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파병에 앞서 특수전 부대의 훈련을 참관하는 모습. 사진=국가정보원 제공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파병에 앞서 특수전 부대의 훈련을 참관하는 모습. 사진=국가정보원 제공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전한 북한군의 활약상을 그린 전쟁영화 제작에 나선다. 북한군이 러시아 병사를 구출하는 장면을 담은 인공지능(AI) 예고편도 공개했다. 주인공인 북한군 정찰병 역할은 한국 출신 배우가 맡는다. 러시아 내부에선 북한군의 전쟁 기여를 지나치게 부풀리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15일 북한 전문매체 NK뉴스 등에 따르면 러시아 영화 제작자 바딤 올레이니크는 최근 러시아 문화부의 영화 제작 지원 심사 발표에서 '수자. 전우들'이라는 제목의 전쟁영화 제작 계획을 공개했다.

영화는 지난해 3월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맞댄 러시아 쿠르스크 지역의 수자를 탈환하는 과정에서 함께 싸운 러시아군과 북한군 병사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주로 젊은 관객을 겨냥한 작품으로, 쿠르스크 전투에서 목숨을 잃은 군인들을 기리는 내용이 담길 예정이다. 개봉 목표 시점은 내년 8월이다.

주인공으로는 '조선'이라는 이름의 북한군 정찰병이 등장한다. 이 역할은 한국 출신 배우 이혁중이 맡았다.

올레이니크는 영화 제작 계획을 발표하면서 AI로 만든 예고편도 선보였다. 영상에는 우크라이나군이 수자에 진입하는 모습과 북한군 병사가 러시아군을 구출하는 전투 장면이 등장한다.

주인공이 전쟁에 참여하게 된 배경도 그려졌다. 어머니로 보이는 여성이 "이건 네 전쟁이 아니야"라며 참전을 만류하자 조선은 쿠르스크에 자신이 "필요하다"고 답한다. 북한군이 자발적으로 전쟁에 참여했다는 인상을 주는 대목이다.

이어 상의를 벗은 주인공이 다른 병사들과 빗속에서 훈련하거나 러시아군 동료를 구출하는 모습이 펼쳐진다. 영상 마지막에는 폐허로 변한 수자를 내려다보는 건물 위에서 북한군과 러시아군이 양국 국기를 들고 서 있는 장면이 등장한다.

NK뉴스는 이 장면이 실제 군사작전 당시 촬영된 사진과 영상을 재현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혁중은 행사에서 상영된 사전 녹화 영상을 통해 러시아어로 작품에 참여하게 돼 영광이라는 소감을 전했다.

하지만 영화가 북한군의 역할을 과장하고 있다는 문제 제기도 나왔다.

러시아 문화부 고문 일리야 스포냐크는 자신이 쿠르스크 전투에 참전했다며 영화의 역사적 정확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대본을 읽어봤는데 내용이 완전히 명확하지 않다. 북한군 병사들이 방어전에 참여한 것처럼 보이게 한다"며 "하지만 그들은 전투 초기엔 그곳에 없었고 2024년 말 무렵에야 도착했다"고 지적했다.

제작진은 반박에 나섰다. 올레이니크는 러시아 국방부가 대본을 승인했고 관련 입증 문서도 확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전투 과정을 정확하게 묘사하기 위해 군사 자문가도 제작에 참여시킬 계획이다.

특히 러시아군이 가스관을 통해 우크라이나군 진지에 침투한 작전과 북한군의 역할은 구분하겠다고 강조했다.

올레이니크는 "우리는 북한군이 가스관을 통해 나와 (수자를) 해방했다고 주장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우리는 이 사건들을 명확히 구분한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전사한 북한군 병사 619명의 영웅적 모습을 그려낼 것"이라고 덧붙였다.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은 2024년 10월부터 시작됐다. 첫 부대는 같은 해 12월께 전투에 투입됐다. 하지만 북한과 러시아가 쿠르스크 작전에 북한군이 참여했다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인정한 것은 지난해 4월이다. 러시아가 국경 지역을 탈환했다고 주장한 이후였다.

북한은 쿠르스크 전투에서 북한군 약 2300명이 전사했다고 주장했다. 이는 올레이니크가 영화 제작 계획을 설명하면서 언급한 전사자 619명과 차이가 나는 수치다.

러시아는 북한군의 참전을 인정한 이후 훈장 수여와 전시회, 기념비 및 벽화 제작 등을 통해 북한군의 전쟁 기여를 부각해왔다. 이번 영화도 이러한 움직임의 연장선에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동서대학교의 러시아 전문가 크리스 먼데이는 영화가 애국주의를 강조하는 동시에 북한과의 관계를 강화하려는 러시아의 국가적 서사를 따르고 있다고 분석했다.

먼데이는 NK뉴스에 "요즘은 명확한 애국적 메시지를 담은 영화에만 자금이 지원된다"며 최근 전쟁영화들이 "일차원적이고 맹목적 애국주의"에 빠져 있다고 평가했다.

북한 역시 이번 영화 제작을 반길 것으로 예상했다. 그는 영화가 "자국 군인을 초인적 존재로 묘사하는 자체 선전 노력에 부합"한다며 평양도 "만족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대영 한경닷컴 기자 kd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