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조선으로 원유를 실어 나르는 비용이 우주로 로켓을 쏘아 올리는 것보다 비싸졌다. 미국과 이란 간 전쟁이 길어지며 유조선이 부족해지고 호르무즈해협을 중심으로 위험 부담 비용이 더해지면서다. 운송료가 원유 가격에까지 영향을 주면서 가격 급변에 대비하는 브렌트유 옵션거래는 사상 최대 규모로 증가했다.
美~中 원유 운송비, 스페이스X 발사보다 비싸졌다
14일 발틱해운거래소에 따르면 미국 멕시코만에서 중국 저장성 닝보항으로 향하는 초대형원유운반선(VLCC·200만 배럴 운송)의 운임은 지난 9일 기준 7961만달러(약 1067억원)로 치솟았다. 사상 최고 가격으로 중동 전쟁 전인 1월 대비 4.6배 급등했다. 이는 스페이스X 로켓 ‘팰컨9’의 표준 발사 요금(7400만달러)보다 높은 수준이다.

운임 급등의 근본 원인은 유조선 부족이다. 우선 호르무즈해협을 지나는 유조선의 운송 비효율성이 높아졌다. 해운 정보업체 케이플러에 따르면 8월 호르무즈해협을 통과한 물량의 70% 이상이 중동 오만만에서 다른 유조선으로 옮겨졌다. 위험을 감수하고 해협 안으로 들어가는 배와 해협 밖에서 화물을 받아 최종 목적지까지 운송하는 배가 나뉘었기 때문이다. 한 번 원유를 옮기는 데 배 여러 척이 필요하고 원유를 주고받는 과정에서 시간 낭비도 커졌다.

이란의 공격을 받은 배가 늘고 있는 것도 유조선 공급이 감소한 요인이다. 선박중개업체 깁슨에 따르면 피격 선박이 수리 후 원유를 다시 싣기까지 평균 두 달이 걸렸다.

배값도 치솟았다. 클라크슨리서치에 따르면 31만t급 VLCC 재판매 가격은 2억4000만달러로 지난해보다 60% 올랐다. 원유 거래업체 비톨의 러셀 하디 최고경영자(CEO)는 “수요를 모두 감당할 만큼 선박이 충분하지 않다”고 했다.

이에 따라 유조선 운임이 유가를 좌우하는 변수가 됐다. 특히 운임 급등으로 산지 가격과 소비지 도착 가격의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 원자재 분석업체 스파르타의 준 고 선임분석가는 “아시아 정유사의 원유 도입 비용이 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원유 가격과 운임이 동시에 요동치자 관련 위험을 헤지하려는 수요가 금융 파생상품시장으로 몰리고 있다. 인터콘티넨털익스체인지(ICE)에 따르면 올해 3분기 브렌트유 옵션 거래량은 2800만 계약으로 분기 기준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올 1~9월 거래량은 7510만 계약으로 지난해 전체 거래량(6220만 계약)을 20% 이상 넘어섰다.

유가는 큰 변동성을 나타내고 있다. 브렌트유 선물 가격은 3분기에만 배럴당 최저 70달러에서 최고 110달러까지 움직였다. 고점과 저점의 차이가 40달러에 달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 변동 폭은 약 9달러에 불과했다. 미·이란 양해각서 체결로 호르무즈해협 통항이 재개되던 7월 초에는 유가가 배럴당 70달러대까지 밀렸다. 그러다 7월 13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 해상 봉쇄 재개를 선언하자 하루 만에 9%가량 치솟았다. 지난달 10일에는 사우디아라비아 에너지 시설이 공격받자 배럴당 110달러 문턱까지 올라섰다. 뉴스 한 건에 하루 수달러씩 출렁이는 장세가 석 달 내내 이어졌다.

이에 정유사는 유가 변동성과 상관없이 정해진 가격에 원유를 살 수 있는 콜옵션을, 원유 생산자는 가격 급락에 대비해 풋옵션을 대거 매수하고 있다. 제프 바부토 ICE 글로벌원유시장총괄은 “에너지시장의 변동성은 거의 모든 시장에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브렌트유를 바탕으로 원유와 석유제품, 해상 운임 등에 걸쳐 800개 넘는 선물·옵션 계약이 연결돼 있다고 설명했다.

김주완 기자/워싱턴=이상은 특파원 kjw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