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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세 피하려는 日기업 오너들…글로벌 사모펀드에 매각 러시
日기업 M&A 사상 최대
싸진 엔화·달라진 기업 지배구조
싸진 엔화·달라진 기업 지배구조
13일 일본 M&A 조사기관 레코프데이터에 따르면 올해 1~9월 일본 기업이 관련된 M&A는 3883건으로 집계됐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이 보도했다. 1985년 관련 통계 작성 이후 1~9월 기준 역대 최대다. 특히 외국 기업과 투자자의 일본 기업 인수는 326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0% 이상 증가했다.
전체 M&A 거래 금액은 22조엔으로 전년 동기보다 20% 감소했다. 지난해에는 일본 통신 대기업 NTT의 NTT데이터그룹 완전자회사화 등 초대형 거래가 집중된 데 따른 기저효과다. 반면 외국 자본의 일본 기업 인수 금액은 전년 동기 대비 40% 증가한 6조2000억엔(약 59조원)에 달했다. 불과 9개월 만에 지난해 연간 실적을 넘어섰으며, 역대 연간 기준으로도 세 번째로 큰 규모다.
글로벌 사모펀드(PEF)가 일본 기업 인수에 적극 나서면서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투자회사가 관여한 M&A 금액은 5조5000억엔으로 전년 동기보다 14% 증가했다. 특히 일본 상장기업을 인수한 뒤 상장폐지해 경영 효율을 높이는 거래가 잇따르고 있다.
미국 아폴로글로벌매니지먼트는 일본의 유리 제조업체 일본판유리를 약 5900억엔에 인수해 비상장화했다. 미국 KKR 등도 일본의 대형 화학업체 다이요홀딩스를 약 5000억엔에 인수하기로 했다. 미국 워버그핀커스는 학생용 임대아파트 운영업체 제이에스비를 약 2000억엔에 인수했다. 워버그핀커스가 지난해 일본 시장에 재진출한 이후 첫 상장폐지 거래다.
기업 인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인수 가격이 뛰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일본의 음식점 평가·검색 서비스 '다베로그'를 운영하는 가카쿠닷컴을 놓고 유럽계 사모펀드 EQT와 라인야후·베인캐피털 연합이 경쟁하고 있다. EQT가 공개매수(TOB)에 나서자 라인야후가 미국 베인캐피털과 손잡고 대항 인수를 제안하면서 가격 인상 경쟁으로 번졌다.
글로벌 사모펀드들은 일본 투자를 확대하기 위해 대규모 자금도 확보하고 있다. EQT는 지난 4월 156억달러(약 2조5000억엔) 규모의 아시아·태평양 지역 전용 펀드를 조성했다. 일본 시장에만 수천억엔을 투자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베인캐피털도 지난 5월 105억달러 규모의 아시아 펀드를 조성하면서 전체 자금의 절반가량을 일본에 배정하기로 했다.
비핵심 사업 매각 러시
일본 대기업들이 비핵심 사업을 매각하는 사업구조 재편도 M&A 시장을 키우고 있다. 일본 반도체 기업 르네사스일렉트로닉스는 반도체 회로의 작동 시간을 제어하는 '타이밍 부품' 사업을 미국 반도체 설계업체 사이타임에 매각했다. 르네사스는 올해 7~9월 분기에 약 4433억엔의 매각 이익을 반영할 전망이다.해외 자본이 일본 기업에 몰리는 배경에는 엔저뿐 아니라 일본 기업의 구조적인 변화가 있다. 2023년 도쿄증권거래소가 상장기업에 주가순자산비율(PBR) 개선을 요구한 이후 수익성이 낮은 사업을 정리하거나 비핵심 자산을 매각하는 움직임이 확산했다. 과거 적대적 인수에 거부감이 강했던 일본 기업들의 인식도 달라지고 있다.
일본 경제산업성이 2023년 발표한 '기업 인수에 관한 행동지침' 역시 M&A 활성화의 계기가 됐다. 기업 인수 제안에 대한 이사회의 대응 원칙 등을 정비하면서 해외 투자자가 일본 기업에 접근하기 쉬워졌다는 평가다.
내년부터 시행되는 고소득자 증세도 올해 M&A 증가를 부추기는 요인이다. 일본 정부는 2027년부터 고소득자에 대한 추가 과세 제도인 '미니멈 택스'를 강화한다. 기존에는 연간 소득이 3억3000만엔을 초과하면 초과분에 22.5%의 세율을 적용했지만, 내년부터는 기준을 1억6500만엔으로 낮추고 세율도 30%로 높인다.
이에 따라 창업자와 오너 경영자들이 세 부담이 커지기 전에 보유 지분이나 회사를 매각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복수의 투자펀드 관계자는 "오너 경영자들로부터 세제 강화 전에 회사를 인수해 달라는 문의가 급증하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올해 1~9월 사업 승계를 목적으로 한 M&A는 833건으로 전년 동기보다 10% 이상 증가했다. 관련 통계를 확인할 수 있는 2007년 이후 최대다. 일본의 중소·중견기업 경영자 고령화에 따른 사업 승계 수요에 세제 개편까지 맞물리면서 기업 매각이 증가하는 모습이다.
향후 일본의 금리 상승으로 기업 인수에 필요한 자금 조달 비용이 높아질 가능성은 변수다. 다만 일본의 금리 수준은 미국과 유럽 등 주요국보다 여전히 낮아 M&A 시장에 미칠 영향이 제한적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해외 사모펀드의 풍부한 투자 자금과 일본 기업의 구조조정 수요가 맞물리면서 외국 자본 주도의 일본 기업 인수는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도쿄=최만수 특파원 bebop@hankyung.com