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으로 소프트웨어를 분석해 거의 똑같은 프로그램을 만들어내는 ‘AI 역공학’이 글로벌 소프트웨어산업을 뒤흔들고 있다.
AI의 완벽한 복제…엑셀·포토샵 공짜?
16일 글로벌 정보기술(IT)업계에 따르면 미국 개발사 아트크래프트는 최근 어도비의 포토샵, 일러스트레이터, 프리미어 등 7종을 본뜬 무료 오픈소스 프로그램을 공개했다. 마이크로소프트(MS)의 워드, 엑셀, 파워포인트 등과 닮은 프로그램도 내놨다. 개발진은 앤트로픽의 AI 모델 ‘클로드 오퍼스 5.5’로 이들 소프트웨어의 코드를 작성했다.

게임도 비슷한 상황이다. 개발자 모리스 호이만은 지난 9일 AI 에이전트를 활용해 인기 게임 ‘콜오브듀티: 모던 워페어2’를 사실상 복제하는 데 성공했다.

시장은 즉각 반응했다. HSBC는 13일 아트크래프트 사례를 근거로 어도비 투자의견을 ‘매수’에서 ‘보유’로 낮췄다. 스티븐 버시 HSBC 미국기술주분석 책임자는 어도비를 “AI발 파괴적 변화에 직면할 가능성이 큰 기업”으로 지목했다.

설계도 없이 뚝딱…AI가 '독점 SW' 벽 허문다
'AI 역공학' 공습…수일 만에 포토샵·GTA5 등 복제

지난 6일 한 게임 인터넷 커뮤니티에 웹사이트 링크 하나가 공유되자 글로벌 게임업계가 술렁였다. 수십 기가바이트(GB)에 달하는 대작 인기 게임 ‘그랜드 테프트 오토 5(GTA5)’가 별도 설치 과정 없이 일반 웹 브라우저에서 돌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9월 말부터 ‘헤일로’ ‘블러드본’ ‘페이블 2’ 등 특정 콘솔 게임기와 PC에서만 즐길 수 있던 독점 인기 게임이 전혀 다른 기기 환경으로 옮겨지는 일이 거의 매일 벌어지고 있다.

◇AI로 날개 단 역공학

원본 설계도 없이 인공지능(AI)으로 상용 프로그램과 게임을 복제해내는 ‘AI 역공학’이 소프트웨어산업 근간을 흔들고 있다. 수년간 숙련된 개발자가 매달려야 하던 역공학이 AI 에이전트와 결합해 수일 만에 이뤄지게 되면서다.

그동안 소프트웨어 기업은 프로그램 소스 코드를 공개하지 않는 방식으로 기술과 노하우를 보호했다. 개발자가 인간이 읽을 수 있는 프로그래밍 언어(소스 코드)로 설계도를 작성한 뒤 이를 컴퓨터만 이해하는 0과 1 기계어로 변환해 배포하면 내부 구조와 핵심 알고리즘을 들여다보기 어려웠다. 완성된 요리만으로는 레시피를 알 수 없는 것과 비슷하다.

하지만 AI를 통한 역공학이 극대화하자 기존 프로그램 작동 원리를 짧은 시간에 분석할 수 있게 됐다. 역공학은 완성된 제품을 거꾸로 분해하는 작업이다. 설계도가 없어도 그것이 어떻게 제작되고 작동하는지 알아낸다.

4월 공개된 오픈소스 도구 ‘REA’(reverse engineer anything)가 최근 입소문을 타면서 AI 기반 역공학 시도가 급증하고 있다. REA는 앤트로픽의 클로드 코드, 오픈AI의 코덱스 등 AI 코딩 에이전트를 역공학 도구에 연결한다.

일반 소프트웨어와 관련해서는 아트크래프트가 역공학에 적극적이다. 이달 2일 어도비의 대표 프로그램인 포토샵, 일러스트레이터, 프리미어, 애크로뱃 등 7종을 본뜬 무료 소프트웨어를 공개했다. 7일에는 마이크로소프트(MS) 워드, 엑셀, 파워포인트에 각각 대응하는 ‘워드 크래프트’ ‘그리드크래프트’ ‘덱크래프트’를 내놨다. 브랜던 토머스 아트크래프트 최고경영자(CEO)는 “몇 년이 아니라 몇 달이면 프로그램을 99% 완성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용 방법은 간단하다. 인터넷에서 아트크래프트를 검색하고 해당 사이트에 들어가 관련 프로그램을 내려받으면 된다.

◇합법과 불법의 경계

저작권 논란도 커지고 있다. 역공학과 관련한 저작권 기준이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아트크래프트는 대상 소프트웨어의 소스 코드를 보지 않고 공개 문서와 화면 동작만으로 프로그램을 만든 만큼 저작권에 문제가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어도비와 게임사 코드를 참고했거나 소프트웨어 약관의 역공학 금지 조항을 어기면 문제가 될 수 있다. 포토샵 같은 상표와 고유 사용자인터페이스(UI) 디자인, 게임그래픽·음향 데이터를 그대로 베낀 경우에도 불법에 해당될 수 있다.

게임업계에서는 이런 복제물을 차단하는 움직임과 AI 역공학 기술을 신사업 기회로 활용하려는 움직임이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 GTA5 모회사 테이크투인터랙티브를 비롯해 베데스다, 액티비전, 닌텐도 등은 저작권 침해 중지 요청, 관련 시연 영상 삭제 등을 통해 강력 차단에 나섰다.

MS는 13일 기존 게임을 분석해 다른 기기에서 실행하는 기술과 AI 기반 개발을 연구하는 전담 조직 ‘엑스박스 랩스’를 출범한다고 밝혔다. 아샤 샤르마 MS 게이밍 CEO는 “기존 사업 모델에 도전하게 될 수 있지만 바로 그 이유로 이용자에게 더 좋은 결과가 나올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