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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비디아의 빛과 그림자 [정삼기의 경영프리즘]
[한경 CFO Insight]
정삼기 씨에스케이파트너즈 대표
정삼기 씨에스케이파트너즈 대표
그런데 젠슨 황의 이런 극적인 드라마는 우리에게는 생경합니다. 앤비디아가 과연 어떤 곳이길래 또 어떤 이유 때문에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 나섰을까?
AI 중앙은행
엔비디아는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기업입니다. 하지만 시가총액 1조 달러를 달성하는 데 30 년이 걸린 회사입니다. 2조 달러를 돌파하는 데는 불과 9개월밖에 걸리지 않았고, 그로부터 2년도 채 안 되어 5조 달러를 넘어서며 글로벌 1위가 되었습니다.엔비디아의 놀라운 성장을 이끈 것은 제품과 기술 때문만이 아닙니다. 금융 공학 전략도 작용하고 있습니다. 데이터 센터 건설에 엄청난 규모의 보증을 제공하고, 월스트리트 금융기관들과 함께 AI 인프라에 천문학적 규모의 투자를 주도하며, 엔비디아 제품의 가치를 보증하기도 합니다. 고객사의 수익을 보전해 주기도 합니다. 이 때문에 엔비디아를 "AI의 중앙은행"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일각에서는 엔비디아가 "수요 촉진"과 "수요 창출" 사이에서 곡예를 하고 있으며, 위험 수준에 상당히 근접하고 있다고 평가합니다. 20여년 전의 금융 위기를 겪은 투자자들은 더욱 회의적입니다. AI 칩 수요 증가 속도가 예상보다 느리고 공급이 늘어나 가격이 폭락할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질지 걱정된다는 겁니다. 자칫 엔비디아의 수익 감소는 물론, 고객 지원에 쏟은 막대한 자금이 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엔비디아의 자금 지원 규모가 급증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런 우려는 무시하기 힘듭니다.
엔비디아의 전략은 최대 고객사들이 경쟁사로 변모하는 상황에 대한 대응책입니다. 아마존, 구글, 메타, 마이크로소프트와 같은 하이퍼스케일러들은 엔비디아 매출의 절반을 차지합니다. 하지만 대부분 자체적으로 칩 제조에 착수하면서 향후 엔비디아 칩을 계속 쓸지 불투명합니다. 하이퍼스케일러의 맞춤형 자체 칩은 엔비디아 칩보다 훨씬 저렴합니다. 일부 분야에서는 더 뛰어나기도 합니다. 이들 기업이 자체 용도로 그치지 않고 다른 기업에도 판매하고 있다는 점은 더욱 우려됩니다. 구글은 앤트로픽에 특수 프로세서를 판매하고 있습니다. 아마존 또한 상당한 수익원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런 하이퍼스케일러의 칩이 엔비디아의 매출을 잠식하여 시장의 약 50퍼센트를 차지할 것이라는 예측도 있습니다.
하이퍼스케일러는 신용 등급이 높고 차입 금리가 낮습니다. 반면 네오클라우드(neocloud) 업체들은 아직 수익은 미미하고 차입 금리는 훨씬 높습니다. 최대 네오클라우드인 코어위브의 자금조달 비용은 알파벳의 두 배 수준입니다. 엔비디아는 이런 하이퍼스케일러와 네오클라우드 간의 차입 비용 격차를 줄이고자 합니다. 그리고 유망 스타트업에 지분을 투자하여 미래의 고객으로서 엔비디아 칩 수요를 촉진하고자 합니다.
엔비디아는 투자를 통해 사용자가 무료로 다운로드하고 수정할 수 있는 오픈웨이트 AI 모델 확산도 지원하고 있습니다. 이는 앤트로픽, 오픈AI, 구글과 같은 기업과는 대조적입니다. 기존 제품들은 구독을 통해서만 이용할 수 있고 내부 작동 방식이 불투명한 경우가 많습니다. 지난 8월 엔비디아는 AI 코딩 모델 개발 스타트업인 풀사이드에 소프트웨어 라이선스 대가를 지불하고 지분을 인수하였습니다. 또한 오픈웨이트 모델 호스팅 플랫폼인 허깅 페이스를 인수하기도 했습니다. 모두 하이퍼스케일러에 의존하지 않는 AI 제품과 기업들을 확산시켜 엔비디아 칩에 대한 수요 촉진에 뜻이 있습니다.
엔비디아는 대규모 프로젝트를 직접 지원하기도 합니다. 7월 초, 네오클라우드 기업들이 신규 데이터센터 구축을 통해 얻는 수익을 일정 수준까지 보전해주는 새로운 전략을 발표했습니다. 엔비디아는 컴퓨팅에 대해 정해진 가격을 지불하고, 네오클라우드 기업들이 다른 고객에게 더 높은 가격에 판매할 경우 엔비디아는 차액의 일부를 받게 됩니다. 이러한 안전망 덕분에 네오클라우드의 미래 수익은 예측 가능해지고, 데이터센터 구축에 들어가는 자금 비용이 줄어듭니다. 이는 결과적으로 엔비디아 제품에 대한 수요를 촉진하게 됩니다.
코어위브가 대표적입니다. 엔비디아는 코어위브의 주주로서 지분 11퍼센트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코어위브는 데이터 센터 구축을 위해 엔비디아로부터 AI 칩을 구매합니다. 엔비디아는 코어위브로부터 2032년까지 최대 63억 달러 상당의 미사용 데이터센터 용량을 구매하기로 했습니다. 엔비디아는 네오클라우드 기업, AI 모델 메이커, 심지어 투자 회사 등 여러 고객사와도 얽혀 있습니다. 또한 재무 안전망도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한 보증과 구매계약 규모는 거의 3천억 달러에 달합니다.
엔비디아는 AI 모델메이커도 지원하고 있습니다. 미국 오하이오주에 건설 중인 데이터 센터는 일본 소프트뱅크의 계열사가 소유하고 있으며, 오픈AI가 입주할 예정입니다. 엔비디아는 토지와 건물 임대와 전력 구매 계약에 대한 보증을 제공합니다. 그 대가로 해당 프로젝트에는 150만 개의 엔비디아 프로세서가 사용되며, 프로젝트 수명 기간 동안의 업그레이드도 보장합니다. 아마존과 구글의 칩을 쓰고 있는 앤트로픽도 얽혀 있습니다. 앤트로픽은 엔비디아가 지분을 보유한 람다로부터 클라우드 컴퓨팅 파워를 임차하는 계약을 체결하였습니다.
엔비디아는 더욱 창의적인 방안도 모색하고 있습니다. 월스트리트 대형 기관과 함께 5천억 달러 규모의 파트너십을 통해 국부펀드, 보험사, 연기금과 같은 기관 투자자들을 유치하고 있습니다. 이 펀드가 투자한 기업들은 엔비디아 제품을 구매하고, 인프라를 구축하고, 컴퓨팅 자산을 판매합니다. 그리고 판매한 제품에 대해 "잔존 가치 지원"을 제공하여 일정 기간 후 하드웨어 가치 하락분을 보전해줍니다. 컴퓨팅 자산이 "투자 가능한 자산"으로 본다는 겁니다.
이러한 방식은 두 가지 근본적인 가정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하나는 엔비디아 칩의 가치가 계속 유지될 것이라는 가정이고, 다른 하나는 컴퓨팅 수요가 빠른 속도로 증가할 것이라는 가정입니다.
젠슨 황은 칩이 대체 가능하고, 내구성이 뛰어나며,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를 통해 판매 후에도 수년간 유용성이 유지된다고 말합니다. 칩이 대출 및 보증의 담보로 활용할 수 있는 금융 자산이라는 겁니다. AI 칩의 가치가 얼마나 오래 유지되는지는 논쟁의 여지가 있습니다만, 구형 칩에 대한 수요는 여전히 존재하는 것으로 보아 현재로서는 젠슨 황의 주장이 설득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칩의 수명과 가치는 단순히 희소성의 산물일 수도 있습니다. 컴퓨팅 자원이 제한적일 때, 기업들은 어쩔 수 없이 구형 칩을 계속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반도체 가격에 가장 큰 위험은 수요입니다. AI 투자가 계속해서 급증하는 한, 엔비디아는 칩을 계속 팔고, 고객들은 데이터 센터를 가득 채우며, 엔비디아가 제공한 보증은 거의 발동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수요가 시장의 기대만큼 폭발적으로 증가하지 않는다면, 네오클라우드 등의 수익 창출이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이는 결국 엔비디아가 미사용 컴퓨팅 자원을 매입하거나, 가격 차익을 보전해야 하는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될 경우 엔비디아의 매출도 타격을 받고, 현금 흐름이 줄어듭니다. 이런 시나리오는 단순히 수요 붕괴에 그치지 않고, 성장세에 대한 기대가 붕괴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엔비디아의 잠재적 부담은 얼마나 될까? 지분 투자는 약 250억 달러 정도입니다. 그리고 보증채무는 오픈AI의 데이터 센터, 월스트리트 파트너십 공급망 등에 대한 보증 및 구매계약은 약 3천억 달러에 이릅니다. 하지만 이 채무는 침체기에만 발생하고, 특히 일시에 부담할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게다가 엔비디아의 재무 상태는 탄탄합니다. 엔비디아가 위기에 처할 가능성은 모든 보증의무가 발생하고 수익이 거의 사라지는 재앙적인 침체가 아닌 한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보증 규모가 계속 커진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이런 복잡한 금융 수단을 사용하는 것은 엔비디아에 그치지 않습니다. AMD는 자사 칩을 대량으로 구매하는 계약을 따내기 위해 오픈AI와 메타에 자사 지분을 상당 부분 매각하겠다고 제안했습니다. 지난 4월 구글은 앤트로픽의 350억 달러 규모 칩 구매 자금 조달을 위해 여러 기업으로 구성된 컨소시엄을 구성했습니다. 구글을 대신해 칩을 개발하는 브로드컴은 앤트로픽이 대금을 지불하지 못할 경우 부족분을 보전하기로 했습니다.
AI 생태계가 과열되면서 투기성 프로젝트들이 늘어날 위험이 있습니다. 업계 수익이 이러한 복잡한 거래에서 예상했던 것보다 낮거나 실현에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면 결과적으로 문제가 커질 것입니다. 엔비디아만큼 이 문제에 복잡하게 얽힌 기업은 없습니다. 젠슨 황은 AI 인프라 구축이 전속력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믿습니다.
AI 세계 최고의 스타
지난 6월, 대만 타이베이는 열병에 휩싸였습니다. 젠슨 황이 식당에 온다는 소문을 듣고 수백 명의 사람들이 무더위 속에서 몰려들었습니다. 그는 아시아 최대 컴퓨터 하드웨어 컨퍼런스인 컴퓨텍스에 참석하기 위해 매년 여름 대만을 방문합니다. 그는 길거리 음식을 먹고, 거리를 거닐며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눕니다. 저녁에 야시장을 거닐며 말차 디저트를 맛보고, 옥수수구이 가게에 줄 서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저녁을 사주겠다고 농담을 건네기도 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뒤를 따라가며 셀카를 찍거나 사인을 받거나 담소를 나누고자 합니다. 그가 식당 화장실 타일에 "젠슨이 여기 있었다"라고 써놓자 곧바로 사람들이 줄을 서서 사진에 담습니다.
AI 시대에서 젠슨 황은 삽을 든 사나이입니다. 세계 빅테크 리더들과 자국의 AI 인프라 구축 경쟁에 뛰어든 정부들은 엔비디아 칩을 확보하기 위해 줄을 섭니다. 젠슨 황의 가벼운 칭찬 한마디만으로도 회사의 주가는 급등합니다. 메타의 마크 주커버그와 오픈AI의 샘 알트만 역시 거물이지만, 미국인들이 그들을 보기 위해 줄을 서거나 그들의 얼굴이 그려진 티셔츠를 사는 모습을 상상하기 힘듭니다. 마크 주커버그는 한때 그를 "테일러 스위프트” 같다고 묘사하기도 했습니다.
대만에서 “젠세니티(Jensanity)”라고 불리는 이 열풍은 어느 정도는 영웅 숭배에서 비롯됩니다. 대만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이민 간 그는 대만 최고의 성공 사례입니다. 그는 대만을 AI 혁명의 "중심지"라고 칭하며 탁월한 국제 홍보 활동을 펼칩니다. 소수의 국가만이 주권 국가로 인정하는 대만의 정치인들은 AI 붐에서 대만이 수행하는 핵심적인 역할이 소프트 파워를 확보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절실하게 기대합니다. 중국의 압박이 거세지면서 대만의 안보는 상당 부분 다른 국가, 특히 미국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젠슨 황은 대만의 위상을 높였을 뿐만 아니라 많은 대만 사람들의 부를 크게 늘려주기도 했습니다. 대만 증시는 지난 1년 동안 90퍼센트 상승하며 세계 5위 규모로 발돋움했습니다. 엔비디아에 반도체 칩을 공급하는 TSMC의 눈부신 성장 덕분입니다. 2023년 이후 TSMC의 시가총액은 5배 이상 증가하여 약 2조 달러에 달했으며, 협력업체들도 함께 번영을 누렸습니다.
하지만 젠슨 황의 열풍은 그 자신에 의해서도 부추겨지고 있습니다. 다른 실리콘 밸리 거물들과는 달리, 대중과의 소통에 적극적입니다. 그의 대중적인 이미지는 사업에 도움이 됩니다. 록스타 같은 이미지 덕분에 대만 제조업체들이 엔비디아와 협력하기를 열망하며, 젠슨 황의 인기를 등에 업기를 바랍니다. 올해 컴퓨텍스 행사 직후 곧바로 서울로 날아가 한국 대기업 총수들에게 맥주와 치킨을 대접하며 환심을 사고, TV 채널에서는 K팝에 맞춰 어색하게 춤을 추는 모습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대만 사람들이 그에게 "국민 아빠"라는 애칭을 붙여준 데에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20여년 전, 컴퓨텍스 같은 하드웨어 컨퍼런스 행사는 지루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사회성이 부족한 엔지니어들이 모여 서버 랙을 살펴보고, 사양에 대해 토론하고, 부품 가격을 협상하는 식이었습니다. 언론은 마이크로소프트와 구글에만 관심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최첨단 AI 모델 훈련에 엄청난 규모의 컴퓨팅 인프라가 필요해지면서, 하드웨어 업체들이 주목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컴퓨텍스 행사장은 곳곳을 날아다니는 드론과 거대한 네온사인으로 장식된 파빌리온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전시업체들은 기념품 가방과 버블티를 나눠주고, 휴머노이드 로봇들이 통로를 돌아다닙니다. 그리고 이제 젠슨 황이라는 최고의 스타가 등장하여 사람들을 끌어 모으고 있습니다.
젠슨 황이 트레이드마크인 검은 가죽 재킷을 입고 무대에 등장하면, 객석은 환호성으로 가득 찹니다. 그는 대만의 공급업체와 파트너들에게 감사를 표하는 것으로 연설을 시작하고, 스크린에는 그의 칭찬을 기대하는 전자제품 업체들의 로고가 번쩍입니다. 하지만 그의 입에서는 야시장의 과일 장수, 동네 만두 가게, 음식점들이 차례로 나옵니다. 사람들은 열광적인 환호를 보냅니다.
젠슨 황이 세계 경제의 중심에 서게 된 과정은 남다릅니다. 1963년 대만에서 태어난 그는 아홉 살 때 형과 함께 미국 켄터키주의 학교에 입학하였습니다. 이후 부모님도 미국으로 건너오며 오리건주에 정착했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전기공학을 공부한 후 실리콘 밸리로 향했고, 1993년 두 명의 동료와 함께 엔비디아를 설립했습니다. 엔비디아를 유명하게 만든 그래픽 처리 장치(GPU) 칩은 당시 주로 비디오 게임 용이었고, 경쟁이 치열했습니다. 엔비디아는 고성능 칩을 가장 먼저 출시하면서 시장을 장악했습니다.
2010년대 중반에 이르러 그는 AI가 컴퓨팅 산업을 혁신할 것이며, 동시에 여러 연산을 수행할 수 있는 GPU가 필수적인 요소가 될 것이라는 파격적인 확신을 가졌습니다. 당시는 AI는 차세대 핵심 기술로 거론되었지만 요원해 보였던 때였습니다. 그런데, 2022년 11월, 오픈AI의 챗GPT가 등장하였습니다. 챗GPT 학습에 사용된 엔비디아 칩의 수요가 폭증하였고, 시가총액은 불과 3년 만에 3,400억 달러에서 5조 달러로 급증했습니다.
사실 엔비디아의 성공은 뛰어난 칩 때문만은 아닙니다. 공급망 파트너와의 네트워킹, 그리고 정치적 환경에 대한 이해도 중요합니다. 소프트웨어 업계의 영웅들은 종종 고독한 천재로 묘사되지만, 하드웨어는 본질적으로 협업이 필요합니다. 엔비디아의 최신 제품인 베라 루빈 NVL72는 대규모 AI 모델 학습과 실행에 사용되는 AI 슈퍼컴퓨터로, 130만 개의 부품, 1,000개 이상의 칩, 다양한 소프트웨어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슈퍼컴퓨터를 구축하려면 수백 개의 공급업체, 제조업체, 소프트웨어 회사가 협력해야 합니다.
AI 붐과 부품 확보 경쟁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젠슨 황의 주요 업무 중 하나는 공급업체들이 엔비디아의 주문을 우선시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자금력도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엔비디아는 막대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제조업체들과 장기 계약을 체결해 왔습니다. 또한 공급업체들이 생산량을 늘리도록 유도해야 하는 것도 빠뜨릴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젠슨 황은 복잡한 공급망을 원활하게 유지해 왔습니다. 하지만 최대 고객사들때문에 여러 난관이 커지고 있습니다. 하이퍼스케일러들은 자체 AI 칩 개발을 통해 엔비디아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려 하고 있습니다. 젠슨 황은 이러한 상황에 대응하여 엔비디아를 AI의 미래와 더욱 긴밀하게 연결하는 전략을 펼치고 있습니다. 단순히 칩만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인프라, 소프트웨어, AI 모델까지 확산하고자 합니다. 이 전략에는 더욱 강력한 공급망 외교가 필요합니다. 따라서 그가 컨퍼런스에서 협력사들과 친목을 다지는 모습은 전혀 놀랍지 않습니다. 그가 협력업체 부스를 방문하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홍보 효과를 발휘합니다.
무대 위에서 열정이 폭발하는 젠슨 황은 어떤 사람일까? 챗GPT 출시 이후 삶이 어떻게 변했는지 기자가 묻자, 그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실리콘 밸리에는 하룻밤 사이에 유명인이 되는 창업가들의 이야기가 많습니다. 젠슨 황의 성공은 약 30년에 걸친 노력의 결과였기에, 마침내 스타덤에 오르는 순간이 더욱 기묘하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젠슨 황은 미국과 중국 기술패권 경쟁의 중심에도 올라서 있습니다. 2022년 10월 이후 미국은 중국의 첨단 컴퓨터 칩 확보를 막아오고 있습니다. 한편, 대만의 엔비디아 협력업체들은 중국의 군사 행동 위협에 직면해 있습니다. 젠슨 황은 세계 지도자들, 특히 트럼프 대통령과 관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트럼프 대통령에게 칩 수출 제한 완화를 설득하기 위해 로비를 벌였습니다.
젠슨 황은 정치인들과 어울리는 것이 익숙하지 않아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목표를 정치인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언어로 풀어내는 데 능숙합니다. 그는 데이터 센터를 "AI 공장"으로 재해석하며, 제조업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열정에 장단을 맞춥니다. 그러면서 미국 기업에 대한 의존을 꺼리는 외국 정부들에게는 "소버린 AI"를 제안하며, 엔비디아 주도의 국가 인프라 지원을 내세웁니다.
지난 5월, 젠슨 황은 미중 정상회담 참석을 위해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 중국을 방문하며 외교적 수완을 발휘했습니다. 그가 막판에 미국 정부 수행단에 합류하자, 트럼프 대통령이 소셜 미디어에 "위대한 젠슨 황"이 에어포스 원에 탑승했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는 중국 관리들을 만나고 중국 최고의 대학인 칭화대학교 자문위원회 위원직을 수락했습니다. 이런 그의 행보에 대해 강경파들은 의심의 눈초리를 보냅니다. 스티브 배넌 전 백악관 수석 전략가는 그를 중국 공산당의 "영향력 행사 대리인"이라고 부르며 체포를 요구합니다. 민주당 상원의원 엘리자베스 워런은 그가 중국에 첨단 AI 칩 판매를 위해 로비한 행위가 "중국의 군사력을 증강시키고 미국의 기술적 리더십을 약화시킨다"고 주장합니다.
중국 유화론자로 알려진 젠슨 황은 공개적으로 대만을 적극적으로 홍보합니다. 그는 대만이 엔비디아의 성장 기반이라며 대만을 자신의 "사업 본거지"라고 부릅니다. 타이베이에 엄청난 규모의 사무실을 짓고 있기도 합니다. 이러한 균형 잡기가 항상 순조로운 것은 아닙니다. 2024년 그는 대만을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국가 중 하나"라고 묘사하여 중국의 분노를 사기도 했습니다. 이런 그가 협력업체들을 자기 뜻대로 움직이게 하는 데에는 "강력한 추진력"과 "끈질긴 성격"이 작용합니다. 그의 협력업체 네트워킹 방식은 "거친 정의"라고 표현되기도 합니다. 때로는 한쪽이 옳고 때로는 틀리지만, 장기적으로는 승패가 거의 균형을 이룬다는 이해에 기반한다는 것입니다.
무엇이 젠슨 황을 움직이게 할까? 그는 다른 행성을 식민지화하거나, 죽음을 극복하거나, 인류를 재창조하는 것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고 합니다. 그의 목표는 단순합니다. 직원들과 파트너들이 잘 되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엔비디아와 젠슨 황은 작금의 AI 시대에 가장 영향력이 큰 주인공임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엔비디아의 화려한 성장 뒤편에 도사린 그림자도 만만치 않습니다. 그런 기회와 위험이 공존하는 상황에서 한국 기업과 경영자들이 해야 할 일이 넘쳐납니다. 메모리 공급망에서 레버리지를 확보하고, 고객을 다변화하고, AI 인프라 과잉 투자 주기에 대비하여 리스크를 관리하고, 소버린 AI와 도메인 특화 모델과 응용 서비스 주도권을 확보하고, 네오클라우드 및 대체 생태계와 전략적 제휴를 모색하는 등 과제가 끝이 없습니다.
이런 당연한 과제 이전에 대단히 아쉬운 것도 있습니다. 엔비디아는 불과 4년 전 챗GPT 등장 이후 급성장하였고, 그런 엄청난 과실을 생태계 조성에 아낌없이 뿌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 경제의 “운명을 쥐고 있다”는 삼전닉스는 어떨까? 사실 삼전닉스의 매출과 영업이익은 작년 말부터 급증하였습니다. 주가 역시 그 이후로 급등하였습니다. 엔비디아보다 더한 속도입니다. 하지만, 삼전닉스가 엄청난 과실을 기반으로 AI 생태계 확장을 위해 엔비디아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습니다.
또 하나 부러운 게 있습니다. 젠슨 황은 기업가로서는 드물게 거창한 비전보다는 실용을 추구합니다. 또한 미국과 중국의 슈퍼 파워 게임에서 나름의 균형을 유지하면서 자신의 기업을 지키고 AI 생태계를 확장할 줄 압니다. 변화무쌍한 지정학적 갈등 상황에서 공급망 파트너와의 네트워킹도 정치인들 못지않게 훌륭히 해내고 있습니다. 투자자들의 인식도 아쉽습니다. 삼전닉스의 엄청난 마진율이 영원해야 할 것처럼 공포에 빠집니다. 그리고 주식 시장이 흔들리면 그 요인과 책임을 찾느라 분주합니다. 본질은 달라진 게 거의 없는데도 말입니다.
영화 “디거(Digger)”는 현재의 디스토피아 세계를 유발한 과거의 빌런을 주인공으로 한 연극을 보여줍니다. 과거의 지구는 기후변화로 그린란드 빙하가 떨어져 나와 유럽 대륙으로 흘러가 유럽 절반이 물바다가 되는 끔찍한 재앙이 발생합니다. 이런 위기 상황에서 미국의 석유 재벌 우두머리 디거는 책임을 추궁하는 유럽 지도자들 앞에서 외칩니다. “자동차, 냉방, 여행, 음식, 스마트폰 모두 석유에서 나온다. 당신들은 석유를 사랑했고, 나는 그런 석유를 공급했을 뿐이다. 당신들 모두 똑같은 책임자다.”라고. 삼전닉스 잔치는 축복이 될 수도 재앙이 될 수도 있습니다.
(본 글은 The Economist의 “Nvidia is the central bank of AI”와 “How Jensen Huang became AI’s Taylor Swift”를 토대로 필자가 재구성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