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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세포 키우는 몸의 생태계 살펴야 치료의 길 보인다
조원동의 씨앗과 토양 이야기
암세포 사멸만 집중하던 의학계
종양 주변 환경으로 시야 넓혀
암세포 사멸만 집중하던 의학계
종양 주변 환경으로 시야 넓혀
하지만 식물을 키워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상식이 하나 있다. 아무리 싱싱하고 강력한 씨앗이라도, 자라날 수 없는 척박하거나 맞지 않는 토양에 떨어지면 결코 뿌리를 내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몸의 암은 어떨까? 암세포라는 ‘씨앗’만 중요한 것일까, 아니면 암세포가 뿌리를 내리고 자라나는 우리 몸의 장기와 주변 환경, 즉 ‘토양’이 더 중요한 것일까. 1889년 영국의 외과 의사 스티븐 파셋은 당대의 의학계에 던지기 어려운 질문을 하나 던졌다. 당시 학계는 암세포가 혈류를 타고 떠돌다가 단순히 물리적으로 걸리는 첫 번째 장기에 전이된다는 ‘혈류 역학 기전’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파셋 교수가 750건이 넘는 유방암 사망 환자의 부검 기록을 분석해 보니, 이상한 점이 눈에 띄었다. 유방암 세포는 인체의 수많은 장기 중에서도 유독 ‘뼈’, ‘간’, ‘뇌’와 같은 특정 장기로만 집요하게 전이되는 경향을 보였다.
여기서 파셋은 ‘씨앗과 토양 가설’을 발표한다. 그는 “암세포 전이는 단순히 혈류를 따라 랜덤하게 일어나는 확률 게임이 아니다”며 “암세포라는 ‘씨앗’은 자신에게 적합한 환경을 가진 특정 장기라는 ‘토양’을 만나야만 비로소 자라나고 전이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파셋의 가설이 처음부터 충분히 입증된 것은 아니다. 당시의 분자생물학적 기술 수준으로는 이를 분자 수준에서 입증하기 어려웠고, 학계는 여전히 암세포 자체를 죽이는 분자 표적이나 화학적 공격에 매달렸다.
잊히는 듯했던 ‘씨앗과 토양 가설’은 20세기 후반과 2000년대에 들어서며 현대 종양학 연구를 통해 새롭게 주목받았다. 암세포라는 ‘씨앗’뿐 아니라 암세포를 둘러싼 주변 세포들과 매질, 즉 ‘종양 미세환경(TME)’이라는 전체 생태계를 이해하고 조절하는 방향으로 연구의 시야가 넓어진 것이다.
미국 텍사스 MD 앤더슨 암센터의 아이자이아 피들러 교수는 실험실 시험관 안에서 세포만 키우는 방식을 넘어, ‘생체 내 실험 모델(인비보 모델)’을 본격적으로 구축했다. 피들러 교수는 이 생체 실험을 통해 암세포가 아무리 공격적이라고 해도, 받아들이는 장기(토양)의 미세환경적 신호와 들어맞지 않으면 암세포 스스로 사멸하거나 긴 수면 상태에 빠진다는 사실을 실증적으로 증명해 보였다.
이어 하버드 의대의 라케시 제인 교수는 공학자 출신의 독특한 이력을 바탕으로 암 연구의 또 다른 지평을 열었다. 제인 교수는 암세포가 비정상적으로 뻗어내는 엉성하고 누출이 많은 미세혈관을 무조건 파괴하고 차단하기보다는, 적절한 약물 조절을 통해 오히려 혈관 구조를 정상적인 상태로 만드는 ‘종양 혈관 정상화 가설’을 최초로 제시했다.
조원동 페니트리움바이오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