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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스키 불황에도 나홀로 성장한 '벤로막'…신제품 한국 부터 낸 이유
마크 기어리 고든앤맥페일 CEO 인터뷰
고든앤맥페일은 1895년 작은 식료품점에서 출발해 4대째 가족 경영을 이어 오고 있는 위스키 기업이다. 여러 증류소의 원액을 사들여 숙성하고 병입하는 독립 병입자로 명성을 쌓은 이들은 1993년 벤로막을 인수하며 직접 위스키 생산에 뛰어들었다. 5년에 걸친 복원 끝에 1998년 다시 증류기를 돌렸다.
다시 태어난 벤로막은 전통적인 수작업 생산 방식을 고수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무엇보다 스페이사이드에서는 드물게 피트(이탄)로 건조한 보리를 여전히 사용한다. 과거 스페이사이드 위스키의 특징이었던 은은한 스모크 풍미를 오늘날까지 이어 오고 있는 것이다.
벤로막은 최근 위스키 시장의 침체 속에서도 성장세를 이어 가고 있다. 2022년부터 2025년까지 전 세계 몰트위스키 시장이 약 25% 위축됐지만, 벤로막은 지난해에만 약 20% 성장했다. 한국에서도 존재감이 커지고 있다. 2021년 벤로막이 국내에 처음 소개된 이후 한국은 아시아 최대 시장이자 미국·영국·독일과 함께 세계 4대 시장 중 하나로 부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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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시장의 중요성은 신제품 출시에서도 드러난다. 지난 10월 벤로막은 새로운 플래그십 ‘벤로막 12년’을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한국에 선보였다. 12년 내내 올로로소 셰리 캐스크에서 숙성해 풍부한 달콤함과 특유의 스모키함을 함께 담아낸 위스키다. 론칭 행사에는 마크 기어리(Mark Geary) 고든앤맥페일 최고경영자(CEO)가 직접 한국을 찾았다. 맥캘란과 하이랜드 파크 등 굵직한 브랜드를 이끌며 25년 넘게 위스키 업계에 몸담아 온 베테랑으로, 지난해 9월 고든앤맥페일의 수장에 오른 인물이다. 다음은 그와의 1문 1답.
“세 단어로 표현하고 싶다. 즐거웠고, 도전적이었으며, 보람 있었다. 고든앤맥페일에는 가족 기업 특유의 문화가 깊이 배어 있다. 구성원들이 서로 협력하고 긴 호흡으로 일한다는 점에서 즐거운 시간이었다. 물론 어려움도 있었다. 전 세계적으로 몰트위스키 시장이 위축되면서 위스키 한 병을 팔기 위해 이전보다 훨씬 많은 노력이 필요한 상황이다. 그럼에도 보람 있는 성과가 있었다. 지난해 세계에서 가장 오래 숙성된 싱글 몰트위스키인 85년 제품을 선보였는데, 125병이 단 6주 만에 모두 판매됐다. 이번 벤로막 12년 출시 역시 그 연장선에 있다.”
Q. 새롭게 선보인 벤로막 12년의 매력을 꼽는다면.
“단연 균형이다. 벤로막의 모든 제품에는 은은한 스모키함이 깃들어 있다. 우리가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특징이다. 12년은 여기에 셰리 캐스크 특유의 달콤함을 더했다. 두 요소가 46도에서 만나 복합적인 향과 맛을 만들어낸다. 말린 과일과 페이스트리, 초콜릿을 연상시키는 달콤함이 느껴지고, 입안에는 스모키한 풍미가 오래 남는다.”
Q. 말이 나왔으니 묻겠다. 벤로막은 스페이사이드에서 여전히 피트를 사용하는 몇 안 되는 증류소다. 셰리 캐스크의 풍미가 강해지면 벤로막 특유의 스모크 향이 가려질 수도 있을 텐데.
“충분히 할 수 있는 걱정이다. 어떤 위스키는 셰리 풍미가 지나치게 강해 다른 특징을 느끼기 어렵고, 반대로 스모키함만 두드러지는 위스키도 있다. 중요한 건 이 둘의 균형을 찾는 일이다. 벤로막의 숙련된 위스키 메이커들이 그 균형을 잘 잡아냈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달콤함에, 누군가는 스모키함에 끌릴 수 있다. 하지만 이 두 가지가 어우러진 풍미는 벤로막이 아니면 경험하기 어렵다.”
Q. 벤로막 12년은 12년 내내 셰리 캐스크에서 숙성한다. 그것도 셰리를 담았던 통에 위스키를 처음 채우는 퍼스트필 캐스크만을 고집한다. 그런데 시중에는 셰리 캐스크를 내세우면서도 실제로는 숙성 막바지에만 셰리 캐스크로 옮겨 풍미를 입히는, 이른바 피니싱 제품도 많다.
“다른 캐스크에서 10년을 숙성하고 마지막 2년만 셰리 캐스크로 옮기는 곳도 있지만,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비용은 더 들지만, 바로 그 점이 풍미의 차이를 만든다고 자신한다.”
Q. 수작업 생산에 퍼스트필 캐스크까지, 모두 비용이 많이 드는 방식이다. 많은 증류소가 비용을 줄이려고 캐스크를 여러 차례 재사용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그 방식이 통한다. 물론 우리도 생산 방식을 바꿀 수 있다. 실제로 많은 위스키 증류소가 비용을 줄일 방법을 찾는다. 하지만 우리는 뛰어난 위스키를 만드는 것이 브랜드를 알리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수작업 생산과 긴 제조 공정, 값비싼 캐스크를 고집하는 이유도 결국 품질에 있다.”
Q. 수작업을 강조하는 위스키 브랜드는 많지만, 모든 공정을 손으로 진행하는 곳은 드물다. 벤로막은 어디까지 수작업으로 생산하나.
“고든앤맥페일은 벤로막과 케언(The Cairn), 두 증류소를 운영한다. 케언에서는 직원 한 명이 컴퓨터 화면 세 개를 보며 버튼으로 전체 생산 공정을 관리한다. 벤로막은 정반대다. 작업자가 직접 레버를 당기고 다이얼을 돌리며 모든 과정을 일일이 확인한다. 생산 공정에 컴퓨터는 사용하지 않는다. 유일하게 자동화 기기의 힘을 빌리는 건 캐스크에 원액을 채우는 작업이다. 예전에는 이것도 손으로 했지만 흘러넘치는 원액이 너무 많아 기계를 들였다(웃음). 그 밖의 공정은 대부분 사람 손을 거친다고 보면 된다.”
Q. 최근 셰리 캐스크를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고 들었다. 특히 벤로막은 퍼스트필 캐스크만 쓰는데, 안정적인 공급이 가능한가.
“지난 9월에도 스페인 헤레스에 다녀왔다. 고든앤맥페일은 캐스크 공급업체들과 오랫동안 관계를 이어 왔다. 어떤 곳은 수십 년째 손발을 맞추고 있다. 이런 신뢰 덕분에 안정적으로 캐스크를 공급받을 수 있다. 최근 스카치위스키 시장이 위축되면서 많은 증류소가 생산량과 캐스크 구매를 줄였다. 하지만 우리는 그 규모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협력업체에도 안정적인 거래가 중요하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오랜 관계는 어려운 시기에 더 큰 힘을 발휘한다.”
Q. 최근 한국 위스키 시장이 다소 주춤하고 있다. 한국은 여전히 벤로막에 중요한 시장인가.
“물론이다. 전 세계 위스키 시장이 위축되는 가운데서도 한국은 다른 시장보다 감소 폭이 작은 편이다. 무엇보다 스카치위스키는 십수 년을 숙성해야 하는 술이다. 그래서 우리는 늘 다음 세대를 내다보고 사업을 진행한다. 그런 관점에서 한국은 성장 가능성이 매우 높다. 블렌디드위스키가 강세인 시장에서는 소비자의 경험과 취향이 깊어지면서 싱글 몰트위스키로 관심이 옮겨 가는 경향이 있다. 한국에서도 그런 변화가 진행 중이라고 본다.”
“위스키를 마실수록 사람들은 새로운 스타일을 찾게 된다. 그 과정에서 스모키한 위스키에 빠지는 사람도 많다. 물론 끝까지 달콤한 위스키를 선호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 이들에게는 ‘벤로막 12년 언피티드’를 권한다. 과실 향에 구운 헤이즐넛과 마지팬 향이 어우러지고, 몰트 비스킷과 모렐로 체리의 풍미가 이어지는 매력적인 위스키다.”
Q. 벤로막 제품 가운데 가장 좋아하는 위스키를 하나만 꼽는다면.
“세 아이를 둔 내게 어느 아이가 가장 좋으냐고 묻는 것과 같다(웃음). 그날그날 답이 달라질 수 있다. 요즘은 벤로막 12년이다. 출시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나에게도 아직 새롭다. 집에 있는 병은 벌써 바닥을 보이고 있다.”
Q. 벤로막 12년을 즐기는 ‘나만의 음용법’이 있다면 소개해 달라.
“그날의 분위기나 곁들이는 음식에 따라 다르다. 니트로 마실 때도 있고, 물을 조금 타거나 얼음을 넣어 온더록스로 즐기기도 한다. 그래도 하나를 꼽자면 ‘올드패션드’ 칵테일이다. 셰리 캐스크에서 비롯된 달콤함이 한층 살아나고, 그 뒤로 피트 향이 길게 남는다. 알코올 도수가 46도라 얼음이 녹아도 맛이 쉽게 흐려지지 않는다.”
Q. 보틀숍에만 가도 수많은 싱글 몰트위스키가 줄지어 놓여 있다. 그중 벤로막을 골라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분명한 차별점이다. 은은한 스모키함과 여러 겹의 달콤함이 빚어내는 복합적인 풍미는, 한 번 맛보면 잊을 수 없다. 하지만 맛이 전부는 아니다. 우리는 수작업을 고수하고, 피트를 놓지 않는다. 믿는 바를 지키기 위해서다. 그러면서도 새로운 시도 앞에서 머뭇거리지 않는다. 자신만의 기준을 지키면서도 새로운 경험을 마다하지 않는 사람들. 벤로막은 바로 그런 이들을 위한 위스키다.”
이승률 한경 PRESTIGE 기자 ujh881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