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현지시간) 고물가와 공공서비스 및 보조금 축소에 분노한 유럽인들은 곳곳에서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프랑스 파리에서는 상점 약탈과 차량 방화가 잇따랐다. 마르세유에서는 시위대가 시청 내부에 진입했고 리옹에서는 관광안내소에 불이 났다. 시위 과정에서 약 1200명이 체포되고 경찰과 헌병 150명 이상이 다친 것으로 집계됐다.

이탈리아 밀라노에서도 시위가 폭력 사태로 번졌다. 일부 시위대가 돌과 물건을 던지자 경찰이 최루가스와 물대포로 대응했다. 두오모 광장 주변 상점이 문을 닫고 지하철역도 일시 폐쇄됐다.

포르투갈 리스본에서는 최대 노동조합인 CGTP 주도로 수만 명이 치솟는 주거비와 생활비에 항의했다. 벨기에 브뤼셀에서는 청년과 학생 수백 명이 교육비를 높이고 고등교육 접근성을 제한할 수 있는 개혁에 반대하며 시위를 벌였다. 일부 시위 참가자와 충돌한 경찰은 최루가스와 물대포를 동원했다.

이 같은 혼란을 틈타 정치권에서는 극단적인 세력이 힘을 얻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극좌 정당 굴복하지않는프랑스(LFI)를 이끄는 장뤼크 멜랑숑이 “정부의 빚을 ‘없던 일’로 만들면 재정 부담을 덜 수 있다”며 “국채를 모두 불태워버리자”고 했다. 프랑스 중앙은행이 보유한 4880억유로(약 734조원) 규모 국채를 갚지 말고 없애자는 주장이다.

“돈을 빌리고 갚지 않기로 하는 것, 그것을 도둑질이라고 한다”(세바스티앵 르코르뉘 총리) 등의 비판이 나왔지만 멜랑숑의 정치적 입지는 오히려 강화되고 있다. 각종 여론조사에 따르면 내년 프랑스 대선에서 그의 결선 진출이 유력하다. 임박한 국가적 위기 앞에 ‘뇌사 상태에 빠졌다’는 평가를 받는 유럽 정치권의 현주소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독일과 영국 정부 역시 재정 개혁 의지를 밝혔지만 낮은 지지율로 실행 가능성은 낮다는 평가가 나온다.

오세성 기자 ses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