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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산업, 상품 경쟁에서 경험 경쟁으로 [EY한영의 비욘드 뷰]
[한경 CFO Insight]
김태환 EY컨설팅 자동차·모빌리티 섹터 파트너
김태환 EY컨설팅 자동차·모빌리티 섹터 파트너
2025년 국내 전기차 시장은 전년 동기 대비 50% 가까이 성장하며 뚜렷한 회복세를 나타냈고, 전기차가 전체 신규 등록 차량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8.9%에서 12.7%로 확대됐다. 또한 2026년 상반기에는 친환경차(하이브리드·전기차·수소차 포함)가 전체 신차 판매의 57.8%를 차지하며 처음으로 내연기관 차량 비중을 넘어섰다. 특히 전기차 수요는 전년 대비 113.6% 증가하며 시장 성장의 중심에 올라섰다.
테슬라 모델 Y가 판매 상위권에 자리 잡은 가운데 중국 EV 브랜드의 움직임도 주목할 만하다. 한때 한국 시장에서 중국 자동차 브랜드의 성공 가능성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많았지만, BYD는 가격 경쟁력과 상품성을 앞세워 빠르게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반면 국내 브랜드의 대응도 만만치 않다. 기아는 SUV와 RV 부문에서 강력한 경쟁력을 유지하는 동시에 폭넓은 전기차 포트폴리오를 기반으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더욱 주목해야 할 점은 이러한 경쟁이 단순히 전기차 판매량 증가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과거 한국 자동차 시장은 중형 및 준중형 차급 중심의 내연기관·하이브리드 시장이었다. 소비자가 차량을 선택하는 기준 역시 브랜드, 연비, 내구성, 품질, 잔존가치 등이 핵심이었다. 그러나 전동화 전환이 본격화되면서 시장의 룰 자체가 바뀌고 있다.
특히 테슬라 모델 Y의 성공은 가격 경쟁력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자율주행 기능과 지속적인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등 사용 경험 측면에서 차별화된 가치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은 OTA(Over-The-Air) 기반 무선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지속적으로 향상되는 자율주행 기능, 간편한 구매 및 차량 관리 경험 등에 높은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 다시 말해 하드웨어 경쟁력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경험 중심의 가치가 구매 의사결정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전통적인 경쟁 요소들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내연기관, 하이브리드, 전기차를 포함한 다양한 파워트레인 포트폴리오, 프리미엄부터 보급형까지의 상품 구성, 소프트웨어 중심 차량(SDV), 자율주행, 배터리 및 충전 기술, 연비 향상 기술 등은 여전히 중요한 경쟁력이다. 그러나 이제는 중국 브랜드의 가격 경쟁력, 테슬라식 소프트웨어 경쟁력이 새로운 위협 요인으로 부상하고 있으며, 동시에 프리미엄 시장에서는 독일 브랜드의 강력한 브랜드 가치 역시 여전히 살아 있다.
그렇다면 상품력과 기술력의 격차가 빠르게 좁혀지는 한국 자동차 시장에서 초격차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마지막 단추는 무엇일까.
그 답은 "고객 경험(Customer Experience)"에 있다.
한국 소비자는 세계에서 가장 디지털 친화적이며 동시에 가장 까다로운 자동차 고객 중 하나다. 차량을 구매하기 전 다양한 온라인 채널을 통해 정보를 탐색하고, 차량 사용 과정에서도 모바일 기반의 서비스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또한 국산 브랜드의 촘촘한 서비스 망에 익숙하여 사용 서비스 품질에 대한 기대 수준도 매우 높다.
이러한 시장에서는 더 이상 좋은 차를 만드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고객이 차를 선택하고, 구매하고 사용하고 관리하며 다시 구매하는 전 과정의 경험을 얼마나 정교하게 설계하고, 고객이 기대하는 경험을 얼마나 일관되게 제공하느냐가 경쟁력을 좌우한다.
과거 자동차 제조사는 최종 고객과의 접점인 리테일을 대부분 딜러와 대리점에 맡긴 채 제품 개발과 생산에 집중했다. 그러나 최근 글로벌 선도 자동차 기업들은 고객 경험을 직접 관리하기 위해 리테일 자체를 재정의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일부 브랜드는 전통적인 딜러십 모델에서 에이전시(Agency) 기반 직판 모델로 전환하며 고객 접점을 내재화하고 있다. 이를 통해 고객 데이터를 직접 확보하고, 일관된 브랜드 경험을 제공하며, 장기적인 고객 관계를 구축하고 있다.
동시에 전 세계 주요 자동차 기업들은 물리적 리테일 네트워크를 재설계하고 있다. 과거처럼 많은 전시장과 서비스센터 투자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시장 및 고객 데이터와 이동 패턴, 구매 데이터를 분석해 규모는 작지만 효율성은 높은 판매·서비스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데이터 활용 역시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고객관계관리(CRM), 딜러관리시스템(DMS),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홈페이지, 온라인 계약 플랫폼 등에 분산된 고객 정보를 통합하고, 인공지능(AI)을 활용해 고객의 관심 단계부터 탐색, 상담, 계약, 차량 사용, 재구매까지 고객 여정 전반을 관리하는 풀퍼널 마케팅(Full Funnel Marketing) 체계가 새로운 경쟁력으로 부상하고 있다.
자동차 산업은 오랫동안 제조업의 영역이었다. 그러나 전동화 시대 자동차 산업은 제조업과 플랫폼 산업, 소프트웨어 산업, 서비스 산업의 특성을 동시에 갖는 산업으로 변하고 있다.
유럽 브랜드는 리테일 혁신을 가속화하고 있고, 신흥 전기차 브랜드는 가격과 소프트웨어 경쟁력을 바탕으로 한국 시장 공략을 확대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 자동차 산업은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의 생산 규모와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 여기에 우수한 디지털 인프라와 이를 적극 활용하는 한국 고객에 대한 이해 역시 한국 브랜드만의 강점이다. 그러나 향후 경쟁은 단순한 제조 역량만으로 결정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상품력과 기술력의 격차가 빠르게 좁혀지는 환경에서는 고객을 얼마나 깊이 이해하고, 고객의 시간을 얼마나 절약해 주며, 고객과 얼마나 지속적인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지가 새로운 경쟁 우위가 될 것이다. 전동화 시대의 승자는 좋은 차를 만드는 동시에 고객이 가장 편리하게 사고, 만족하며 사용하고, 다시 사고 싶어 하는 경험을 제공하는 기업이 될 것이다. 이제 초격차를 결정할 마지막 경쟁의 무대는 공장을 넘어 고객 접점 현장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