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손으로 세계적 캐시미어 브랜드를 일구고, 쇠락한 한 중세 마을을 되살린 사업가가 있다. 이탈리아 럭셔리 브랜드 '브루넬로쿠치넬리'를 창업한 브루넬로 쿠치넬리다. 그의 삶을 담은 영화가 28일 국내 개봉을 앞둔 가운데 한국경제 아르떼가 서면으로 그와 만났다.
주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이 연출한 ‘브루넬로: 우아한 선구자’의 주인공 브루넬로 쿠치넬리. 영화는 지난해 12월 4일 이탈리아 로마 치네치타 스튜디오에서 첫선을 보였고 오는 28일 국내 개봉한다. /ⓒPhoto by Stefano Schirato
주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이 연출한 ‘브루넬로: 우아한 선구자’의 주인공 브루넬로 쿠치넬리. 영화는 지난해 12월 4일 이탈리아 로마 치네치타 스튜디오에서 첫선을 보였고 오는 28일 국내 개봉한다. /ⓒPhoto by Stefano Schirato
쿠치넬리는 2018년 펴낸 저서 <솔로메오의 꿈: 나의 삶과 인문주의적 자본주의의 도전>에 자신의 이야기를 일부 담았지만 영화로 제작되기를 바랐다. 글로 다 전하지 못한 감정이 배우의 몸짓과 이미지로 전해지리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연출은 평소 존경하던 ‘시네마 천국’ 감독 주세페 토르나토레에게 맡겼다. ‘인생은 아름다워’ 음악감독 니콜라 피오바니도 합류했다. 그렇게 탄생한 ‘브루넬로: 우아한 선구자(Brunello: the Gracious Visionary)’(2025)는 인터뷰와 배우의 재연 장면을 엮은 약 두 시간짜리 작품이다. 다큐멘터리와 극영화의 경계에 선 이른바 ‘다큐필름’이다.

영화의 무대는 이탈리아 움브리아 지방, 페루자 인근 작은 마을 솔로메오다. 쿠치넬리의 아내가 나고 자란 곳이다. 1978년 캐시미어 니트로 사업을 시작한 그는 1985년 이 마을 언덕의 14세기 성을 사들여 사옥으로 삼았다. 이후 30년간 마을 곳곳에 공방과 극장, 도서관을 세우며 솔로메오를 자신의 철학을 실천하는 터전으로 가꿨다. 그 철학의 뿌리는 한 시골 소년의 유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별을 보던 소년, 철학과 만나다

쿠치넬리는 1953년 페루자 인근 시골 마을 카스텔리고네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열일곱 살에 가족을 따라 페루자 외곽 도시로 이주하면서 삶이 바뀌었다. “갑자기 이전에는 누리지 못하던 전기와 수돗물을 사용할 수 있게 됐지만 동시에 우리에게 아주 특별했던 분위기를 포기해야 했습니다. 시골에서는 밤하늘 별을 바라보며 경이로움에 빠져들 수 있었으니까요.”

낯선 도시에서 소년에게 교실이 돼준 곳은 동네 바였다. 그곳을 드나들던 철학과 학생 두 명의 열띤 토론에서 그는 칸트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다. “제 안에서 무언가가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고대 로마인이 ‘호기심’이라고 부른 불씨가 타오른 것이죠.” 그 동네 바는 사람도 가르쳤다.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향한 감수성을 그때 길렀지요. 그래서 저는 힘든 사람에게 절대 등을 돌려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이야기를 들어줄 누군가가 필요하니까요.”

첫 자본은 한 사람의 믿음이었다

아름다운 솔로메오의 색으로 물든 캐시미어 원사들이 제조실에 놓여 있다. /브루넬로 쿠치넬리 제공
아름다운 솔로메오의 색으로 물든 캐시미어 원사들이 제조실에 놓여 있다. /브루넬로 쿠치넬리 제공
스물다섯 살의 쿠치넬리에게는 패션 경력도, 자본도 없었다. 그 대신 시어도어 레빗의 저서 <마케팅 이매지네이션>이 있었다. 신흥국이 중간 가격대 제품을 훨씬 싸게 만들게 될 테니 선진국은 고품질에 특화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그는 이를 행동으로 옮겼다. 원자재 선택부터 장인의 세공, 마무리까지 최고 품질을 추구하는 회사를 세웠다.

첫 승부수는 캐시미어에 색을 입히는 것이었다. 그 스스로도 “솔직히 말해 직관에 따른 것”이라고 인정하는 결정이었다. 당시만 해도 캐시미어 염색 기술은 발달하지 않았고, 숙련된 염색 장인 알레시오는 캐시미어가 너무 섬세하다는 말만 한동안 되풀이했다. 쿠치넬리는 끝내 그를 설득했고, 색을 입은 캐시미어는 성공을 거뒀다.

출발은 불안했다. 은행 대출조차 넉넉하지 않던 시절 풀오버 60벌가량을 제작할 수 있는 캐시미어 원사 20㎏을 사려던 그에게 한 사람이 말했다. “처음 번 돈으로 갚아도 됩니다. 나는 당신을 알아요. 당신은 좋은 사람이니까요.” 쿠치넬리는 “지금도 당시를 떠올리면 마음이 뭉클하다”고 했다. 세계적 럭셔리 브랜드의 첫 자본은 돈이 아니라 한 사람의 믿음이었던 것이다.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

사람을 믿고 존중하는 일은 이후 그의 경영 원칙이 됐다. 브루넬로쿠치넬리 웹사이트 첫머리에는 창업자의 말 대신 칸트의 문장이 걸려 있다. “아름다움은 도덕적으로 선한 것의 상징이다.”

그는 칸트의 또 다른 가르침도 회사로 가져왔다. “‘자신의 인격에서나 다른 사람의 인격에서나 인간을 단순히 수단으로만 대하지 말고 언제나 동시에 고귀한 목적으로 대하도록 행동하라.’ 저는 이 말을 제 회사뿐만 아니라 우리의 ‘아름다운 공장’에도 가져오고 싶었습니다.”

그가 즐겨 쓰는 ‘젠틀 럭셔리’라는 말도 같은 뿌리에서 나왔다. 최고의 품질과 장인 정신이 유행을 좇지 않는 스타일 안에서 만나고, 그 아름다움이 절제와 우아함, 인간에 대한 존중 위에 서야 한다는 것이다.

평생 지킨 아버지의 말 … ‘좋은 사람이 되어라’

브루넬로 쿠치넬리가 복원한 중세 도시 솔로메오에는 극장, 도서관, 와이너리, 성당 등이 있다. /브루넬로 쿠치넬리 제공
브루넬로 쿠치넬리가 복원한 중세 도시 솔로메오에는 극장, 도서관, 와이너리, 성당 등이 있다. /브루넬로 쿠치넬리 제공
그 존중은 사람을 넘어 땅으로 향했다. 쿠치넬리는 쇠락해가는 소도시와 시골을 ‘아름다운 주변부’라고 불렀다. 그곳에 다시 사람이 살게 하고, 새 땅을 깎기보다 있는 것을 고쳐 쓰는 일은 그가 평생 붙든 과제였다.

그는 가장 아끼는 결실로 수백 년간 견디도록 지은 솔로메오 극장을 꼽았다. 2022년에는 또 하나의 ‘백년 건물’을 짓기 시작했다. 세계 모든 언어로 쓰인 책 50만 권 이상을 모으는 것이 목표인 ‘솔로메오 유니버설 라이브러리’다.

사라진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서 영감을 얻은 이 도서관의 밑바탕에는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말로 전해지는 생각이 깔려 있다. “도서관을 세우는 것은 공공의 곡물 창고를 짓는 일과 같습니다. 영혼의 겨울에 대비해 비축해두는 것이죠.” 이곳에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1900년 판본도 소장될 예정이다. “그 책에 ‘살아 있는 동안, 할 수 있는 동안 선한 사람이 되어라’는 문장이 있습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도 늘 말씀하셨죠. 인생에서 무엇을 하든 좋은 사람이 되라고요.”

별을 보던 시골 소년은 동네 바에서 철학을 만났고, 경영서 한 권을 길잡이 삼아 캐시미어 회사를 설립했으며, 그 이윤으로 중세 마을을 되살렸다. 그리고 지금은 영혼의 겨울에 대비할 곡물 창고를 짓고 있다. 그가 생전에 영화로 남기기로 한 것은 결국 ‘좋은 사람이 되어라’는 아버지 말을 평생 따라온 기록이다.

한지희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