 시의적절한지는 중요하지 않다는 식이다.
물론 도널드 트럼프는 자기실현을 추구하는 대통령의 극치를 보여주는 인물이다. 그가 2024년 재집권이라는 최고의 성취를 이룬 직후 세상을 떠났다면 위대한 인물들의 반열에 올랐을 것이다.
그 이후의 대통령직 수행은 어떠한가? 위인들의 반열에 들어갈 수 있는 입장권은 아니다.
이제부터 펼칠 주장에 아이러니가 있다는 사실을 나도 곧바로 인정한다. 트럼프가 최근 맞붙었던 두 명의 민주당 대선 상대는 이제 담배 연기가 사라진 밀실에서 만들어진 후보들이었다. 기득권 세력이 한 사람, 즉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을 막기 위해 10년 동안 벌인 싸움 속에서 연기 없는 밀실 정치는 화려하게 부활했다. 트럼프가 오랫동안 벌인 전쟁의 상대는 사실 다른 후보들이 아니었다. 그것은 기득권 세력 전체가 집단으로 토해낸 반감이었다.
기자 조너선 스완과 매기 하버먼은 자신들의 책에서 트럼프가 공화당을 장악하는 과정을 기록했지만, 그 이유까지 설명하지는 않았다. 트럼프가 공화당을 자신의 지배 아래 복속시킨 것은 그가 집권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의 적들이 권력을 쥐고 있던 정권 교체기의 일이었다.
그때 비로소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 운동은 사회학자들이 정의하는 의미에서 진정한 대중운동으로 발전했다. 이전까지는 선거일에만 모습을 드러내는, 특정 정치인 한 명에 대한 열광적인 추종 집단에 가까웠다. 변화의 첫 조짐은 2020년 4월 미시간주 랜싱에서 시작돼 다른 주도들로 확산한 코로나19 봉쇄 반대 시위였을 수 있다. 이 시위들은 자발적으로 조직됐다. 여기서 한 가지 사실을 주의 깊게 봐야 한다. 당시 트럼프 자신도 봉쇄 정책에 대해 아직 확실한 입장을 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MAGA가 진정으로 결집한 시점은 아마도 2021년 1월 6일 의회 난입 사태를 전후한 며칠 사이였을 것이다. 한 대표적인 뉴스 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트럼프의 첫 번째 대통령 임기 가운데 처음 2년 동안 MAGA가 언급된 횟수는 9985건이었다. 반면 2024년 한 해에만 6만5345건이 언급됐다. 그 무렵 미국인들은 이전에는 결코 보지 못했던 일들을 목격했다. 언론이 국가안보 기구와 결탁해 거짓말하는 모습이었다. 미국 정보기관 관리들이 국내 정치에 개입하는 모습이었다. 코로나19를 명분으로 한 강압적 조치들이 있었다. 2020년에는 법적 근거를 벗어난 대규모 우편투표 제도가 만들어졌다. 2024년에는 명백하게 노쇠한 현직 대통령을 자기 당 유권자들의 의사를 무시한 채 다시 대통령 자리에 앉히려는 음모가 있었다.
마지막으로 있었던 진정한 의미의 정직한 실수는 아마도 2016년 힐러리 클린턴이 중서부 북부 지역에 지나치게 승부를 걸었던 일이었을 것이다. 그 이후 뭔가 비정상적인 일이 시작됐다. 척 슈머는 이를 유명한 말로 표현했다. 정치인이 정보기관을 적으로 돌리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나는 이 지면에서 언론이 보여준 용기와 정직성의 결여, 그리고 오늘날 민주당의 유력 정치인 가운데 일부가 지난 몇 년 동안 벌어진 일에 대해 마비된 듯 침묵하고 있는 모습을 기록해 왔다.
잭 스미스 특별검사는 트럼프의 재선으로 좌절된 형사 기소의 정당성을 지금도 요란하게 옹호하고 있다. 하지만 더욱 흥미로운 스미스의 모습은 자신이 트럼프의 재선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 되돌아보는 모습일 것이다.
1970년대에 출간된 대중적인 저서들에서 워싱턴포스트의 데이비드 브로더와 영국의 헨리 페얼리는 대통령 후보를 선출하는 방식이 대중영합적 예비선거 중심으로 바뀌는 것을 언젠가 후회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나 역시 2016년에 트럼프가 당선되면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 놓은 대통령직이라는 제도의 신비가 결국 벗겨질 것이라고 썼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바로 그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모든 행정부는 유권자들의 불만이 표출되는 중간선거를 맞는다. 하지만 모든 행정부가 구성원들에 대한 대규모 범죄 혐의 제기와 대통령의 대규모 사면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행위들을 뒤에 매단 채 레임덕 시기를 맞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정당 조직의 위상을 떨어뜨렸고, 대통령을 자기실현을 추구하는 존재로 떠받들었으며, 양당에서 기이한 행동주의자 집단에 힘을 실어줬다. 이들은 흔히 ‘정치적 취미생활자(political hobbyists)’라고 불린다. 이제 우리는 담배 연기로 가득했던 옛 밀실 정치로 완전히 돌아갈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위대한 공화국에는 여전히 안정적인 엘리트 집단이 필요하다. 그리고 모든 직감은 앞으로 제기될 탄핵 문제에 대해 의회의 민주당과 공화당이 어떻게 대응하느냐가 새로운 균형을 찾는 데 핵심이 될 것임을 가리키고 있다.
지난달 고(故) 바니 프랭크의 유작인 《통합으로 가는 험난한 길: 민주주의를 구하기 위해 왜 좌파를 개혁해야 하는가(The Hard Path to Unity: Why We Must Reform the Left to Rescue Democracy)》가 출간됐다.
베테랑 정치 전문 필자인 데이비드 슈라이브먼과 조앤 베노치는 이 책이 도널드 트럼프의 부상에 대한 책임을 명백하게 좌파에 돌리고 있다는 사실을 과감하게 지적했다. 바이든 행정부 시절 터무니없는 절정에 이른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유권자들은 민주당 후보 누구에게든 표를 던진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우리 대부분이 동의하지 않는 당내 소수 집단이 정책을 좌지우지하게 된다”는 의미였다.
프랭크가 말한 소수 집단은 바로 ‘워크(woke)’ 세력이었다. 동성애자이자 자유주의자인 프랭크의 워크에 대한 비판은 피트 헤그세스가 쏟아낸 어떤 독설보다도 훨씬 통렬하다. 다음 달부터 민주당은 자신들이 그토록 근시안적으로 초래한 피해를 바로잡기 시작할 수 있는 실질적인 권력을 손에 쥐게 될지도 모른다.
정리=김주완 기자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 하원의원이 뉴욕타임스(NYT)에 한 말을 들어보라. 역사는 당신이 준비됐는지 따위에는 관심이 없으며, 당신을 붙잡아 어떤 일을 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음, 그 어떤 일이란 사실 당신이 원래부터 하고 싶었던 일이다. 예컨대 전 국민 건강보험인 ‘메디케어 포 올(Medicare for All)’이나 대폭 확대된 전국 단위 최저임금제 같은 것들이다. 부채가 넘쳐나고 국제적 위험이 고조되는 시대에 이런 정책들이 과연 시의적절한지는 중요하지 않다는 식이다.
물론 도널드 트럼프는 자기실현을 추구하는 대통령의 극치를 보여주는 인물이다. 그가 2024년 재집권이라는 최고의 성취를 이룬 직후 세상을 떠났다면 위대한 인물들의 반열에 올랐을 것이다.
그 이후의 대통령직 수행은 어떠한가? 위인들의 반열에 들어갈 수 있는 입장권은 아니다.
이제부터 펼칠 주장에 아이러니가 있다는 사실을 나도 곧바로 인정한다. 트럼프가 최근 맞붙었던 두 명의 민주당 대선 상대는 이제 담배 연기가 사라진 밀실에서 만들어진 후보들이었다. 기득권 세력이 한 사람, 즉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을 막기 위해 10년 동안 벌인 싸움 속에서 연기 없는 밀실 정치는 화려하게 부활했다. 트럼프가 오랫동안 벌인 전쟁의 상대는 사실 다른 후보들이 아니었다. 그것은 기득권 세력 전체가 집단으로 토해낸 반감이었다.
기자 조너선 스완과 매기 하버먼은 자신들의 책에서 트럼프가 공화당을 장악하는 과정을 기록했지만, 그 이유까지 설명하지는 않았다. 트럼프가 공화당을 자신의 지배 아래 복속시킨 것은 그가 집권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의 적들이 권력을 쥐고 있던 정권 교체기의 일이었다.
그때 비로소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 운동은 사회학자들이 정의하는 의미에서 진정한 대중운동으로 발전했다. 이전까지는 선거일에만 모습을 드러내는, 특정 정치인 한 명에 대한 열광적인 추종 집단에 가까웠다. 변화의 첫 조짐은 2020년 4월 미시간주 랜싱에서 시작돼 다른 주도들로 확산한 코로나19 봉쇄 반대 시위였을 수 있다. 이 시위들은 자발적으로 조직됐다. 여기서 한 가지 사실을 주의 깊게 봐야 한다. 당시 트럼프 자신도 봉쇄 정책에 대해 아직 확실한 입장을 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MAGA가 진정으로 결집한 시점은 아마도 2021년 1월 6일 의회 난입 사태를 전후한 며칠 사이였을 것이다. 한 대표적인 뉴스 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트럼프의 첫 번째 대통령 임기 가운데 처음 2년 동안 MAGA가 언급된 횟수는 9985건이었다. 반면 2024년 한 해에만 6만5345건이 언급됐다. 그 무렵 미국인들은 이전에는 결코 보지 못했던 일들을 목격했다. 언론이 국가안보 기구와 결탁해 거짓말하는 모습이었다. 미국 정보기관 관리들이 국내 정치에 개입하는 모습이었다. 코로나19를 명분으로 한 강압적 조치들이 있었다. 2020년에는 법적 근거를 벗어난 대규모 우편투표 제도가 만들어졌다. 2024년에는 명백하게 노쇠한 현직 대통령을 자기 당 유권자들의 의사를 무시한 채 다시 대통령 자리에 앉히려는 음모가 있었다.
마지막으로 있었던 진정한 의미의 정직한 실수는 아마도 2016년 힐러리 클린턴이 중서부 북부 지역에 지나치게 승부를 걸었던 일이었을 것이다. 그 이후 뭔가 비정상적인 일이 시작됐다. 척 슈머는 이를 유명한 말로 표현했다. 정치인이 정보기관을 적으로 돌리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나는 이 지면에서 언론이 보여준 용기와 정직성의 결여, 그리고 오늘날 민주당의 유력 정치인 가운데 일부가 지난 몇 년 동안 벌어진 일에 대해 마비된 듯 침묵하고 있는 모습을 기록해 왔다.
잭 스미스 특별검사는 트럼프의 재선으로 좌절된 형사 기소의 정당성을 지금도 요란하게 옹호하고 있다. 하지만 더욱 흥미로운 스미스의 모습은 자신이 트럼프의 재선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 되돌아보는 모습일 것이다.
1970년대에 출간된 대중적인 저서들에서 워싱턴포스트의 데이비드 브로더와 영국의 헨리 페얼리는 대통령 후보를 선출하는 방식이 대중영합적 예비선거 중심으로 바뀌는 것을 언젠가 후회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나 역시 2016년에 트럼프가 당선되면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 놓은 대통령직이라는 제도의 신비가 결국 벗겨질 것이라고 썼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바로 그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모든 행정부는 유권자들의 불만이 표출되는 중간선거를 맞는다. 하지만 모든 행정부가 구성원들에 대한 대규모 범죄 혐의 제기와 대통령의 대규모 사면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행위들을 뒤에 매단 채 레임덕 시기를 맞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정당 조직의 위상을 떨어뜨렸고, 대통령을 자기실현을 추구하는 존재로 떠받들었으며, 양당에서 기이한 행동주의자 집단에 힘을 실어줬다. 이들은 흔히 ‘정치적 취미생활자(political hobbyists)’라고 불린다. 이제 우리는 담배 연기로 가득했던 옛 밀실 정치로 완전히 돌아갈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위대한 공화국에는 여전히 안정적인 엘리트 집단이 필요하다. 그리고 모든 직감은 앞으로 제기될 탄핵 문제에 대해 의회의 민주당과 공화당이 어떻게 대응하느냐가 새로운 균형을 찾는 데 핵심이 될 것임을 가리키고 있다.
지난달 고(故) 바니 프랭크의 유작인 《통합으로 가는 험난한 길: 민주주의를 구하기 위해 왜 좌파를 개혁해야 하는가(The Hard Path to Unity: Why We Must Reform the Left to Rescue Democracy)》가 출간됐다.
베테랑 정치 전문 필자인 데이비드 슈라이브먼과 조앤 베노치는 이 책이 도널드 트럼프의 부상에 대한 책임을 명백하게 좌파에 돌리고 있다는 사실을 과감하게 지적했다. 바이든 행정부 시절 터무니없는 절정에 이른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유권자들은 민주당 후보 누구에게든 표를 던진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우리 대부분이 동의하지 않는 당내 소수 집단이 정책을 좌지우지하게 된다”는 의미였다.
프랭크가 말한 소수 집단은 바로 ‘워크(woke)’ 세력이었다. 동성애자이자 자유주의자인 프랭크의 워크에 대한 비판은 피트 헤그세스가 쏟아낸 어떤 독설보다도 훨씬 통렬하다. 다음 달부터 민주당은 자신들이 그토록 근시안적으로 초래한 피해를 바로잡기 시작할 수 있는 실질적인 권력을 손에 쥐게 될지도 모른다.
정리=김주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