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추천 뉴스
"금 800t 쌓였다"…부자들 짐 싸들고 몰려든 '이 나라'
민관 앞다퉈 거래·보관 인프라 확충 중
21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싱가포르 귀금속 거래업체 제이 로트바트 앤드 컴퍼니는 싱가포르의 민간 금 보유량이 2014년 이후 약 16배 증가해 지난해 800t을 넘어선 것으로 추정했다. 증가분의 대부분은 유럽에서 유입된 것으로 올해와 내년에도 증가세가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아시아의 포트녹스라고도 불리는 '르 프리포트'의 보관용량은 최소 1700t에 달하는데, 르 프리포트는 지난 5월 금 보관 수요가 증가하면서 지하 금고가 대부분 가득 찼다고 밝혔다.
싱가포르의 또 다른 대형금고시설 '더 리저브' 역시 해외 고객의 수요가 빠르게 늘고 있다. 해당 업체의 금 보관 프로그램에 참여한 고객의 금 보유량은 2020년 초 이후 3배 증가해 올해 9월 기준 8.6t에 달했다. 이 가운데 약 90%는 해외 고객이 보유한 금이다.
싱가포르의 초고액 자산가 가문에 금융자문 서비스를 제공하는 '멀티패밀리오피스 파로캐피털'의 공동 창업자 마니시 티브레왈은 "기존 다른 국가에 실물 금을 보관하던 전통적인 부유층 가문이 그중 일부를 싱가포르로 옮기고 있다. 과거 실물 금을 보유하지 않았던 가문도 프라이빗뱅크나 귀금속 거래업체를 통해 금을 매입해 싱가포르에 보관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금 가격이 하락 압력을 받고 있지만 인플레이션 우려와 장기금리 불확실성, 중앙은행들의 금 매입 등에 힘입어 안전자산으로서 금의 매력은 여전하다. 여기에 지정학적 위험과 자국의 재정·정치적 불안에 대한 우려까지 겹치자 부유층은 금을 보관할 국가의 안정성까지 고려하기 시작했다.
이 가운데 싱가포르는 안정적인 통치체계와 재정 여건, 국방 역량 등을 바탕으로 장기 자산 보관처로 주목받고 있다. 수십 년 동안 금을 맡기기에 적합한 국가라는 평가다.
더 리저브 창업자 그레고르 그레거슨은 "30~40년 동안 금을 장기 보관하려는 사람은 일반적으로 부유하고, 임박한 연금제도 위기가 없으며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는 국가를 선호한다. 싱가포르가 바로 그런 나라"라고 말했다.
특히 미국의 재정적자와 정치적 불확실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서방 부유층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제이 로트바트 앤드 컴퍼니에 따르면 지난 1년간 서방 고객들의 온라인 문의는 3배로 늘었다. 미국에서 가장 많은 문의가 들어왔고 캐나다, 영국, 호주가 뒤를 이었다. 싱가포르 귀금속 거래·보관플랫폼 '인디고 프레셔스 메탈스'도 같은 기간 유럽과 미국 고액 자산가들의 금 수요가 약 25% 증가했다고 밝혔다.
또 다른 귀금속 플랫폼 '골드'는 유럽 고객의 약 40%가 기존에 스위스에 보관하던 금 일부를 싱가포르로 이전했거나 신규 금 매입 시 싱가포르 보관을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일부 투자자는 서방 국가들이 제재 대상 러시아 자산을 동결한 이후 스위스의 중립성에 대한 인식을 재검토한 것으로 전해졌다.
싱가포르 정부도 이 흐름을 활용해 아시아 금 거래 중심지로 도약하기 위한 인프라 확충에 나서고 있다. 싱가포르거래소는 올해 말까지 금 장외거래 청산 시스템을 도입할 예정이다. 싱가포르 통화청도 해외 중앙은행과 국부 관련 기관을 대상으로 금 보관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미 실물 투자용 귀금속에 투자하는 적격 펀드와 패밀리오피스에 대한 세제 혜택을 확대했다.
금융회사들도 관련 사업을 강화하고 있다. 노무라 국제자산관리는 중동을 비롯한 고객의 요청에 대응해 싱가포르에서 실물 금 수탁 서비스를 시작했다. 화교은행(OCBC)도 올해 실물 금 사업을 확대했다. OCBC 산하 프라이빗뱅킹 부문인 뱅크오브싱가포르 고객의 금 보유량이 지난해 말 대비 40% 이상 증가한 데 따른 것이다.
장지민 한경닷컴 객원기자 newsinf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